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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쿠니] 29

29마츠카와 잇세이/쿠니미 아키라 마츠카와에게 회사 일이 끝나고 동네 놀이터에 나와 앉아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게 어느덧 일과가 되었다. 놀이터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자주 가는 이유도 있었지만 놀이터를 선호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흉흉한 소문 하나가 동네를 휩쓸었고,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아이들을 집으로 들이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느지막이 놀이터에 가면 담배를 피는 몇몇 고등학생들뿐이었고 거의 대부분은 마츠카와 혼자였다.끼익끼익 거리면서 혼자 움직이는 그네는 마츠카가와가 보기에 자신과 흡사해 보였다. 최근 마츠카와는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미야기 현에 있었고 마츠카와는 얼떨결에 오사카 ..

2015.11.24

[쿠로츠키] 28

28쿠로오 테츠로/츠키시마 케이 츠키시마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는 풍경이었지만 츠키시마에게는 특별했다. 매일 같지만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 가끔씩 보이는 새로운 사람들과 사계절을 따라 바뀌는 사람들의 옷모양새도 츠키시마에겐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밖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가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창이라는 얇은 칸막이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그렇지만 츠키시마는 그 세상으로 나갈 수 없었다. 츠키시마에게는 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츠키시마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때부터 늘 함께였다. 그는 츠키시마를 소중하게 여겼고 돌보았고 예뻐 해줬다. “츠키, 내 달. 갔다 왔어.” 찬바람이 갑자기 들어와 몸..

2015.11.18

[히나우시] 27

27히나타 쇼요/우시지마 와카토시 히나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귄지 어언 3년째 되는 우시지마가 의외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현 내 라이벌 학교로 만난 둘이었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 사귀게 된 뒤로 부터는 아무래도 알콩달콩한 면이 더 많았다. 우시지마가 유럽으로 배구 유학을 2년간 떠났을 때도 간간히 그립다는 표현을 했지만, 이번처럼 감정표현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우시지마가 감정표현에 적극적이게 되었다는 것은 히나타에게 좋은 일이었으나,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 건지는 정말 자신의 속공에 맹세코 전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멀리서 리시브 연습을 하는 우시지마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면서 히나타는 생각했다. 뭘까. 뭘까.애당초 히나타는 머리가 좋은 편에 속하지..

2015.11.10

[리에야쿠] 26

26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 모리스케의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최악의 상황을 여러 개 생각한다는 것이다.그로인해 멘탈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야쿠 본인은 이런 성격을 싫어했다.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끔 우울한 마음이 겹치면 끝도 모르는 어두운 감정들이 야쿠를 삼키려고 덤벼들었다. 상처를 많이 받고 그것을 품고 가는 성격이었다. 체구가 작아 남들에게 무시받기 쉬어 야쿠는 목소리를 더 크게 그리고 소위 남자다운 행동을 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어두운 성격을 숨겼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부활동에서 야쿠는 리시브를 잘하고 잘 챙겨주는 멋있는 선배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는 무서운 선배였다. 악의 없지만 눈치도 없는 1학년은 처음 입부 했을 때부터 야쿠의 속을 박박 긁..

2015.10.30

[이와오이] 25

25이와이즈미 하지메/오이카와 토오루 첫째로 내가 너의 뒷모습을 의식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3학년 때까지 쭉 같은 반을 하다가 처음으로 너와 반이 떨어졌을 때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와 함께 있는 것은 나에게 당연했고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모종의 확신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아직 어려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별에 우는 나를 너는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이면서 달래주었다.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너의 위로가 너무 따뜻해서, 나는 그 자리에서 더 크게 엉엉 울어버렸다. 그제야 너는 작은 몸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등하교는 꼭 같이하자고 약속을 하면서 다른 반으로 가는 너를 뚱한 얼굴로 그나마 보내줄 수 있었다. 하지메쨩 수업 끝나구 꼭 와야 해. 새끼손가락을..

2015.10.27

[엔노후타] 23

23엔노시타 치카라/후타쿠치 켄지 후타쿠치는 한 남자를 사랑했다. 이런 사람들을 소위 게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불렀지만, 후타쿠치는 자신이 게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이라고하기에는 그 쪽 커뮤니티를 알지 못할뿐더러, 용기를 내서 본 게이동영상은 그에게 거부감이 심하게 들어 며칠간 대인기피증이 왔을 정도였다. 그래도 후타쿠치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 남자만을 사랑했다. 대체 언제부터 그 남자를 사랑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지만 그저 어느 순간부터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한번 그 남자에게 간 후타쿠치의 마음은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한결같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사실 그 남자와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열리는 사내 체육대회에서 한번 마주친 뒤, 구내식당에서 대여섯 번 그..

2015.10.22

[켄히나켄] 21

21코즈메 켄마/히나타 쇼요 ‘어디쯤이야?’ 핸드폰이 짧게 진동해서 확인을 해보니 라인 메시지가 와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이 눈앞에 있지 않음에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히나타는 짧게 웃었다.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핸드폰 쪽으로 몸을 숙여 답장을 위해 자판을 꾹꾹 눌렀다. ‘세정거장쯤 남았어’ 송신. 큰일이라도 치른 듯 히나타는 기지개를 한번 피더니 푹신한 등받이에 다시 몸을 맡겼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주황색 머리가 반짝였다. 히나타는 즐거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어서 자꾸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만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설렘. 지금 히나타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히나타가 신칸센을 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혼자 타보는 것이 ..

2015.10.16

[마츠하나] 20-2

20-2마츠카와 잇세이/하나마키 타카히로 변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게 더우며 습했고, 학교는 다름없이 지겨웠다. 마츠카와는 따분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지루해지지 않는 것은 배구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활동 중 하나로 여겼지만, 실력을 쌓고 현 내 베스트 안에 들면서 점차 배구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좋은 일이었다. 그만한 나이대의 남자아이들은 욕구를 발산시킬 마땅한 수단이 없어서 나쁜 길로 빠지거나 음침해지는 경향이 대부분이었다. 마츠카와는 그렇게 따지자면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건전한 방법으로 욕구 발산을 하고 있었으니깐. 그렇다고 해서 마츠카와가 욕구를 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츠카와 역시 또래 남자아이들과 같았으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본인 성..

2015.10.16

[마츠하나] 20-1

20-1마츠카와 잇세이/하나마키 타카히로 “마츠카와 벌써 가?” 전공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뒷문으로 하나마키와 나가는 마츠카와를 동기 친구가 불러 세웠다. 원래 이 시간 이후로 같은 교실에서 수업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아있었지만, 마츠카와는 이미 전공서적을 가방에 넣고 교실 문을 나가려고했다. 평소 수업을 빼먹지 않는 마츠카와를 이상하게 여긴 동기가 그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 그게 그렇게 됐어.” 마츠카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눈치가 제법 빠른 동기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 동기 하나가 눈치 없이 질문을 던졌다. “에, 하나쨩 어디 아파?” 아까부터 마츠카와의 셔츠 자락을 잡고 있는 하나마키..

2015.10.16

[쿠로켄] 19

19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너는 내 어디가 좋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걸 이야기하기까지 쿠로오는 꽤나 많은 생각과 시간이 걸렸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사귀게 된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연인인지 연인의 탈을 쓴 친구인지 헷갈렸다. 같이 등교하고 배구 연습하고 하교하고 또 데이트라는 이름만 붙었지 어차피 영화며 게임 사러 번화가에 나가는 것조차도 원래부터 둘이 함께였다. 연인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무엇인가 다른 변화를 원했지만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뭔가 둘 사이를 어색해지게 만드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무슨 생각으로 자기와 사귀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왜 저랑 사귀십니까하고 물어보는 건 본인도 이상하다..

201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