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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노후타] 39

39엔노시타 치카라/후타쿠치 켄지 엔노시타 치카라는 자신의 몸에 다른 이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몇 만분의 일 확률로 나타난다는 다른 이의 이름은 운명적인 상대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동반했다. 중학교 때, 목 뒤가 유난히 간지러운 날이 있었다. 상처 위에 딱지가 앉아 아물기 시작하면 간지럽듯이 그날은 목덜미를 긁지 않으면 못 배기는 지경까지 왔었다. 결국 빨갛게 부어 화끈거리는 목 뒤를 집에 와서 거울로 비춰봤을 때, 그는 들고 있던 손거울을 떨어트릴 정도로 깜짝 놀랐다. 희미했지만 붉은 살 위에는 칼로 새긴 것 같은 모양의 한자가 써져 있었다. 二口. 뒷 글자는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으나 앞에 두 글자는 간단한 한자여서 뚜렷이 보였다.‘후…타쿠…치? 아니 가타카나인가. 니…로?’손가락으로 툭 튀어나온 상..

2016.04.06

[오이스가] 38

38오이카와 토오루/스가와라 코우시 최근 오이카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낼 아오바죠사이의 배구부 부원은 없었다. 그 정도로 배구부 주장은 상태가 별로였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이와이즈미에게 혼나던 것이 이제는 삼십 분에 한 번씩 욕을 얻어먹었다. 오이카와가 연습 도중에 이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나 티를 내고 다녔다면 그 눈치 없는 킨다이치조차도 주장 조금 이상하지 않냐고 쿠니미에게 물어봤을 정도였다. 오늘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이카와가 부원들끼리 연습경기를 하는 도중 한눈을 팔아 얼굴에 정통으로 스파이크를 맞곤 뒤로 나가 떨어졌다.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고는 체육관 한 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혀 놨다.아직까지 얼얼한 이마를 손으로 감..

2016.01.26

[쿠로켄] 37

37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싫어…”“켄마, 딱 한 번만!!!”제 앞에서 손뼉을 마주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사내를 보아하자니 켄마는 마음이 갑갑했다. 저번 주부터 한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끈질기게 부탁하는 쿠로오를 보면 들어줄 만도 싶었지만 그가 부탁하는 내용은 켄마의 상식 밖이었다. 아직까지도 보이는 검은 뒤통수를 마주하자니 켄마는 보스 공략에도 끄떡하지 않은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는 것 같았다.“…쿠로 대체 왜 그러는 거야”약간의 짜증과 한숨이 묻어나오는 질문을 했다. 그제야 쿠로오는 제 얼굴을 들어 켄마를 마주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쿠로오는 입을 열었다.“중학교 때부터 내 로망이었어.”켄마는 어처구니없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나갔다. 뭐 로망은 좋았다. 켄마 자신도 남자이므로 그런 류의..

2016.01.16

[쿠로켄] 36

36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연인 사이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을 가진 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은 제 각각 다른 차이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상황이 주어지더라고 개개인 마다 다른 선택에 의해 각기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신이라면 이런 상황이 재밌었겠으나 직접 당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선택에 대한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클뿐더러 자칫 잘못 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하루 신중을 기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것이 사람이었다.같은 마음. 세상에 똑같은 마음을 찾으라고 하면 찾을 수 없지만, 사람들은 비슷하다는 것도 같다는 테두리 안에 포함시켰다. 그만큼..

2016.01.05

[오이이와] 35

35오이카와 토오루/이와이즈미 하지메 오이카와 토오루는 인기가 많았다. 이맘때 쯤 나이의 여자아이들에게 키가 크고 준수한 외모에 운동을 잘하는 남자아이는 소녀들의 우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오이카와는 여자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가 대회에 나가는 날이면 그를 응원하는 여자아이들로 대회장이 가득 찼을 정도니 그 누구도 오이카와의 인기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유려한 화술 또한 그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여자들은 상냥해, 친절해, 멋있어 따위를 추임새로 삼아 오이카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그를 칭찬해도 오이카와는 스스로가 어디 한 석이 비어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비틀린 사람이었고 공허하다고 여겼다. 마..

2016.01.04

[쿠로츠키] 34

34쿠로오 테츠로/츠키시마 케이 “도쿄는 왜 이렇게 더운거에요.”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츠키시마가 말했다. 매미가 한창 울어대는 한여름이라 아스팔트 위로 지글지글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보면은 대체 이 살인적인 더위는 언제 물러가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츠키시마는 평소 그렇게 더위를 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쿄는 더위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를 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짜증나는 더위에 그를 더욱 들들 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쿠로오의 얼굴이었다. 도쿄사람들은 다 적응된 건가. 땀에 자꾸 미끄러지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다시 고쳐 올리고 츠키시마는 쿠로오를 바라보면 눈길을 거뒀다. 더 보고 있었다가는 아까부터 이어지던 푸념이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아서 츠키시마는 다른 ..

2015.12.31

[리에야쿠] 33

33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상, 저 좋아해요?”제 앞에 있는 키가 큰 남자는 뻔뻔하게도 이런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 덕에 야쿠는 부끄러움에 죽을 맛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것 같으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받을 때마다 드는 긴장감에 절로 침이 넘어갔다. 짙은 녹색의 큰 눈에는 부담스러우리만큼 야쿠 한사람만 담겨있었다. 이 질문을 받은 것이 대체 몇 번째인가. 대체 리에프는 언제까지 이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려는 거지. 무럭무럭 피어나는 생각에 더는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야쿠는 눈을 감아버렸다.“눈 떠.”단호한 음성과 함께 자신의 턱을 그러쥐는 차가운 손가락에 야쿠는 슬며시 눈을 떴다. 녹색의 눈이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다가와 삼켜버릴 것만 같았고 그 불안한 느낌에 야쿠는..

2015.12.22

[마츠켄] 32

32마츠카와 잇세이/코즈메 켄마 마츠카와 잇세이. 그는 통칭 마성의 남자로 불리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은 두터운 눈썹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바라만 봐도 그가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느낌을 받는 다고 몇몇 여자는 증언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눈빛에 실려 간 사람도 꽤나 있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훤칠한 키와 꽉 닫힌 입매 또한 매력적인 요소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과묵한 성격조차 그의 신비로운 매력을 더해준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컴퓨터공학과인 마츠카와는 공대뿐만 아니라 다른 단과대에서도 유명했다. 남자들은 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고 여자들은 선망의 눈으로 바라봤고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마츠카와가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웠다. 성적 또한..

2015.12.14

[엔노후타] 31

31엔노시타 치카라/후타쿠치 켄지 오늘은 내 손으로 너, 엔노시타 치카라를 묻은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너는 갑작스레 나를 떠났다. 내가 너를 떠나보낼 마음에 준비를 가지게 하지도 못한 채 너는 평온한 미소 하나만 짓고는 나에게서 떠나갔다. 연고지 하나 없는 너를 내 손으로 차갑게 식은 땅에 묻을 때, 나는 너에 대한 내 마음도 같이 묻어버렸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너는 지옥에서 돌아온 것 마냥 나를 끈질기게 붙잡았다. 그 붙잡음에 돌연 크나큰 만족감을 얻어서 나는 아직도 너를 못 잊음이 그렇게도 좋았다.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뭐라도 된 것 같이 대단해보였고 사별했음에도 다른 이와 사랑하지 않고 너를 생각하는 나에 대해 우쭐한 감정을 느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으로 너..

2015.12.06

[리에야쿠] 30

30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리에프는 자존감이 낮은 편에 속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리에프는 겉으로만 당당하고 자존심이 높을 뿐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자신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길이 없었으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리에프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때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했으므로 어찌 보면 리에프에게 사랑은 당연한 일이었다.그가 마음에 담은 사람은 고등학교 배구부에 함께 있었던 자신 보다 두 살 많은 매니저였다. 처음에는 그저 이렇게 작은 사람이 존재하나 싶은 정도의 생각 밖에는 없었..

2015.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