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켄] 10

pinn_pond 2015. 10. 16. 12:26


10

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켄마, 괜찮아?”

으응. 하고 조그만 대답이 들렸다. 쿠로오는 자신의 연인이 걱정되었다. 켄마가 저번부터 계속 기침을 하더니 결국엔 독감이 크게 들어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켄마의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탓에 전적으로 간호를 쿠로오가 맡고 있었다. 처음에는 간병이벤트를 외치면서 기대했던 쿠로오는 유독 심하게 들은 독감 때문에 고생하는 켄마를 보고 이제는 간병이벤트를 잊은 채 걱정뿐이었다.

쿠로오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침대에 누어있는 켄마에게로 걸어가 입을 맞췄다. 코가 막힌 것인지 입으로 숨을 쉬어 켄마의 입술은 까슬까슬 해져 있었다. 곧 쿠로오가 손을 들어 켄마의 이마에 있던 물수건을 치우고 뺨에 손을 댔다. 아직도 갓 찐 호빵처럼 따끈따끈했다.

열이 쉽게 안 내리네. 내일은 다시 병원 가보자.”

이렇게 입을 맞춰도 아무렇지 않은 사이가 되기까지는 쿠로오가 많은 노력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였던 둘은 언제나 함께였고, 켄마가 하고 있는 배구도 쿠로오의 권유로 하게 된 것이었다. 둘 사이에는 친구 이상의 감정은 없었는데, 그것을 먼저 깬 것은 쿠로오였다. 중학교 때부터 어느 샌가 자신이 켄마를 좋아한다고 느꼈고, 치밀한 그의 성격답게 켄마가 고백을 받아들이도록 3년간 티 안 나게 노력했다.

한 살 어린 켄마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배구부에 다시 넣고 그대로 고백했다. 처음에 우왕좌왕하던 켄마는 쿠로오가 거세게 밀어 붙이자 약간 체념하는 투로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 때 쿠로오의 기분은 인터하이에 입성한-물론 인터하이는 가보지 못했다-기분이었다. 애정표현은 쿠로오 쪽에서만 적극적으로 했지만 그것마저도 쿠로오는 행복했다.

일단은 죽 좀 먹자. 엄마가 너 먹으라고 끓여줬어.”

가방에 있던 죽통을 꺼내더니 주방으로 가서 그릇에 부어 담아 쟁반에 올려 다시 켄마 방으로 가지고 왔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죽을 켄마는 의외로 잘 먹었다. 분명 오늘 한 끼도 안 먹은 것이다 라고 쿠로오는 생각했다. 죽을 다 먹은 켄마에게 약을 챙겨 먹이고 쿠로오는 갈 준비를 했다. 내일은 아침 연습이 있어서 일찍 가야했다.

내일은 아침 연습만 있으니깐, 학교 끝나면 바로 올게.”

“...어머니한테 죽 잘 먹었다고 말해줘

네네-”

가방을 들고 다시 켄마에게로 가 이마에 새로 물수건을 갈아 준 뒤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 방을 나가려했다. 그 때 켄마가 갑자기 쿠로오의 옷깃을 붙잡았다.

?”

“...

잘 안들려, 켄마

드래곤...퀘스트...”

아아, 내일이야? 알았어.”

아픈 와중에도 좋아하는 게임은 생각이 나는 구나. 쿠로오는 귀여운 켄마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켄마가 한 달 전부터 발매일 만 기다렸던 게임이어서 이미 쿠로오도 알고 있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관심이 없던 켄마가 유일하게 신간 게임이 나오면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고, 쿠로오는 그런 귀여운 모습을 좋아했다.

 



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가 집에 데려다주고 쿠로오는 신작 게임을 사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안정이 중요하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라는 누구나 알법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도 주사를 맞았는지 어제보다는 열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 벌써요?”

. 아무래도 드래곤 퀘스트는 인기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판매직원이 고개를 숙이면서 까지 사과했다. 설마설마 했지만 발매일 부터 매진이었다. 이미 다녀간 두 곳에서도 매진이어서 절망적이었지만, 신작 게임을 받고 기뻐할 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아직 몇 군데가 더 남아있기에 쿠로오는 다시 걸어갔다.

이후로 몇 군데를 더 돌아봤지만 매진이라는 말 밖에는 듣지 못했다. 내일 다시 가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실망했던 마음을 치우고 켄마가 좋아하는 사과파이를 사가지고 다시 켄마의 집으로 향했다.

켄마의 집에 도착하니 조용하던 집에 켄마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고 있었다. 쿠로오는 조심조심 켄마의 방으로 가면서 귀를 기울였다.

“...괜찮아. 아냐. . 쿠로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침대에 앉아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켄마는 대답하고 있었다. 쿠로오는 켄마의 방의 문을 살짝 열면서 손을 흔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쿠로 왔어. 알았어.”

켄마는 짧게 대답하더니 쿠로오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누구?”

엄마

어머니가 무슨 일이시지. 쿠로오는 짧게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테츠로군. 고마워요.’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우리가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상태라서..’

괜찮습니다. 오늘 병원 갔는데 곧 열 떨어질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무쪼록 우리 켄마 잘 부탁해요. 고마워요 테츠로군

맡겨만 주세요!”

하고 말하더니 쿠로오는 호탕하게 웃었다. 켄마는 그런 쿠로오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분명 엄마가 이상한 말 했겠지. 쿠로오는 몇 번 더 말을 주고받더니 보이지도 않는 가상의 켄마 어머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어제보단 나아

쿠로오가 건넨 핸드폰을 받아들고 켄마는 다시 침대에 기댔다. 분명 어제보단 나았지만 아직도 머리가 윙윙하고 목이 따가웠다. 아까 분명 엄마한테 들은 잔소리가 독이 된 게 분명해. 켄마가 생각했다.

이거 먹어.”

제과점에서 사온 사과파이 중 한 조각을 떼어서 켄마에게 건넸다. 달콤한 사과향이 켄마의 식욕을 자극했다. 맛있게 사과파이를 먹는 켄마의 모습을 보고 쿠로오는 내심 흐뭇했지만 곧이어 비보를 전해야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드래곤 퀘스트.. 매진이래..”

실망했어?”

별로

말은 별로라고 하면서도 사과파이를 맛있게 먹던 켄마의 입이 삐죽 하고 약간 나온 것 같았다.

우리 켄마 실망했구나~”

“...안했어

했잖아.”

“...안했어

재미가 들려서 놀렸더니 켄마는 약간 삐진 것 같았다. 쿠로오는 이런 켄마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켄마의 입에 뽀뽀를 했다. 달콤한 사과잼이 켄마의 입술에서 쿠로오의 입술로 옮겨왔다. 쿠로오는 입가에 뭍은 잼을 혀로 한번 핥고는 다시 켄마에게 말했다.

내일 다시 찾아볼게.”

“...아냐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아까보다는 반응이 유해져서 쿠로오는 내심 뿌듯했다. 어서 양치하고 자야지. 쿠로오는 침대에 붙어있던 켄마의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데려가 양치를 하는 것을 감시 한 뒤, 다시 침대 위로 눕혔다. 어제보다 열이 떨어진 켄마가 잠이 들 때까지 쿠로오는 켄마의 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늦었다. 늦었어!!”

정신없이 골목을 뛰면서 쿠로오가 혼잣말을 했다. 원래라면 저녁때쯤 켄마 집에 가서 저녁과 약을 챙겨주고 잠들 때까지 보고 왔어야 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연습 시합이 잡히는 바람에 늦게 끝나버렸다. 물론 켄마는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쿠로오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신작 게임이 들려 있었다.

연습 시합이 끝나자마자 켄마 집에 달려가고 싶었으나, 어제 한 약속도 생각나서 다시 게임샵을 전전했다. 이곳저곳을 다녀도 매진이라는 말 밖에 돌아오지 않았으나 쿠로오는 한번 더를 외치면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결국엔 그의 불쌍한 모습에 어느 게임샵 판매원이 몰래 숨겨 놓은 드래곤 퀘스트를 건네주었다.

신작 게임을 받고 아이처럼 기뻐할 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쿠로오는 켄마의 집으로 들어갔다. 뿌듯한 마음과 빠른 걸음으로 켄마의 방에 도착한 쿠로오는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조용히 켄마의 방문을 열었다.

켄마... 나 왔어

대답이 없었다. 불을 켜서 켄마를 자세히 보니 자신의 연인은 이미 자고 있었다. 불이 켜져서 눈이 부신건지 자는 상태에서도 켄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켄마의 모습을 보고 쿠로오는 서둘러 다시 불을 껐다.

켄마가 자는 모습을 보고 쿠로오는 혼자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하는 걱정과 신작 게임을 들고 칭찬받을 생각에 부풀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약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어제보다도 더 평온한 모습으로 자는 켄마를 보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쿠로오는 침대의 머리맡으로 가 앉아서 자고 있는 켄마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해. 네가 아직 나를 나만큼 안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까지도 좋아해. 언제나 못 해줘서 미안해.”

분명 켄마가 눈을 뜨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하면 창피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쿠로오의 전매특허는 오글거리는 말이었다.

넌 내 뇌이자 척추이자 심장이야.”

네코마 배구부 부원들이나 다른 학교 사람들에게 켄마를 소개할 때 저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쿠로오 자신에게 켄마의 의미를 정의한 말이었다. 소꿉친구였던 켄마는 어느 샌가 자신에게 스며들어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다. 쿠로오는 잠이 들은 켄마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더니 이내 침대 머리맡에 얼굴을 묻고 바닥에 앉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쿠로오가 정신없이 잠에 빠질 무렵, 켄마는 눈을 떴다. 쿠로오가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희미하게 의식이 들기 시작했지만, 갑자기 진지해져버린 쿠로오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켄마도 쿠로오가 싫은 건 아니었다. 아니 좋아했다. 켄마의 무덤덤한 인생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은 그의 소꿉친구였기 때문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감정표현이 서툰 켄마에게 연애는 어려웠다. 쿠로오는 그의 성격답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켄마는 표현은커녕 쿠로오의 표현에 대해 제대로 답해주는 것도 버거웠다.

그러나 쿠로오는 그런 켄마를 잘 알기에 표현 없음에 대해 서운해 하지도, 표현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켄마는 고양이 같은 눈을 들어 깊은 잠에 빠져있는 쿠로오의 모습을 보더니 그의 까만 머리칼을 손으로 한번 쓸었다. 기분 좋은지 쿠로오가 자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자신만 생각해주는 쿠로오를 위해 켄마는 약간 용기를 내기로 했다.

 



쿠로오의 감고 있던 눈이 움찔거렸다. 채광이 좋은 켄마 방의 창문은 아침이 되니 세상의 모든 햇살을 혼자 끌어당기는 것처럼 굴었다. 눈이 부셔서 단잠에 빠져있던 쿠로오는 일어났다. 불편하게 침대에 기대어 앉은 채로 잤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쿠로오는 기지개를 피려고 손을 들려했으나 자신의 손 위에 무엇인가 올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바로 켄마의 손이었다.

이불 속에서 빼꼼하고 삐져나온 켄마의 손이 쿠로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우연히 자다가 뒤척여서 잡은 거라 보기에는 켄마의 손이 자신의 손에 깍지까지 껴 있었다. 자신의 연인의 작은 행동에 쿠로오는 피곤했던 몸이 순간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행복했다.

쿠로오는 피실 피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켄마의 손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참동안 켄마의 손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쿠로...그만...”

어느새 잠이 깬 켄마가 부끄러운지 벽을 바라보면서 쿠로오에게 이야기했다. 그런 켄마를 보고 쿠로오는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켄마를 뒤에서 안았다. 어째 열이 많이 내렸는지 뜨겁지 않았다. 켄마의 목 근처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한 번 쉬더니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는 신작 게임을 들어 켄마에게 보여줬다.

! 드래곤 퀘스트!”

“...우와

부끄러운지 내내 감고 있었던 켄마의 눈이 떠지면서 어린 아이처럼 초롱초롱 빛났고 기대감 때문인지 볼도 약간 상기된 것처럼 보였다. 역시 이런 켄마의 모습을 보니 어제의 수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쿠로오는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해서 켄마에게 장난을 걸었다.

진짜 힘들게 구했다. 이런 나 어때. 좋지?”

별로

아니 드래곤 퀘스트 좋냐고 물어본 건데

좋아

? 내가 좋다고?”

아니

드래곤 퀘스트 안 좋아?”

더 이상 대답할 가치가 없는지 켄마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켄마의 모습을 보고 쿠로오는 귀엽다고 생각한 뒤 켄마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진짜 좋아해. 켄마

나도

켄마가 거의 기어들어가는 개미 목소리만큼 대답했지만, 쿠로오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다시 듣고 싶어서 켄마에게 집요하게 졸랐으나 결국 다시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쿠로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아침이었다.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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