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오이] 7

pinn_pond 2015. 10. 16. 12:14


7

카게야마 토비오/오이카와 토오루

 

 

 

 

나 선배 좋아하는 것 같아.”

“...미안

카게야마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해줄 수 있는 답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저 멍청한 후배가 저딴 식으로 말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상황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카게야마가 고백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도 카게야마에 대한 호감은 있었다. 사랑해 까지는 아닌데 좋아해 정도의 감정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은 해결할 일이 있었다.

 



오이카와~”

덥지도 않은 건지 사치에가 팔에 꼭 달라붙어서 이야기했다. 이래서 싫었던 건데. 원해서 만난 것은 아니었다. 하도 친구들이 밀어 붙어서 연락정도만 주고받는 사이부터 시작하자고 했는데 사치에는 벌써 여자친구가 된 것 마냥 행동해서 불편했다. 오늘 약속도 사치에가 억지로 잡은 거였지만, 나도 할 말이 있었기에 그대로 수락했다.

스가! 어디가?”

아 교실청소, 늦어가지고

멀리서 회색머리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옆에 있는 사치에랑 있다가 스가를 만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난 지가 꽤 됐는데 스가는 아직도 청소를 안했나보다. 뛰어가는 것과 걸어가는 것 사이의 애매한 걸음을 하던 스가는 갑자기 뒤돌아서 나에게 말했다.

, 카게야마랑 무슨 일 있어?”

?”

예상치 못한 스가의 말에 얼떨떨했다. 사치에가 가자고 팔을 계속 잡아당겼지만 개의치 않았다.

카게야마 약간 화난 거 같았는데..”

“...”

뭐 너무 신경 쓰지는 마. 그냥 나한테 투덜댄걸 수도 있으니깐, 그럼 간다

이 멍청한 자식이 아무한테나 다 이야기를 흘리고 다니는 건가. 이제 스가 얼굴을 어떻게 본담. 카게야마는 아르바이트를 하니깐 이미 학교에는 없을 것이다. 문자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화났다며

곧 답장이 오겠지. 약간은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사치에가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건성으로 응응 대답해줬다. 카게야마 카게야마. 머릿속에는 온통 카게야마 생각뿐이었다.




일단은 약간 열 받았다. 건방진 카게야마 녀석이 아직까지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까부터 사치에는 자꾸 핸드폰만 바라본다고 뭐라고 했지만, 그만큼 나도 충격이 컸다. 카게야마는 내 문자에 대해서는 늦어도 10분 내로 답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한편 보고 나오는 지금까지도 아무 답장도 없었다.

이번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린다는 영화를 봤지만 내용도 눈에 안 들어오고 오로지 카게야마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정말로 화가 났나? ? 화를 내야할 사람은 난데? , 정말 싫다. 사치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 오이카와 나 아이스크림 사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날씨가 아직까지 더웠다. 아이스크림,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약간 목이 탔다. 어라, 그러고 보니 사치에네 동네에 있는 편의점이 카게야마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다. 좋아.

사치에 보고는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은 한가했는데 카게야마는 손님이 들어오든 말든 카운터에 엎드려있었다. 정말 화가난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까지 문자에 답장 안한 것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울컥거렸다.

망고 아이스크림 두 개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가는 내내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알바생이 손님이 왔는데 신경도 안 써?

저기 담배 좀 주세요.”

저희 매장은 담배 안...”

알아. 문 앞에 써 있잖아. 약간 화를 내면서 고개를 드는 카게야마를 보면서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예상 외로 잘 참았다.

선배...”

카게야마는 굉장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래, 나도 약간 화났어.

편돌이, 계산 안 해줘?”

재촉했다. 카게야마의 얼굴에는 이미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다는 얼굴이었고, 눈에는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바라보면서도 좋아하는 것 같다고? 2천원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아이스크림을 집어 나오면서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너 핸드폰 꺼졌어?”

어... 서랍에 두고 온 거 같은데

순간 여태까지 카게야마로 인해 고민하던 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한결 홀가분해 졌다. 나에 대한 카게야마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한편 이렇게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이 멍청한 후배에게 약간의 장난을 치고 싶었다. 너도 어디 한 번 당해봐라는 마음이 컸던 거 같기도 했다.

나가자. 아이스크림 샀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오이카와

기다리다 못해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사치에를 다시 밖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망고맛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면서 평소보다도 다정히 대했다. 카게야마, 너는 지금 이 모습을 지켜보겠지. 오늘 남은 시간 내내 생각해봐.

 



사치에는 의외로 쉽게 물러났다. 조금 더 매달릴 줄 알았는데, 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확실하게 이야기 하니 약간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물러나주었다. 생각해보면 물러날 것도 아니었다. 일단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카게야마를 생각하면 확실히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제의 나는 카게야마에게 잔인했었다. 지나가던 히나타에게 오늘 카게야마가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자식, 많이 고민했구나. 복수심에 통쾌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미안하다는 감정도 있었다. 너무 고민하게 한 걸까. 카게야마가 나에게 한 발 다가와줬으니 이제는 내가 나서야할 차례였다.

점심시간에 밥 먹는 곳으로 와.’

다음 날 등교 하자마자 카게야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엄청난 아량을 베푸는 거야 바보 같은 후배님.

예상대로 카게야마는 옥상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운동장을 바라보는 약간 축 처진 어깨가 괜히 눈에 담겨 가슴이 아팠다. 생각 보다 마음고생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멋쩍게 웃으면서 카게야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가가 시뻘게져 있었다. 아니 얘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러고 있는 거야.

답장 없던데.”

폰이 꺼져서

화난 건 아니지? 스가가 너 화난 거 같다던데.”

평소라면 따박따박 말을 했을 카게야마가 조용했다.

먼저 어제 대답 못해서 미안해.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어제 혹시 봤을 까 모르겠는데

봤어요. 여자친구.”

봤나보네.”

그래서 어제 그 여자친구랑, ”

잠깐만, 알겠어요! 그래서 그 여자 때문에!”

아냐 들어봐

그 여자 때문에 못 만나겠단 거잖아요!”

들어봐, 카게야마!”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보란 말이야. 어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할지 막막했다.

어제 정리했어. 내가 좋아서 만난 애도 아니었고, 일단은 정리하고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고백하려 했어. 그런데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니가 먼저 말해서 당황해서 대답을 그렇게 했던 거야.”

이쯤 되면 풀렸으려나? 카게야마는 미동조차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확실하게 말해줘야겠다.

나도 너 좋아해. 미안해 아무 말도 못해줘서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짜식, 이런 걸로 삐지다니.

헤헤, 미안하다니까?”

나도 고개를 숙여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 우는 건가. 내 고백이 그렇게 감격적이었나.

, 카게야마 우는 거야?”

이건 10년 치 놀림감이다. 너는 이제 끝났어. 벌써부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저 건방지고 멍청한 후배를 이제는 마음 것 놀릴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손으로 눈물을 닦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도 좋아해요.”

그래. 좋아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거야. 진작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좀 좋아?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아 정말 귀여운 후배다.

 

 

 



 

2015.07.11.

pinn_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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