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야쿠] 11-1

pinn_pond 2015. 10. 16. 12:31


11-1

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SIDE Y

 

, 죄송합니다.”

한가롭게 매점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쿠로오의 긴급 소집 라인을 받고 체육관으로 뛰어가던 중이었다. 급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곧 간다는 라인을 입력하면서 뛰어가고 있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부딪쳐 버렸다. 콘 위에 있던 아이스크림이 부딪친 사람의 옷에 묻어버렸다. 귀찮게 되었다.

괜찮아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분명 체육관 근처라서 대부분 알음알음 하는 사이인데도 부딪친 사람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얼굴을 들어 부딪친 사람을 바라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키가 컸다. 190이 넘으려나.

, 많이 묻었네요. 세탁비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사람의 교복 재킷은 이미 아이스크림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몇 학년 몇 반이지? 알아야 세탁비를 줄 텐데 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학년과 반을 물어보려고 하려던 때, 갑자기 바람이 쌩하니 강력하게 불면서 어디선가 싱그러운 풀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아직 봄일 텐데.

바람이 세게 불어서 눈에 뭔가 들어간 것 같았다. 이물질이 거슬려 눈을 비볐지만 빠지지 않아서 나는 한 쪽 눈을 감은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때, 나와 부딪쳤던 사람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디 한 번 봐요.”

희고 큰 손이 내 눈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눈 안에 들어간 이물질이 너무 거슬려서 결국 그 사람에게 눈을 맡겼다. 떠지지 않았던 눈이 그 사람의 손에 의해 억지로 벌어졌고, 그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내 눈을 혀로 핥았다. 생경한 감촉에 그대로 그 사람을 밀어냈다.

뭐하는 짓이야!!”

말 그대로 놀랬다. 타인에게 이런 접촉을 허락한 적이 없던 터라, 하마터면 혼현이 튀어나올 뻔했다. 내 이런 놀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람은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눈에 들어간 거 빠졌잖아요.”

정말로 눈에 들어간 것이 빠졌는지 눈이 매우 편안해졌다. 그러나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그에게 뭐라고 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나에게로 다가와 볼에다 대고 입을 맞추고는 그대로 귀에 속삭였기 때문이었다.

저는 1학년, 하이바 리에프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내 남편이 될 남자, 하이바 리에프와의 첫 만남이었다.




알고 보니 나와 부딪친 사람은 새로 들어온 배구부 신입 부원이었다. 나보다 두 학년 아래의 학생으로 미들 블로커 포지션을 지망하는 사람이었다. 러시아 혼혈이라 그런지 키도 컸고 팔 다리도 다른 부원들 보다 쭉쭉 뻗어있었다. 배구를 시작한 것은 이번에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라고 했지만 타고난 신체조건과 뛰어난 감각으로 레귤러까지 진출하는 것은 그에게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옷에 아이스크림을 묻힌 죗값으로 그는 세탁비를 받지 않는 대신 자신에게 리시브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부장인 쿠로오는 역시 리베로에게 리시브를 배우는 것이 빠르지 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로 합리화를 하며 나에게 리에프를 맡겼다.

야쿠 선배. 제가 앞에 있는데 다른 생각은 잠깐 미뤄놓으시죠.”

초록색 눈이 번뜩이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는 백사자였다. 리에프는 반류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자신이 고양잇과 중종으로 백사자의 혼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쿠로오와는 아버지 쪽 먼 친척뻘로 같은 고양잇과라 그런지 둘은 처음부터 친해 보였다. 그러나 리에프를 보면 사자인 것이 확실했지만, 때때로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사자의 그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최근 들어 가끔씩 악몽을 꾸기도 했다. 백사자인 리에프가 나를 먹어치우려고 하는 꿈을. 사실 경종인 나에게 중종과 같이 있는 것은 힘들었다. 그들의 혼현은 내가 감당하기 힘든 크기였고, 쿠로오와 달리 리에프는 자신의 혼현을 흘리고 다니는 것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간종인 켄마를 반려로 삼고 있는 쿠로오는 자신의 혼현을 컨트롤 했지만, 리에프는 육식동물의 혼현을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나에 대해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고 타인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늘 신경이 곤두 서있었고 나의 확실하고 안전한 영역을 좋아했다. 그러나 배구가 좋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타인과 어울리며 배구를 하고 있었다.

혼현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반류들은 나를 그냥 원인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배워오던 것도 있었고, 내 성격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감추는데 능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오던 날, 감기가 걸려있던 몸이 비까지 맞게 되어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한 내가 혼현인 미어캣으로 변해 정원 구석에 쓰러져있었을 때, 지나가던 켄마가 나를 보고 구해줬다. 그리고 켄마와 그의 연인인 쿠로오가 내 혼현을 유일하게 아는 가족 외의 반류가 되었다.

자꾸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나를 껴안으면서 턱을 내 정수리에 비벼대는 리에프 덕에 정신이 돌아왔다. 이 백사자는 이런 스킨십을 꺼리지 않았다. 러시아 혼혈이라서 그런가. 시답잖은 생각을 한 나는 그대로 리에프의 등을 찰싹하고 때렸다.

아얏! 아파요!!”

어디서 하늘같은 선배를 함부로 대하는 거야

내 손이 매웠는지 긴 팔로 자신의 등을 만지면서 리에프는 불쌍한 척 연기했다. 안 속는다. 리에프. 처음에 만났을 때 그의 인상은 말수가 적고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같이 연습을 하고 지내보니 장난기가 많고 경박하기 짝이 없었다. 유독 자신한테만 신장에 대한 이야기나 스킨십으로 장난을 걸었다.

야쿠 선배~ 같이 가요!”

하교하는 중에 다시 리에프가 나를 쫓아왔다. 물론 집이 같은 방향이긴 했지만 그를 피해 일찍 또는 늦게 나와도 그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당연한 수순인 마냥 나와 제 손을 깍지 껴잡았다. 처음 손이 잡혔을 때는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중종인 그리고 체격차이가 월등히 나는 남자의 힘을 이겨내기란 버거웠다.

리에프... 더워

? 저는 괜찮은데~ 그리고 제 손 차갑지 않나요? 다들 여름이면 시원하다고 좋아하던데~”

리에프가 말한 대로 그의 손은 서늘했다. 잠시만 이대로 있을까. 약간 마음이 너그러워 진 것 같았다. 집까지 가는 내내 리에프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했고, 나도 그런 리에프에게 장단을 맞춰 주며 대답했다. 가끔씩 리에프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마다 한 대씩 꿀밤을 때려주기도 했다.

이제 다 왔다. 나 먼저 들어갈게.”

리에프의 집은 우리 집보다 두 블록을 더 가야했다. 얼른 집에 들어가 씻고 싶은 마음에 잡혔던 손을 놓고 가려고 했지만 리에프 쪽에서 놔주질 않았다.

손 좀 놔줘. 리에프

잡힌 손을 흔들면서 이야기 했지만 리에프는 요지부동이었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잡힌 손을 타고 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전신이 한기에 싸여있는 기분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리에프는 알 수 없는 초록색 눈으로 나를 내려다 봤다. 가끔씩 리에프는 이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빤히 바라보는 리에프 때문에 나는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사소한 부분까지 파헤쳐지는 기분이었다. 이 눈빛 때문에 악몽을 꿨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백사자가 나를 잡아먹으려는 꿈.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싱그러운 냄새가 훅 끼치면서 리에프가 나의 뺨에 키스를 했다.

잘 가요. 야쿠 선배.”

 



밤새 악몽을 꿨다. 이번엔 사자가 아닌 뱀이 나왔다. 하얗기도 하고 은색 같기도 한 커다란 구렁이가 내 몸을 칭칭 감고 한입에 삼킬 것처럼 노려보았다. 사자보다도 더 섬뜩했다. 결국 가위에 눌렸고 눈을 떠보니 미어캣으로 변해 침대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열이 조금 나기도 한 것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등교를 했다. 원래 등교할 때 끈덕지게 붙어있던 리에프 녀석도 보이지 않았고 학교에서 또한 마주치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져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배구 연습을 가기위해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이거 야쿠 아냐?”

체육관으로 가는 도중 누군가가 아는 체를 했다. 나에게 말을 걸면서 다가오는 남자를 자세히 바라보니 2학년 때 같은 반이던 나카시마 하야토였다. 그는 불쾌했다. 나에게 했던 그의 언동과 행동들은 역겨워서 2학년 중반 무렵 나는 그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이번에도 그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했지만 나카시마가 갑자기 팔을 낚아 채 나를 자신의 쪽으로 끌고 갔다.

나카시마 이거 놔.”

아직도 나한테 날을 세우네. 이거 섭섭한데?”

그는 시정잡배들이 여자들한테 추근거리는 태도를 나에게 취했다.

나 배구연습 가봐야 해. 그럼 이만.”

어딜 가시려고

나카시마는 체육관으로 가려던 나를 다시 한 번 잡아 담장과 자신의 사이로 밀어 넣었다. 오늘 악몽은 이것을 말한 것인가. 일진이 사납다.

너 진짜 재수 없어. 니가 뭐라도 된 거 같냐?”

뭔 소리야

그 눈빛 역겹다. 날 쓰레기 보듯 바라보는 네 눈빛. 근데 그거 알아?”

“...

너 존나 꼴려.”

뭐라고?”

원인 주제에 정복하고 싶게 생겼어.”

원인? 나카시마도 반류인가. 때 아니게 태연한 생각을 했지만 갑자기 몸을 밀착해오는 나카시마 때문에 바짝 정신이 들었다. 메스껍게도 그는 나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거머리 몇 마리가 허벅지를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역겹고 구역질이 나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밀리지가 않았다.

상의 속으로 들어오는 나카시마의 손의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갈색 곰이 보였다. 몽구스과 미어캣인 나는 중간종 이상만 있는 곰과를 이길 수 가 없다. 나카시마는 지금 혼현으로 나를 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처음 느끼는 혼현으로 나를 지배하려는 압박 때문에 턱이 덜덜 떨려오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밀려오는 두려움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카시마가 내 상의를 벗겨 본격적으로 만지려고 하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나카시마가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하얀 게 보였던 거 같기도 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뭔가 또 꿈을 꿨는데 자세히 생각은 안 났지만 악몽은 아닌 것 같았다. 만일 악몽이라면 지금 눈 뜰 힘조차 없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켜 침대 헤드부분에 몸을 기대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익숙한 내 방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방문을 열고 리에프가 들어왔다.

, 선배 일어나셨어요?”

평소 인사하는 억양과 다르지 않게 리에프가 물어봤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저앉았다.

무리하지 마세요. 저희 집이에요.”

, 리에프의 집인가. 갑자기 불현 듯이 아까의 상황이 생각나 다시 긴장했다. 혼현으로 내려찍는 그 느낌. 두려웠다. 나는 반류의 세상에선 너무 작고 나약한 존재였다.

선배...”

떨고 있는 내 몸을 리에프가 안았다. 싫다는 표현으로 몸을 뒤로 뺐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 리에프는 다시 나를 껴안았다. 그가 나를 안음과 동시에 요즘 들어 느껴왔던 싱그러운 냄새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약간 긴장이 풀린 나를 느꼈는지 리에프는 내 목에 코를 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야쿠 선배한테는 좋은 향기가 나요.”

리에프가 내 쇄골에 가까이 밀착해 말하니 그 부분이 간질거렸다.

? 무슨 향기

좋은 향기요. 선배, 물어볼게 있는데

뭔데

선배도 반류죠?”

아뿔싸. 몸이 티가 나게 굳었다. 이 녀석은 대체 나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지.

뭔소리야

손으로 리에프의 머리를 약간 밀어냈지만 그는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빤히 바라보는 초록색 눈동자에 나는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위험해. 나카시마보다 위험해.

알고 있어요.”

갑자기 눈앞에 백사자가 나타났다. 맹수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일 때와 같은 초록색 눈동자였지만 사자의 안광은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먹힌다.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앞에 다시 사람으로 변한 리에프의 모습이 보였다.

...리에프

떨리는 목소리로 리에프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고 오로지 벗겨먹을 듯한 맹수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뜨거운 눈빛 때문에 나의 심장이 요동쳤다. 중종이 내뿜는 혼현은 급이 달랐다. 리에프가 뿜는 페로몬의 향기 또한 나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와 머리가 윙윙하고 울렸다.

야쿠 선배. 좋아해요.”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 리에프는 담백하게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혼현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초인적인 힘으로 참아냈다.

“...장난 하지 마, 리에프

장난 아니에요.”

선배.”

. 낮은 목소리로 리에프가 나를 불렀다. 얼핏 사자가 그르렁 거리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리에프의 입술이 점점 나에게로 다가왔고 나는 뒤로 얼굴을 빼고 싶었지만 뺄 수가 없었다. 입술이 거의 닿기 직전에 리에프가 말했다.

, 선배를 제 걸로 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자가 나를 집어 삼켰다.

 

 

 

 Reference Sexpistols.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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