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쿠로오 테츠로/아카아시 케이지
나는 언제나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그를 눈에 담는 모든 순간이 세상에 어떠한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그 생각이 더욱 많이 들었다. 그는 3학년으로 짧으면 짧고 길면 길 정도의 마지막 고교 생활이 남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간이 소중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말을 걸고 나 또한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혼자 할 때면 속상할 법도 하겠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에 더 이상 상처받을 것도, 실망 할 일도 없었다. 약간의 체념. 그것은 내가 아주 잘하는 일이다.
위로 솟은 하얀 머리. 풀이 죽어 있을 때도 있지만, 막내는 아니지만 막내 같은 귀여움과 그에 상반하는 주장이란 이름에 걸맞은 카리스마. 뛰어난 힘과 그것을 보좌하는 운동센스. 가벼운 말투이지만 정도에 벗어나지 않는 말. 그는 빛이 나는 사람이었고 빛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해바라기가 해를 쫓아 피듯이 나도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욕심내지 않는다. 해는 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없는 모두의 해인 것처럼, 그도 내가 독점할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헤이 아카아시, 뭔 생각해”
“아 보쿠토상”
“어서 좋은 토스를 올려줘”
그의 눈에는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담고 있었다. 그가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볼까봐 얼른 시선을 잡고 있던 배구공으로 내렸다. 내가 그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 그는 몰라야했다. 나는 나의 감정에 충실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겁쟁이였고, 겁이 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했다.
나는 그가 내 토스를 받아 상대편의 네트로 정확하게 꽂는 스파이크를 좋아했다. 나와 함께 만드는 무엇인가가 점수라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보여 질 때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끓어올랐다. 세터라는 포지션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로 인해 세터라는 포지션에 애정이 가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의 세터였다. 그것이 내가 그의 옆에 설 수 있는 유일한 이유 중 하나였다.
까다로운 시합에서 마지막 결정구로 그가 원하는 최적의 토스를 보내 상대편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그의 스파이크가 순식간에 네트를 강타할 때. 그리고 시합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리면 그와 마주보고 첫 환희의 함성을 지르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특권이었다. 시합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의 뜨거운 열기가 내 피부로 느껴질 때면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와 같은 감정을 교류하고 있다는 우쭐한 감정과 보답 받지 못한 짝사랑에 대한 우울한 감정이 뒤섞인다. 비참할 수도, 부끄러울 수도, 슬플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그의 앞이기에 모든 감정을 단숨에 삼킨다. 나는 겁쟁이다.
최근 도쿄에 있는 몇몇 고교 배구부들이 연합해서 합숙을 했다. 오랫동안 교류를 가진 학교들이어서 편안함과 몇 달 사이에 바뀌어져 있을 주전 멤버들에 대한 기대감이 섞여 있는 채로 네코마 고교의 체육관으로 향했다. 네코마 고교. 그곳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불편하게 했다.
모든 학교의 감독들과 선수들은 좋았다. 딱히 그들이 나쁘다거나 나를 못살게 군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니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걸 수도 있었지만, 4개월 만에 다시 마주한 그 사람을 보고 있자면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의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카아시 군은 늘 그런 것 같아”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표정이 바뀌었네.”
아까워라. 그가 작게 덧붙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에겐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보쿠토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면, 그는 어느 샌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고 있었다. 들킨 걸까. 알수 없는 그의 표정에 답답하기만 했다.
“그 표정은 참 좋은데.”
빨간 져지를 입은 길쭉한 몸이 일어나 기지개를 피면서 들으라는 듯이 말을 툭 던졌다. 무슨 표정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묻는 다면 그는 나에게 뭐라고 대답을 할까. 복잡한 생각. 보쿠토상에게만 쏠려있어야 할 내 마음이 뒤죽박죽 되어버린다.
“아카아시! 얼른 블로킹 블로킹!”
나의 뒤죽박죽된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나의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이끌어준다. 아카아시의 토스가 제일 편하단 말이야. 별생각 없이 뱉은 그의 말에 나의 마음이 휘청거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처럼 그가 나를 부는 방향대로 나는 흔들렸다. 좋았다. 나를 끌고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다시 느껴지는 또 다른 시선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공중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빨간 져지의 주인과 시선이 맞닿았다. 이번엔 정확하게 느껴졌다. 들켰다. 나의 감정이. 살짝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합숙이 3일이 지나도록 그는 나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그 때의 그는 내가 보쿠토상을 바라보는 눈빛을 눈치 챘지만 그전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보쿠토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나처럼 그 어떠한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블로킹 할 때는 좀 더 상대를 바라보고 해.”
어느 샌가 그와 나는 네트 그물망을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의 그 눈빛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를 대하기가 껄끄러워졌다. 그의 검은 운동화 끝만 바라보고 있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내려다 봤다.
“아카아시 좋은 토스!!”
보쿠토상이 나에게 콜을 외쳤다. 나에게 날아오는 리시브를 그대로 받아 올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로 올렸다. 그리고 그는 나의 그런 마음에 답이라도 해주듯 시원한 스파이크로 2세트를 매듭지었다. 나의 등을 두드려주는 그의 손길이 태양만큼 뜨거웠다. 그가 만져준 등은 심장이 무색하리만큼 쿵쿵 뛰었다.
다른 팀원들과 등을 두들겨주면서 코트 밖으로 걸어 나가는 보쿠토상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토스를 원하는 나의 에이스. 바라만 봐도 좋았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으니깐.
“좋은 표정.”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땀에 젖은 빨간색 운동복을 입은 그는 또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들켰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미소는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을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 * * * * * *
무관심한 그리고 서늘한 눈을 가진 그는 어딘가를 볼 때면 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놀이 공원에 가서 솜사탕이라는 것을 맛보았을 때 같은 눈빛을 했다. 저런 눈에서 그런 눈빛이 나올 수 있구나. 그를 처음 봤을 때 내가 그에게 가진 첫인상이었다.
어찌하다 보니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다른 누군가를 무심함을 가장한 열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을 다른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와 같은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그가 갑자기 생각나 그를 바라볼 때면 늘 그는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엇갈린 시선. 그러나 나는 그것도 좋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였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는 그와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은 그보다 내가 감정을 숨기는 일에 더 능숙한 것이었다.
정신없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다가 나의 시선을 알아채고 나를 돌아봤을 때, 열렬하던 눈빛이 죽고 바다의 심해만큼 차가워진 그의 눈빛은 그야 말로 아쉬웠다. 생기가 사라진 눈빛. 그러나 나는 그 눈빛도 좋아해. 너이기 때문에. 그가 들을 수 없도록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내뱉어 본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네 눈빛이 좋아. 말이 되지 않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다른 이를 바라보는 무심한 속에 보이는 또 다른 눈빛이 나를 그에게 끌리게 했다. 또 내가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마다 약간 놀란 것 같은 그의 얼굴도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달과도 같아서 서늘하고 하얗게 빛이 났다. 시릴 정도의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그에게 나는 나만의 선을 가지고 그를 대한다. 달은 태양과 마주한 부분은 뜨겁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차갑다. 나는 그의 차가운 부분까지도 좋아한다. 나에게 보여주는 차가운 눈빛이 나는 좋았다.
그가 바라보는 사람은 알 수 없는 그의 차가운 부분.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다른 이와의 차별된 점. 다시 내 시야에 들어오는 그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아카아시”
나는 언제나 그를 바라보고 있다.
2015.08.19.
for yilii
pinn_p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