[리에야쿠] 30

pinn_pond 2015. 12. 3. 00:54


30

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리에프는 자존감이 낮은 편에 속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리에프는 겉으로만 당당하고 자존심이 높을 뿐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자신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길이 없었으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리에프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때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했으므로 어찌 보면 리에프에게 사랑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마음에 담은 사람은 고등학교 배구부에 함께 있었던 자신 보다 두 살 많은 매니저였다. 처음에는 그저 이렇게 작은 사람이 존재하나 싶은 정도의 생각 밖에는 없었다. 나중에는 그녀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미색 곱슬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고 체육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작은 햄스터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색했던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오자 체육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에프는 점점 그녀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 자기 자신이 없는 리에프에게 그녀라는 존재가 자리 잡는 것은 손쉬웠다. 그렇게 그녀는 여름대회처럼 눈 깜짝 할 새에 다가왔다.

리에프는 자신의 마음도 정의내리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그녀에 대한 끌림을 장난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표현했다. 본인에 대한 내실이 없는 리에프는 사람을 겉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놀림 또한 외면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도 작아서 안보였어요.

-, 거기 계셨어요?

-그렇게 까치발 하셔도 안 닿으실 텐데.

 

이 따위의 말들을 하면서 리에프는 어린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주변을 서성거리며 놀려먹는 것처럼 그녀를 대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니 그는 남을 사랑하는 법에서도 서툴렀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녀를 많이 괴롭혔다. 그녀는 그녀의 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해서 자신을 놀리는 리에프를 혼내거나 때리기도 했다. 리에프는 그런 그녀가 즉각적으로 자신의 말에 반응해주는 것이 즐거워 그녀에게 미움 받는 것마저도 좋아했다.

배구부원들 말을 빌리자면 둘의 사이는 꽤나 재미있는 형태라고 말했다. 194cm가 넘는 신장을 가진 남자가 150cm 근처를 맴도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돈 주고도 못 볼 진귀한 구경거리라고 말했다. 그런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다방면에서 알뜰살뜰 챙겨주었다. 그녀는 리에프에게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엄하지만 다정하게 이끌어주고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는 등을 맞대고 위로 해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성스러운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갔다.

짙은 녹색의 잎들이 붉은 색으로 옷을 바꿔 입을 때쯤 그와 그녀의 관계도 계절에 발맞추어 달라졌다. 여름대회에 입성하지 못하고 그가 심적으로 무너져 갔을 때 그녀가 그에게 보여준 또 한 번의 위로는 그의 추락했던 자만심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리에프는 걷잡을 수 없는 울컥거림이 몰려와 자신을 위로해준 그녀를 껴안고 그녀가 보여준 따뜻하고 안정된 마음에 기댔다. 그리고 마음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그는 그녀를 마음에 담은 후부터 계속 하고 싶었던, 그러나 절대로 뱉을 수 없었던 말을 뱉어 냈다.

야쿠상. 좋아합니다. 좋아해요...”

야쿠와 사귀게 되면서 리에프는 마음이 채워진다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마치 무채색이었던 세상에 색이 있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이내 형형색색의 무지개가 생긴다는 느낌을 그녀는 리에프에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를 생각하자 리에프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마주잡고 있는 손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믿겨지지 않았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큰 눈망울은 거짓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겨울은 그 계절에 걸맞게 날씨가 순식간에 세상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녀와 데이트하기 위해 멋들어지게 옷을 차려입은 리에프는 흡사 모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미 여러 번 야쿠와 데이트를 했지만 언제나 설레는 마음에 그는 30분 정도 일찍 나와 있었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에게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큰 나무 밑에서 땅만 바라보던 리에프는 거의 도착했다는 그녀의 메시지를 받고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어렴풋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야쿠의 형체가 보였는데 리에프에게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이 확대된 화면처럼 보였다. 야쿠는 곱실거리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풀었는데 그녀의 미색 머리칼은 입고 있는 청록색 더플코트와 정말 잘 어울려보였다. 리에프는 반가운 마음에 긴 다리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신장 차이 때문에 허리를 깊숙이 숙여야 그녀의 체향을 느낄 수 있었기에 리에프는 무릎을 살짝 굽혔다. 한숨에 들어오는 야쿠의 향은 리에프의 비어있던 마음을 다시 채워줬다.

오늘도 일찍 왔네?”

. 야쿠상 너무 보고 싶어서.”

야쿠의 어깨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고 리에프는 동그란 야쿠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댔다. 찬바람을 맞아 약간 차가운 야쿠의 피부가 느껴졌고, 이마를 통해 가까이서 전해지는 야쿠의 온기 덕분에 웃음이 나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둘이 함께하는 이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리에프는 크나큰 위안을 얻었다. 짧은 포옹이 끝나고 리에프는 작고 따뜻한 야쿠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야쿠는 그런 리에프에게 살짝 몸을 기울어 그의 마음에 대답해주었다.

이번 데이트는 꽤나 성공적이어서 리에프와 야쿠 모두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겨울의 하늘은 금방 어둑어둑 해져서 거리에는 상점가의 불빛과 가로등의 빛만이 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 리에프는 혹여 야쿠를 놓칠 새라 손을 꽉 잡았고, 야쿠는 꽉 잡힌 손이 불편했지만 리에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어서 얌전히 잡혀주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걷고 있었을 때, 어느덧 도착한 중심가에는 많은 인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야쿠가 무슨 일일까 생각하며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리에프가 야쿠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 오늘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있다고 했어요.”

점등식?”

. 중심가에 설치한 큰 트리 말이에요. 오늘부터 신년까지 켜놓는다고 하더라구요.”

예쁘겠다

야쿠상도 보러 가실래요?”

!”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면서 리에프는 오늘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리에프가 점등식을 노리고 나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재작년에 어머니에게 끌려가다 시피 따라갔던 크리스마스점등식은 안 간다고 어머니에게 신경질을 부렸던 자신의 시선을 빼앗았다. 상점가와 가로등의 모든 불이 꺼지고 사람들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순간적으로 켜지는 트리의 전구들은 그 어떤 경관보다 아름다웠다. 그때 자신이 맛보았던 놀라움과 벅참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누리길 원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리에프는 야쿠의 손을 잡고 이끌어 크리스마스트리 쪽으로 점점 다가갔다.

꽤나 트리와 가까운 자리에 자리를 잡은 둘은 열두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인파가 많아서 앞이 안보이자 야쿠는 까치발을 들어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애썼다. 그런 야쿠를 보고 리에프는 무등 태워주겠다며 야쿠를 들어 올리려고 해서 야쿠에게 결국 머리를 한 대 맞고 조용히 하라며 한소리를 들었다. 손이 시린지 야쿠가 손을 입가로 가져가 호호 부는 것을 본 리에프는 야쿠의 등 뒤로가 그녀를 껴안았다. 작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온기를 전해줬다.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리에프의 따뜻한 마음에 야쿠는 조그맣게 쿡쿡거리면서 웃었다.

“1분 남았어요, 야쿠상! 잘 보이시는 거 맞져?”

한 번만 더 그 소리하면 다시 맞을 줄 알아.”

너무해요.”

너무한 건 네 말이야. 난 그럭저럭 보이니깐 걱정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거리 전체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예상보다 빨리 불이 꺼진 탓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고 곧이어 거리에 혼란이 가득한 채 인파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로를 이리저리 밀치면서 움직이는 덕분에 순식간에 거리에는 혼란이 찾아와 리에프와 야쿠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가 리에프를 뒤에서 세게 밀치는 바람에 리에프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어버려 그만 야쿠를 인파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리에프는 당황한 나머지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야쿠를 찾으려고 수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야쿠상! 야쿠상!”

제 사고를 온전히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빽빽하게 들어찬 인파들 사이를 헤치며 체구가 작은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품 안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자 리에프는 마음 한 곳이 찢어져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면서 야쿠를 찾았지만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안 돼. 리에프는 눈물이 나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주위가 순식간에 환해지면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12시가 되어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밝게 불이 켜진 트리를 보면서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리에프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어느새 야쿠가 없는 리에프는 그곳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찾을 수 없음과 자신의 무기력함에 리에프는 진절머리가 났다. 자신의 욕심으로 그녀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밀어버렸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짝이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런 곳에서 혼자 있지도 길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다. 리에프는 다시금 자신에 대한 채찍과 힐난을 시작했다.

나 같은 사람이 야쿠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나는 야쿠상을 사랑할 자격이 없어.’

다시 그녀를 생각하자 무너지는 마음에 리에프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녀가 없는 앞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하하 호호 웃으면서 트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목소리가 리에프의 떨어져간 마음을 긁어댔다. 그때, 누군가가 차갑게 식어있는 리에프의 손을 잡았다.

찾았다!”

그녀였다. 한줄기 내리쬐는 그 어느 날의 햇살 같은 그녀는 급하게 뛰어왔는지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가쁜 숨을 조심스럽게 모아 쉬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은 마치 신이 처음으로 사람을 빚어 숨결을 불어 넣어준 것처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리에프에게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빨리 오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야쿠가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려고 할 때, 리에프가 갑자기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 처음에는 다짜고짜 껴안는 리에프 때문에 야쿠가 적잖게 놀랐으나 자신을 안고 있는 그의 팔과 몸에서 전해지는 떨림이 너무 애절해 보여서 그녀도 팔을 들어 그를 껴안아주었다. 야쿠는 조그만 손으로 자신보다 한참 큰 리에프의 너른 등을 토닥여주면서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떨림이 멈췄을 때 리에프는 고개를 들더니 반짝이는 립글로즈가 발린 야쿠의 입에 살짝 키스를 했다. 야쿠는 입맞춤에서도 그가 떨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애틋하게 다가와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리에프를 안았다.

괜찮아, 리에프. 지금 나는 네 앞에 있어.”

“...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야쿠는 리에프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품 안에 안은 채 말을 했다.

처음에는 엄청 당황했는데 나중에 불이 켜지니깐 다시 널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몸을 움직이려 해봤는데 사람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

그런데 니가 딱 보이는 게 아니겠어? 네 키 덕에 찾을 수 있었어.”

야쿠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고 보기에도 아까운 예쁜 미소를 지었다. 공황상태가 찾아와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쿠는 자신에 대한 어떠한 원망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 자신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리에프는 구원받았고 위로받았다. 야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리에프의 팔을 두어 번 툭툭 치더니 이어서 말을 했다.

, 리에프. 저기 트리 봐봐! 엄청 예뻐!”

리에프는 고개를 돌려 야쿠가 지목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봤다. 여러 장신구가 달리고 꼬마전구들에 감싸진 트리는 그 누가 봐도 예뻐 보였다. 그러나 리에프는 그 트리를 눈에 담고 있는 야쿠를 바라봤고 꼬마전구에 반사 된 그녀의 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빛나 보였다. 그녀가 보기에 트리는 정말 예뻤는지, 그녀는 조그만 입을 벌리면서 넋을 잃고 트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리에프는 그런 그녀를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그녀는 언제나 리에프를 구원해주었다. 그녀는 리에프에게 위로이자 구원이자 모든 것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언제나 그녀는 리에프가 리에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야쿠가 보내주는 사랑에 리에프는 다시 올라오는 울컥거림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야쿠가 잡은 자신의 손에 더 힘을 실었다. 이 손에 자신의 사랑이 담겨가길 바라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막 학기가 끝나면서 네코마 고등학교는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야쿠는 대학교가 정해졌기 때문에 그에 맞춰 영어 학원을 다녔고 리에프 또한 겨울 합숙에 들어가면서 둘이 만나는 횟수가 자연히 줄어들었다. 물론 이 영향도 있었겠지만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 이후로 리에프는 야쿠를 밖에서 만나기를 꺼려했고 무조건 실내로 들어가거나 야쿠의 집 앞에서 만났다. 야쿠가 과보호라고 말했지만 리에프는 개의치 않았다. 다시는 야쿠를 그렇게 자신의 손에서 떨어트리기 싫었다. 밤늦게 연습이 끝나고 리에프는 늘 야쿠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그가 걱정되어 집 앞까지 오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는 은근히 그녀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리에프를 기대했다.

추운데 우리 집에 들어가 있지 그랬어.”

조금이라도 빨리 야쿠상 보고 싶어서요.”

말이나 못하면...”

밖에서 오래 기다린 건지 자신을 안은 리에프의 파카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야쿠는 까치발을 들더니 장갑을 낀 손을 들어 리에프의 뺨을 만졌다. 그런 야쿠의 손길이 좋은지 리에프는 야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눈을 감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이제 저 들어가 봐야 해요.”

. 오늘도 와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야쿠를 꼭 껴안더니 리에프가 몸을 돌려 합숙소로 가려던 때 야쿠가 리에프의 옷깃을 잡았다.

야쿠상?”

리에프...”

?”

우리 이번 주말에 바다 보러 가자.”

리에프는 야쿠의 말에 머뭇거렸지만 야쿠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리에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대답에 야쿠가 활짝 웃더니 이내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단 둘만의 여행은 처음이라 두근거림을 안고 바다로 향하는 신칸센에 올라탔다. 바다까지는 두어 시간쯤 걸리는 거리라 둘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먼저 깨어난 야쿠가 내릴 역에 도착하니 리에프를 흔들어 깨웠다. 리에프는 아직도 잠이 덜 달아났는지 눈을 몇 번 비비더니 짐을 들고 출입문으로 나가는 야쿠를 따라갔다. 시간이 어느덧 정오가 되어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리에프가 먼저 밥을 먹자 했지만 야쿠는 바다를 보겠다고 우기는 탓에 둘은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바다 쪽으로 점점 다가갈수록 바람의 세기가 강해져서 둘 다 서로의 옷을 단단히 여몄다. 이윽고 도착한 겨울의 바다는 정오의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눈이 내린 백사장은 모래와 눈의 신기한 조합을 탄생시켰다. 바다와 모래와 눈의 경계. 야쿠는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 느지막이 따라오고 있는 리에프의 손을 이끌어 눈 쪽으로 다가갔다. 자박자박 밟히는 눈 소리가 야쿠의 귀에 즐겁게 들렸고 리에프는 그런 야쿠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바다에 야쿠가 신이 났는지 먼저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면서 리에프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리에프는 바닷가로 뛰어간 야쿠를 바로 쫓아가지 않고 뒤에서 그녀를 지켜봤다. 두꺼운 니트를 입은 그녀는 춥지도 않은지 밀려오는 파도를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리에프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빨리 와봐! 여기 엄청 예뻐!”

야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에프는 그때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불이 꺼진 거리. 혼란과 상실. 자신의 옆에 없는 그녀. 그리고 그녀를 찾을 수 없는 자신. 무기력함. 생각해서는 안 될 단어들이 리에프의 머리를 지배했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그녀를 잡아 품안에 넣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찬 바람이 마주불어와 리에프를 사납게 때렸고 곧 그녀가 그대로 사라질 것 같은 생각에 리에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리에프...?”

뒤돌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를 눈에 담았다. 미색의 나부끼는 머리와 목도리. 바람에 날리는 니트와 스커트 또한 그녀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졌다. 그 하나에 크나큰 안도와 위로를 받아 리에프는 그대로 야쿠에게 달려가 그녀를 숨 막히게 껴안았다. 갑자기 껴안아 진 탓에 야쿠는 어리둥절했다.

왜 그래, 리에프.”

야쿠상... 절 떠나지 마세요...”

간절함이 묻어나온 리에프의 목소리는 누가 듣기에도 떨려 보였고 그가 얼굴을 묻은 야쿠의 어깨 부분이 점점 적셔져 갔다.

내가 왜 널 떠나.”

제발 절 떠나지 말아주세요...”

리에프, 나 좀 봐봐.”

야쿠는 자신의 어깨에 있던 리에프의 얼굴을 손으로 잡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왔다. 눈물이 흐르고 있는 리에프의 얼굴은 눈가와 콧등이 벌게져서 꽤나 볼만 했다. 리에프의 웃긴 모습에 야쿠는 잠깐 피식 웃더니 리에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 얼굴을 맞대고 그에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널 떠날 생각이 없어.”

“...정말이요?”

. 그러니깐 내가 사랑하는 너를 너도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어. 넌 정말 멋진 남자고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야. 그러니깐 날 사랑하는 만큼 널 사랑하길 바라.”

마주보고 있는 야쿠의 눈에는 오로지 리에프만 담겨있었다. 아직까지도 리에프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지만 야쿠가 주는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믿기로 했다. 모자란 자신에게 늘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그녀에게 리에프는 조심스럽게 키스했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야쿠의 입 안을 느끼면서 리에프는 다시금 채워지는 자신의 내면을 느꼈다. 입을 떼고 그녀를 마주보자 쑥스럽기도 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리에프는 그녀를 껴안아 그녀의 머리 위에 자신의 턱을 가져다 댔다.

늘 고마워요. 야쿠상.”

뭐가

그냥...그냥 다요.”

싱겁기는

턱에 간질거리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은 그의 마음속마저 간지럽혔다. 그녀가 사랑하는 자신을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리에프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쿠상, 고마워요.”

그 말 말고!”

?”

고맙다는 말 말고 다른 말.”

야쿠는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리에프를 바라봤다. 고맙다는 말 말고 뭐지. 리에프는 뚱한 표정을 짓는 야쿠를 보면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는 단 한가지의 생각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해요. 야쿠상.”

, 나도. 리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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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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