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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흑] 夏

夏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장마 전선이 물러난 땅 위는 더위가 보란 듯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아스팔트를 바라보자면 누구든 밖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어느 무렵, 으레 그렇듯이 매주 여름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공원을 주변으로 형성된 길과 골목들에는 밤이 되면 상점들이 즐비했고 노점상 또한 여름축제의 분위기를 거들었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를 엮듯이 수놓은 전등들은 밤거리를 비추기에 적합했다. 은은한 전등은 여름축제의 멋을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해가 강렬하게 내리 쬐는 낮에도 사람들은 밤에 하는 축제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그만큼 여름축제라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자연스러운 일상과도 같았다.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늦게..

2016.02.03

[빙흑] 春

春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봄은 낭만적임을 대변하는 계절이었다. 3월 초입의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한창 벚꽃이 만개할 무렵의 계절은 모든 사람에게 설렘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수선화와 목련은 봄의 마지막 추위를 정통으로 맞으며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피었다가 지고 아직 봉우리로 맺힌 튤립과 철쭉은 늦은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채와 벚. 이 둘은 봄의 중간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꽃들이었다. 그중에 히무로는 유독 벚나무를 좋아했다. 물론 일본인이라면 응당 벚을 좋아했지만 히무로는 유독 벚나무를 좋아했다.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며 연분홍빛 꽃을 피워내는 것도 좋아했으며 꽃잎이 다 떨어지고 잎만 남은 싱그러운 벚나무도 좋아했다. 그래도 모름지기 사람인지라 꽃잎이 만개한 벚나무를 더 좋아했다.매년 ..

2016.01.31

[빙흑] 冬

冬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리는 전 세계적인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겨울 이맘쯤 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하루를 전날의 일몰로부터 다음 날 일몰로까지 쳤기에 이 전야인 이브가 중요시 되었다고 크리스마스이브도 또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크리스트교 국가가 아닌 일본도 전 세계적인 열기와 상업주의에 따라 크리스마스가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초기의 의미가 비록 퇴색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도 자신의 생일이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이미 도쿄에는 한차례 눈이 내려서 거리거리마다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비롯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잘 어울려..

2015.12.26

[미사와] 24

24미유키 카즈야/사와무라 에이준 오늘따라 손이 야구공 실밥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영 꺼림칙해서 사와무라는 글러브 안에서 다시 공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손가락 마디에 걸리는 실밥의 오돌톨톨한 부분들을 감싸 쥐고 사와무라는 와인드업을 하기 위해 몸을 살짝 틀었다. 미유키 선배의 글러브 안으로 던지자. 스트라이크 존안에서 자신의 공을 받으려고 자리 잡고 있는 글러브를 볼 때면, 사와무라 마음 안쪽 깊숙이 숨겨있던 독점욕이 튀어나왔다. 그가 나의 공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세이도에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투수들 그리고 에이스가 아닌 자신이기에 정포수인 그가 사와무라의 공을 받아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포수와 합을 맞추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친 피칭을 하는..

2015.10.26

[빙흑] 22

22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미국은 몇 번 와도 적응이 안 되는 거 같네요.” 옅은 하늘색 머리가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머금어 진짜 하늘같아 보였다. 히무로는 얇은 쿠로코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손을 뻗어 쿠로코의 머리카락을 만지니 간지럽다는 듯 어깨를 살짝 움츠렸지만 이내 눈을 감고 그대로 히무로가 만지는 손길을 느꼈다. 쿠로코에게 누군가가 만진다는 것이 기쁜 일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 건 히무로였다. 얌전히 자신의 손길을 받고 있는 쿠로코를 보면서 히무로는 주인에게 핸들링을 받고 있는 햄스터 같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쿠로코에게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지만, 히무로는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쿠로코 테츠야는 표현이 남들보다 눈에 띄지 않을 뿐 솔직하게 자신의 감..

201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