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흑] -13

pinn_pond 2016. 1. 8. 16:16


-13

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쿠로코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는 어느덧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약간의 추위는 남아있어서 몸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집집마다 다른 나무와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눈에 담으면서 쿠로코는 카가미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카가미는 요리하는 것도 즐겨해 가끔씩 사람들을 초대해서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곤 했다. 카가미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인 쿠로코 역시 자주 초대 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쿠로코는 소식가에 가까운 편이었지만 카가미의 요리는 쿠로코의 입맛에도 잘 맞아 그가 초대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꼭 갔다.

오늘도 그 날 중 하나였다. 일주일 전부터 꼭 시간을 비워 놓으라던 카가미의 목소리가 떠올라 쿠로코는 살짝 웃었다. 오늘은 무슨 메뉴일까. 은근히 기대감을 가지면서 쿠로코는 어느덧 도착한 카가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경쾌한 초인종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현관문에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하얀색 대문이 열렸다.

"어서와."

쿠로코는 놀란 마음에 눈만 껌뻑였다. 제 앞에는 기대했던 붉은 머리의 남자가 아닌 검은 머리의 남자가 웃으면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히무로씨"

간단한 목례와 함께 쿠로코는 히무로에게 인사했다. 히무로는 쿠로코가 안으로 들어가기 편하게 대문 손잡이를 붙잡은 채 살짝 몸을 틀었다. 그의 옆을 스쳐가자 익숙한 시트러스향이 났다. 왠지 모를 그 익숙함이 부끄러워 쿠로코는 헛기침을 했다. 복도를 지나 거실의 소파에 앉은 쿠로코는 잇따라서 들어와 맞은편에 앉은 히무로의 미소에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카가미는 어디가고 그의 집에 히무로가 있는 것인가.

"저기..."

"?"

"카가미군은 어디 갔습니까?"

"재료가 모자란다고 잠깐 요 앞의 마트에 갔다 온댔어."

. 그리고 다시 찾아온 침묵에 쿠로코는 껄끄러웠다. 사실 자신과 히무로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지난번 기적의 세대 모임에 카가미와 히무로가 끼었었다. 다들 이제 성인인지라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고 옛 이야기를 하나둘 푸니 분위기는 빠르게 무르익었다. 평소 술을 즐겨하지 않는 쿠로코도 이날따라 술 마시는 게 즐거워서 적정 주량보다 더 마셨다. 아카시와 미도리마는 천천히 술을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으며 그 옆에는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무라사키바라와 카가미가 경쟁적으로 안주를 먹고 있었다. 한편에서 시끌벅적하게 사랑싸움을 하던 아오미네와 키세는 결국엔 원온원으로 승부를 내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다들 본인들의 일에 집중하기도 했고 원래 조용히 술을 마시기 좋아하는 쿠로코는 앞에 있는 사케를 막 한 잔 더 따를 때였다.

'내가 따라 줄까?'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사케병을 들면서 히무로가 말했다. 원래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텐데 분위기에 휩쓸려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 주는 술을 마시기도 하고 또 히무로의 잔도 채워줬다. 그러다가 키스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쿠로코는 얼굴을 붉혔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몰랐다. 시트러스향이 훅 끼치더니 무엇인가 입 안을 유영하다가 이내 멀어졌다. 그리고 제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살짝 붉어져 있는 히무로의 입술이었다. 시선을 올려 히무로를 바라보니 그는 가늘게 눈을 접어 웃으며 쿠로코를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술이 확 깬 기분에 쿠로코는 그 날 그대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헤어지고 히무로를 만난 것이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직까지도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어 뻣뻣해진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생각해?"

그 날처럼, 어느 샌가 옆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하무로를 보자 숨이 저절로 삼켜졌다. 너무나도 가까운 사이가 껄끄러워 쿠로코는 약간 몸을 뒤로 뺐다. 그게 못마땅하다는 듯 히무로는 쿠로코의 보조에 맞춰 약간 더 몸을 쿠로코 쪽으로 옮겼다.

"그 때 생각하는 거야?"

어언간 그의 얼굴이 쿠로코 시야에 담뿍찼다. 점점 다가오는 히무로의 입술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이는 그의 입술은 혀로 한 번 핥은 것인지 입술이 반질거렸다. 이건 너무 위험했다.

"나 왔어. ? 쿠로코 왔네."

갑자기 들리는 음성에 쿠로코는 히무로를 밀쳤다. 카가미는 양 손에 봉지를 든 채 바삐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를 못 챈 모양이었다. 냉장고에 사온 것을 넣는 카가미의 뒷모습을 보면서 쿠로코는 아직까지도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켜보려고 했다.

그 때, 쿠로코의 입술에 촉촉한 무엇인가 마주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 시선 끝에는 지난번처럼 웃고 있는 히무로가 있었다.

"다음에 또 해줄게. 기대해."

 

 

 

 

 

 

201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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