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보쿠] -3

pinn_pond 2016. 1. 2. 02:23


-3

아카아시 케이지/보쿠토 코타로



 


찬란했던 빛이 꺼지게 된다면 당연한 수순인 듯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카아시는 이제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 수 있었다. 밀랍이 얼마 남지 않은 양초처럼 위태롭게 빛을 발하는 불은 안타까웠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눈앞에 꺼져가는 영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양초의 불은 도움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런 영혼이 촛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촛불은 스스로 꺼지길 원하지 않았으나 그 영혼은 스스로를 방치하고 꺼져감을 받아들였다. 아카아시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코트를 누비던 그를 바라봤다. 보쿠토 코타로. 아카아시 케이지의 에이스이자 주장이자 연인이었다.

모로 누어있는 몸을 바라봤다. 아직까지는 탄탄해 보이는 그의 몸은 건장해보였지만 실상 그 안에서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코트를 누비던 다리와 자신의 토스를 힘껏 때리던 팔, 격하게 움직일 때면 얼굴에서 떨어지던 땀방울. 제 아래서 흔들릴 때면 늘 웃어 주던 얼굴과 서로 사랑으로 몸을 섞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던 그의 중심까지. 두 달 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사이에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무엇이 그를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부상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아카아시는 그 생각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등학교 배구의 최고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인터하이 입성은 늘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하던 보쿠토 마저 초조하게 만들었다. 몇 걸음 안남은 정상의 자리는 사람의 욕심을 자극시켰다. 평소에도 남들의 배는 더 연습하던 보쿠토를 더 채찍질했고 무리하게 만들었다. 무리는 그래, 무리하는 것은 그 어느 분야에서도 좋은 꼴을 보여줄 수 없었다.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 붙여 연습하던 보쿠토는 인터하이의 첫 경기에서 아카아시의 토스에 스파이크를 달리기 위해 뛰어 올랐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추락했다.

무리한 연습과 스스로를 학대한 결과 보쿠토는 재기불능 판정을 받았다. 그의 무릎 관절은 돌아갔으며 팔의 인대는 늘어날 대로 늘어나 수술이 시급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다시는 배구를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보쿠토는 그때부터 잡고 있었던 자신의 끈을 하나 둘씩 놓았다.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에게 닥쳐진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카아시는 묵묵히 그의 옆에 있었다. 보쿠토가 있어달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흘러가다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보쿠토가 에이스와 주장이라는 이름을 잃었던 것 처럼 아카아시도 세터와 부주장이라는 이름을 잃었다. 그렇게 자신을 장식하던 이름들을 잃어가는 걸 감수한 것은 보쿠토의 연인이라는 이름을 잃지 않고 싶어서였다.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카아시는 그 외의 것들을 그와 마찬가지로 지워냈다.

보쿠토상, 불편한데는 없으세요?”

막 간호사가 수액을 갈아 끼우고 간 뒤 어지럽혀진 이부자리를 다시 매만지면서 아카아시가 물어봤다. 텅 비어보이는 눈으로 창문을 응시하던 보쿠토는 그 음성은 들리지 않는 다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회색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그의 볼에 살짝 입 맞췄다. 따듯함이 느껴지는 볼에 안도감이 밀려와 아카아시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의 쾌활했던 말씨가 듣고 싶어 어떻게든 말을 걸어봤지만 보쿠토는 처음부터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굴었다. 제 아래서 교성을 내지르던 보쿠토의 음색이 아직도 형형한데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바르르르 떨며 제 손 안에서 멀건 액체를 토해내던 보쿠토를 생각했다. 탄탄했던 배 근육을 손가락으로 훑을때면 간지럽다는 듯이 움찔거리는 그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카아시는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더 참을 수 있어. 아카아시는 오늘도 그를 생각하며 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억눌렀다.

사랑해? 날 사랑해요? 저를 사랑합니까? 아카아시는 입은 뻥긋하지 않은 채 보쿠토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질문했다. 대답 따윈 없었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다시 질문했다.

사랑해도 되나요? 아직도 저를 사랑하십니까? 저를 기억하십니까? 나는 당신을 이렇게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합니다. 아카아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손을 들어 이불 위에 놓인 보쿠토의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하고는 손을 거뒀다. 꺼진 빛을 손으로 잡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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