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코즈메 켄마/히나타 쇼요
‘어디쯤이야?’
핸드폰이 짧게 진동해서 확인을 해보니 라인 메시지가 와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이 눈앞에 있지 않음에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히나타는 짧게 웃었다.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핸드폰 쪽으로 몸을 숙여 답장을 위해 자판을 꾹꾹 눌렀다.
‘세정거장쯤 남았어’
송신. 큰일이라도 치른 듯 히나타는 기지개를 한번 피더니 푹신한 등받이에 다시 몸을 맡겼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주황색 머리가 반짝였다. 히나타는 즐거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어서 자꾸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만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설렘. 지금 히나타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히나타가 신칸센을 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혼자 타보는 것이 처음이긴 했지만 그나마 타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안겨 탔던 것 외에는 없었다. 혼자서 도쿄까지 가는 것은 겁나지 않았지만 약간 걱정되기는 했다. 깜빡 졸았다가 역을 잘못 내리면 어떡하나. 이것이 히나타의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미야기에서 도쿄까지 가는 내내 히나타는 눈을 부릅뜨고 자지 않으려 애썼다. 어제 저녁까지 배구 연습을 해서 몸이 많이 지친 상태였기에 졸음이 쏟아졌지만, 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잠을 이겨내려 했다. 그러나 히나타는 몰랐다. 도쿄는 신칸센 종착역이라는 것을.
‘응. 쇼요. 빨리 와’
상대방답지 않은 메시지에 히나타는 쑥스러움을 느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사귄다는 기분이 다시 들었기에 밀려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보려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즐거움을 말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째 신칸센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우와!! 도쿄다 도쿄!”
히나타는 역에 내리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츠키시마가 옆에 있었다면 촌스럽다고 비웃었겠지만 개의치 않고 미야기보다 크고 넓은 도쿄 역을 구경하면서 히나타는 호기심에 눈이 번쩍거렸다. 이미 합숙으로 몇 번 도쿄에 온 히나타이지만 신칸센을 타보고 혼자 오기는 처음이라 새로 보이는 풍경에 탄성을 내질렀다.
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와서 히나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와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켄마치고는 대단한 일이었으나 내막에는 쿠로오의 다그침이 있었다. 히나타와 교제하는 사이라는 걸 안 쿠로오는 자신의 연애경험을 토대로 켄마에게 이것저것 코치를 해주었다. 물론 8할은 흘려듣는 형식이었지만.
일단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이 먼저 가서 기다려라 였다. 하물며 히나타는 미야기 현에서 오는 것이라 데리러 나가야했기 때문에 더더욱 쿠로오가 강조했다. 대략 30분 정도 일찍 역에 도착해서 닌텐도를 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게임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신칸센이 도착해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쇼요, 이쪽이야”
멀뚱멀뚱 서있는 히나타의 옷깃을 잡아끌면서 켄마가 말했다. 많은 인파로 북적대는 역이라서 잃어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켄마는 히나타의 손을 꼭 잡았다. 둘 다 체격이 작은 편이라 인파에 묻힐 뻔 했지만 가까스로 밖에 나올 수 있었다.
“진짜 신기하다. 역시 도쿄야 도쿄”
함박스테이크집을 나오면서 히나타가 기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도쿄에서도 명물로 장난감기차가 주문한 메뉴를 서빙해주는 아기자기한 음식점이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소한 일에도 기뻐해주는 히나타가 켄마는 좋았다. 자신에 비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고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짓는 히나타를 보면 즐거웠다.
“그래서 켄마 도쿄 타워는!”
그래서 끌렸는지 모르겠다. 자신과는 정 반대인 히나타를 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발전하여 둘이 사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둘이 미아가 되어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도쿄 타워는 여기서 많이 멀어..”
“에? 도쿄를 몇 번이나 와도 도쿄타워는 보기 어렵구나..”
도쿄 타워를 볼 수 없다는 말에 풀이 죽은 히나타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켄마 역시 히나타에게 도쿄 타워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정말로 먼 거리라서 도쿄 타워에 도착하면 보기만 하고 바로 역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빠듯했기에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리를 해서 도쿄 타워에 가기에는 오랜만에 만난 시간이 소중했다.
“다음에는 꼭…가자..”
다음이라는 켄마의 말에 히나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힘차게 끄덕였다. 다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히나타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지라 연애라는 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또 켄마는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평소 히나타 답지 않은 사고방식이긴 해도 연애란 무릇 그런 것이었다.
데이트 코스라고는 해도 밥 먹고 도쿄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들이 연애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나 히나타도 어엿한 고등학생. 연애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은 가지고 있었다. 지금 켄마와 하고 있는 것은 친구와도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행동들이었다. 약간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히나타는 내색하지 않았다.
“게임 스토어 가도 돼?”
한참 생각하던 히나타에게 켄마가 불쑥 물어봤다. 금발머리를 흔들면서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어보는 켄마를 보면서 히나타는 알겠다고 하면서 손을 잡았다. 잡힌 손이 어색한지 켄마는 표정을 굳히고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불편한 것인가. 히나타는 예상치 못한 켄마의 반응에 당황스러웠고,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잡았던 손을 놨다.
처음보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게임 스토어를 가는 내내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찌 보면 약간 서로 거리를 두고 걷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괜히 손을 잡으려 했나,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건가. 히나타는 온통 자책과 혼동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아, 난 바보인가. 자기에게 늘 바보라고 놀리는 카게야마의 얼굴이 생각나버렸다.
게임 스토어에서도 둘은 그다지 말이 없었다. 켄마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며 히나타 역시 아까의 일 때문에 제대로 사고회로가 돌아가지 않았다. 신작 게임을 집어들고 계산을 하기 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물론 게임 스토어를 나가고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내내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음..무슨 게임 샀어?”
히나타가 최대한 용기를 쥐어 짜내 켄마에게 물어봤다. 일단 최고 무서운 상황-카게야마의 뒤통수에 서브를 꽂았을 때-를 생각하니 이쯤은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RPG..”
말끝을 흐렸지만 그래도 대답을 해준 것이 기뻤다. 그리고 더 몇 마디를 나눴고 히나타의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신칸센이 역으로 진입한다는 안내방송 멘트가 나오면서 좋았던 기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이젠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었다. 다시 만날 날을 알 수 없으니 롤러코스터처럼 기분이 추락했다.
“아, 신칸센 오나보다.”
“응. 별거 한 거 없는 거 같은데 시간이 빨리 가네.”
“..서 그래”
“응? 잘 안 들렸어. 미안”
“…아냐”
켄마가 무엇인가 말을 한 거 같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는 켄마에게 다시 캐묻기는 예의가 아닌 느낌에 더 이상 말하지 잇지 못했다. 신칸센이 개찰구에 들어오고 탑승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출발하려면 5분이 남아서 히나타는 신칸센에 타지 않았지만 딱히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쉬움이 컸다. 그렇다. 지금 히나타의 심정은 아쉬움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제대로된 데이트를 꿈꾸고 멀리 있는 도쿄까지 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무난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데이트가 이런 것이라면 두 번은 못하겠다고 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남은 시간이라도 켄마와 함께 있고 싶었다.
“쇼요, 이제 타야하지 않을까?”
“응.. 그래야겠지.”
켄마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구나.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이대로 신칸센에 타면 좌석에 앉자마자 울 것만 같았다. 잘해주지 못한 것만 생각나고 아쉬운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래도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눈물을 꾹 참았다.
“도착하면 메시지 보낼게!”
최대한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켄마에게 말했다. 그 웃음에 화답이라도 해주는 듯이 켄마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줬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뒤돌아 탑승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켄마가 히나타를 불렀다.
“쇼요!!”
히나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봤다. 그리고 입술에 무엇인가 촉촉한게 닿았다. 켄마의 입술이었다.
“…잘가.”
약간 볼이 상기되어 보이는 켄마는 수줍은 표정으로 히나타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어안이 벙벙한 히나타는 그저 황망한 눈으로 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출발 직전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정신을 차리고 탑승 문으로 뛰어갔다.
“켄마!! 갈게!!”
“…잘가 쇼요!”
신칸센에 타자마자 몸체가 흔들리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표를 한번 보고 두리번거리면서 좌석을 찾아 헤매던 히나타는 승무원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좌석에 몸을 묻고 긴장이 풀렸는지 잠기운이 돌았다. 징-하고 진동이 몇 번 울려 잠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히나타를 붙잡았다.
뭐지뭐지. 잠기운에 취해있으면서도 핸드폰을 찾아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히나타가 생각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폴더를 열어 메시지를 확인한 히나타는 잠기운도 사라진 것인지 해맑게 웃으면서 핸드폰 액정에 입을 맞췄다.
‘쇼요랑 있으면 시간이 빨 리가. 아쉽다. 다음에도 꼭 놀러와. 재밌게 놀자. 좋아해 쇼요’
2015.10.07.
for danji
pinn_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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