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이] -15

pinn_pond 2016. 1. 15. 22:23


-15

쿠로오 테츠로/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는 숨이 차도록 달렸다. 자신이 왜 달리고 있는 가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거듭된 상황과 반복된 결과는 오이카와에게 생각 따위는 사치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보다 더 빨리 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보며 비웃을 그 얼굴을 떠올리니 엉덩이 부근이 아리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남자와 교제하고 있었다. 사실 교제라고 부르기 민망했다. 오이카와와 그의 관계를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섹스 파트너였다. 몸만 섞는 관계로 그가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하면 오이카와가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형태였다. 지금 오이카와가 뛰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다. 그는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는 용납하지 않았고 평소에 무뚝뚝한 그는 약속을 어기게 되면 같은 사람이 맞을 까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은 욕이었고 그의 손길은 손찌검이었다. 섹스는 가학적이었고 배려가 없었다. 기형적이게 비틀린 관계가 그와 오이카와의 관계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오이카와는 그를 사랑했다. 그 남자는 그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기위해 오이카와를 사용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오이카와는 그 남자를 사랑했다. 그의 손길이 황홀했고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면 그에게 종속되는 자신이 당연했다.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에게 오이카와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가 하는 몸짓에 맞춰 제 몸뚱이를 흔드는 것뿐이었다.

어째서 그가 좋아졌을까. 그를 처음 본 건 도쿄에서였다. 처음으로 올라간 인터하이에 모든 것이 생소했던 오이카와는 무리와 떨어져 홀로 체육관을 헤맸다. 미야기에 있는 체육관보다 갑절이나 큰 도쿄의 체육관은 오이카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도록 했다. 점점 다가오는 워밍업 시간에 초조한 오이카와는 점점 불안했다. 제 딴에 주장이라 부원을 통솔해야하는 사명이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자신에 대해 실망감을 느꼈다.

여기서 뭐해

그 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오이카와는 한줄기 내리는 희망의 빛에 얼른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검정머리의 남자가 빨간 져지를 입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처음이야?”

무례하게 내뱉는 경어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오이카와는 그가 반가웠다.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다가오는 그는 잘생긴 얼굴을 한 것 찌푸렸다.

. 길을 잃었어요.”

아아.”

알았다는 듯이 그는 오이카와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따라가다 보니 오이카와는 자신이 꽤 먼 길을 왔다고 생각했다. 다 똑같아 보이는 복도를 몇 개쯤 지나치고 나서야 삼삼오오 모여 있는 유니폼을 입은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밀려오는 안도감에 오이카와는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길을 찾아 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 했을 때, 오이카와는 순간 몸이 굳었다.

대가는 몸이면 돼.”

바지 유니폼 사이로 느껴지는 촉감. 볼품없게 잡힌 오이카와의 엉덩이는 그 남자의 손에서 희롱 당했다. 그의 음성이 들리는 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눈앞에 스파크가 튀기는 느낌에 오이카와는 어리둥절했다.

난 쿠로오 테츠로. 할 생각 있으면 끝나고 공동 라커룸에 남아있어,”

그렇게 남자는 제 할 말만 남기고 떠났다.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에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서있었다. 자신을 발견한 이와이즈미가 오지 않았다면 몇 시간이고 서있었을지 몰랐다. 온통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시합은 이겼지만 오이카와의 플레이는 엉터리였다. 지워보려 할수록 아까의 사내가 떠올랐다. 알게 모르게 오이카와는 그에게 속박되어갔다.

그 날 시합이 끝나고 오이카와는 라커룸에 남아있었다.



 

나 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목이 잡혔다. 누군지는 뻔히 보였다. 이 시간에 이 집에서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하나였다. 쿠로오 테츠로. 서서히 오이카와의 발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오이카와도 어엿한 성인 남성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정말 목을 분질러 버리려고 마음을 먹은 건지 악력이 점점 세졌다. 이미 숨이 차도록 달려온 오이카와는 제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압박해오는 손길이 버거웠다. 저릿거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쥔 그의 손을 툭툭 쳤다.

일찍도 왔네.”

시릴 만큼 냉소적인 말이 바닥에 떨어졌다. 전혀 놔줄 생각이 없는지 그는 오이카와의 목을 잡고 있는 팔을 양 옆으로 살살 흔들었다. 애처로워 보이는 오이카와의 몸이 축 늘어져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오이카와는 반항할 힘조차 남지 않아서 흔들리는 시야에 그저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는지 그는 욕지기를 내뱉고 오이카와를 끌어다 침대 위로 던졌다.

갑자기 공기를 받게 된 폐가 놀라 헛기침이 마구 쏟아졌다. 오이카와는 꺽꺽 거리면서 침대 시트를 부여잡고 기도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들이 마시지도 내뱉지도 못했다. 한참을 울면서 숨을 게워낸 뒤 오이카와는 약간이나마 진정된 호흡에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꼴에 숨은 쉬고 싶냐.”

이번에는 오이카와의 양쪽 볼을 한 손에 잡아 위로 들쳐 올린 채 남자가 지껄였다. 두 볼에 가해지는 손아귀의 힘은 아까의 그 것과도 같아 혀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안쪽에 있는 볼 살은 이미 치아에 눌려 상처가나 입 안은 비릿한 쇠 맛으로 점철되었다. 이도저도 못하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재미없다는 듯 손을 거뒀다.

미안하다고 말할 거면 아가리 닥쳐.”

오이카와는 입을 닫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닥치라고 하니 닥칠 뿐이었다. 오이카와가 엉망으로 던져진 침대 위에 그가 올라탔다. 오이카와의 속을 출렁거리는 매트가 뒤집어 헛구역질을 했다.

시발존나 맘에 안 드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고 나서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오이카와의 셔츠를 우악스럽게 잡아 뜯었다. 힘없는 단추들이 침대 밑을 굴러다녔다.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개방된 오이카와의 상체는 실로 암담했다. 자잘한 생채기들과 울긋불긋 보이는 붉은 낙인들 그리고 무엇인가로 지져진 듯 한 화상 흉터들이 즐비했다. 오이카와가 생각하기에 이것들은 그의 사랑이었다. 그는 침대 옆 서랍에서 담배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어두운 방에 라이터 불이 살짝 비치더니 이내 꺼지고는 작고 빨간 불이 둥둥 떠다녔다. 볼이 패이도록 담배를 머금은 그는 이내 공중에 그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아악!!!”

작은 방에 오이카와의 비명소리가 가득 찼다. 수많은 생채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또 하나가 더.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오이카와의 크고 비틀린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담배 태우는 냄새와 살타는 냄새가 진절머리 나게 진동했다.

대가리가 돌이냐. 왜 이렇게 못 알아먹어.”

그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미 눈물범벅으로 뒤덮인 오이카와는 손을 뻗어 그를 안았다.

미안내가 다 잘 못했으니깐

아가리 다물랬지.”

거친 음성과 달리 그는 오이카와가 껴안는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 것에 만족한 오이카와는 질질 흐르는 침을 닦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그래도 와왔잖아

시발 그럼 안 올라 했냐?”

딱딱하게 굳어진 그의 몸이 오이카와에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그의 품이 너무나도 좋아서 경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다시 치렀다.

목을 부러트리면 그딴 소리 못 지껄이겠지.”

아까보다 더 세게 죄여오는 그의 손이 오이카와를 숨 막히게 했다. 더는 들어오지 않는 공기에 오이카와 입에서는 침이 흘러 그의 팔을 따라 떨어졌다. 간단하게 오이카와를 들어 올린 그는 오이카와가 입고 있었던 바지를 속옷과 함께 한 번에 벗겼다. 약간 위를 바라보고 있는 오이카와의 중심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걸레 같은 놈.”

그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더니 오이카와를 침대 헤드 쪽으로 던져버렸다. 망가진 인형처럼 헤드 앞에서 구겨져있는 오이카와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다시 켁켁 거렸다. 그는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살짝 입 꼬리를 올리며 자신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시간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오이카와의 귓전에 나지막하게 속삭이면서 그는 혀로 오이카와의 귓바퀴를 쓸어 올렸다. 척추부터 타고 올라오는 찌릿함에 오이카와는 몸이 들썩였다.

벌려, 오이카와.”

무엇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오이카와는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의 거친 폭력들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가 오이카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더는 문제되지 않았다.

.”

그리고 오이카와는 기꺼이 제 다리를 벌렸다.

 

 





201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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