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3학년의 하이바 리에프에게 최근에 큰 관심사가 생겼다. 물론 인터하이 예선전까지 얼마남지 않아 모두들 열심히 연습에만 집중했지만, 네코마의 3학년 에이스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는 사안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최근 눈에 담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대상은 새로 배구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1학년이었다.
그 1학년은 뛰어난 리베로로, 원래 주전으로 뛰고있던 2학년 리베로를 제치고 바로 주전으로 발탁되었다. 리에프도 처음에는 그냥 리시브를 잘하는 1학년 리베로로 생각했지만 어느 샌가 1학년 리베로의 뒷꽁무늬만 졸졸 쫓아다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배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예의 에이스를 뛰어넘는 진지하고도 강단 있는 모습에 말 그대로 뻑이 가버렸다.
“야쿠! 어때, 오늘은 키 좀 컸나?”
“하이바 선배님, 그럴 시간에 리시브 연습 좀 하시죠?”
언제나 배구 연습에만 집중하는 야쿠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 리에프가 선택한 답안지는 바로 놀리기였다. 다른 주제보다도 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평소보다도 배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야쿠의 모습에 리에프는 이것이다! 하는 심정으로 늘 야쿠를 놀렸다. 결과적으로 야쿠와 친해지기는 했다.
“언제나 쌀쌀맞단 말이야~”
자신을 약간 화났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야쿠의 작은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리에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야쿠는 작을 때 귀여워!”
퍽. 결국 리에프는 정강이를 한 대 맞았다. 운동부라는 큰 틀안에서 선배를 때릴 수 있는 후배는 존재하지 않지만 네코마 고교에는 존재했다. 심지어 부장인 쿠로오 조차 야쿠가 리에프를 때리는 것에 대해 일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배구부 부원들이 생각하기에 리에프는 충분이 맞을 짓을 한 놈이었다.
1차 예선전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도쿄의 강호까지는 아니지만 작년에 인터하이 예선 준결승까지 올라간 상대였기 때문에 3세트까지 진행되는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2세트는 듀스가 40점대까지 진행됐기에 다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였다.
결국 켄마의 투어택이 실패로 돌아가자 감독은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감독 앞에 옹기종기 모인 배구부 부원들은 모두 가빠진 숨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감독의 이런저런 말에 경청했다. 리에프도 아까부터 약간 응원소리가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으나 마지막 인터하이 예선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그는 네코마 고교 배구부의 에이스였기 때문이었다.
심판의 휘슬은 야속하게도 제 시간에 불렸고, 주장인 쿠로오의 기합을 필두로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은 부원들이 네트 앞에 섰다. 어느 팀이든 2점만 연속으로 따내면 시합은 그대로 끝이었다. 상대편의 서브가 시작되자 다시 운동화와 체육관 바닥이 마찰거리는 음이 들리면서 경기가 재개되었다.
강력한 한방 없이 주고받기가 계속되지 리에프는 다시 물 속에 들어간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공이 보이는 방향을 눈으로 쫓아가면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느리게 움직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네트 앞에서 켄마에게 콜을 외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토스를 바라봤다.
2년 동안 호흡을 맞춘 세터의 토스는 그에게 가장 적합한 토스였다. 여태까지 수많은 난관을 헤쳐가기 위해 시합의 끝맺음을 할 에이스에게 보내는 토스는 리에프에게 자긍심이자 부원들과의 믿음이었다. 리에프는 스파이크를 하기 위해 점프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헛스윙을 했다.
상대편의 점수를 알리는 심판의 휘슬소리와 경기장 안의 환호성이 리에프의 귓가에 사정없이 내리 꽂았다.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에이스에게 어떠한 말이나 위로조차 건네지 못했다. 평소에는 누구에게나 밝은 리에프였지만 코트 위에서는 자존심 강한 에이스였다.
“하이바 선배의 스파이크 제일 좋아합니다.”
시끄럽게 리에프의 귀에서 맴돌던 환호소리를 가르고 야쿠의 음성이 깨끗하게 들렸다. 무슨 소린가 이해하지 못한 리에프가 눈을 크게 뜨고 야쿠를 바라봤다. 그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자신의 에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블로킹 당해도 제가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등 뒤를 믿고 스파이크 쳐주세요!"
평소와 같은 담담한 말투.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하지만 리에프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야쿠라면 모든 것이 달랐다. 그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피었다.
헛스윙 한 것이 착각일 정도로 나머지 2점을 연속으로 리에프의 스파이크가 상대편의 코트를 가로지르면서 경기가 끝났다. 시합의 종료가 피부로 느껴지자마자 리에프는 그대로 야쿠에게 뛰어가 그를 안아 올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리에프는 야쿠를 원했다. 들어 올린 야쿠의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났지만 리에프에게 그것조차 황홀하게 느껴졌다.
시합이 끝나고 체육관 뒤편 사람이 많이 다지니 않는 곳에 야쿠는 혼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아직 작은 몸으로는 긴 시합을 견디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그 때 볼에 차가운 무엇인가가 느껴져 눈을 살짝 떴다. 얄미운 에이스였다.
“여기 있었네.”
파란 이온음료를 건네면서 리에프는 야쿠에게 환하게 웃었다. 야쿠는 아주 잠깐이지만 멘탈이 약한 자신의 에이스를 한 대 쥐어박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남아있는 힘을 끌어 모아 참았다.
“왜요.”
“이제 여름인데 우리 야쿠는 왜 한겨울일까?”
모르면 말아요. 야쿠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리에프에게 투덜거렸다. 아까 시합 때는 정말로 위험했다. 리에프는 유독 결정구가 먹히지 않았을 때 쉽게 멘탈이 무너졌고, 그의 결정구 없이 네코마가 이기는 시나리오는 도박과도 같았다.
“...애인 멘탈이 두부 같아서요.”
“엑? 우리 사귀는 거야?”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리에프가 눈을 크게 뜨면서 야쿠에게 말했다.
“싫으면 무르죠.”
“야쿠랑은 농담도 못하겠어~”
그렇게 말하고 리에프는 푸흐흐 웃으면서 자신보다 한참 작은 야쿠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그대로 벤치에 누었다. 그의 긴 다리가 벤치를 넘어가자 야쿠는 앉아있는 것보다 더 불편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는 지금 자신과의 접촉을 바란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야쿠”
“네?”
“...저...정말로 내... 그거 있잖아..”
“어떤거요?”
리에프는 수줍은 소녀처럼 머뭇거리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냅다 말을 쏟아냈다.
“시합도중에 내 스파이크 좋다고 한 거 진짜야?”
야쿠는 황망한 표정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자신의 선배이자 애인을 내려다봤다. 살다 살다 이런 바보 같고 멍청한 선배는 처음이었다.
“시합에 대한 피드백을 생각해야지 그거 생각하고 계셨던거에요?”
“아니...그래도 야쿠가 그렇게 말하니깐..”
자신이 쏘아붙이자 금세 또 시무룩해진 리에프를 바라보면서 야쿠는 한 숨을 내쉬었다.
“앗! 야쿠의 불길한 한숨..”
또 어느새 땅을 파면서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리에프의 머리를 밀어내고 야쿠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어째 더 약올려주고 싶지만 다음 시합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애인을 위해서 야쿠는 이번 한번만 봐주기로 했다.
“처음 배구부 들어왔을 때, 선배 스파이크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에? 정말?”
“채찍 같은 스윙이 제 가슴을 팍 하고 때리는 것 같았어요.”
야쿠는 그렇게 말하고 음료수를 단숨에 비웠다. 리에프는 자신이 들은 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고민하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야쿠에게 되물었다.
“진짜야? 진짜? 그럼 그때부터 나 좋아한 거야?”
“아니죠, 선배. 먼저 고백한건 하이바 선배.”
새침하게 말하고 야쿠는 그대로 체육관 쪽으로 걸어갔다. 리에프는 지금까지 들었던 말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멀어져가는 작은 야쿠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을 쫓아와야 될 사람이 오지 않자 야쿠는 다시 뒤를 바라보고 리에프에게 말했다.
“선배, 안가세요?”
“...으응? 가야지! 야쿠!! 진짜 좋아해!!”
“뜬금없이 그런 소리 밖에서 좀 하지 마요.”
야쿠는 부끄럽다는 듯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리에프의 팔을 한 대 때렸지만, 자신의 손을 감싸듯이 잡아오는 리에프의 큰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저도 좋아해요, 리에프 선배.”
야쿠가 리에프에게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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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
pinn_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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