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노후타] 16

pinn_pond 2015. 10. 16. 13:10


16

엔노시타 치카라/후타쿠치 켄지

 

 

 

 

후타쿠치 켄지는 스트레이트였다. 그는 스물여덟 해를 살아오면서 본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다른 직업 세계보다 성적 취향에 대해 관대한 방송계 쪽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도 몇몇은 게이였고 레즈였고 바이였다. 그러나 후타쿠치는 그들에게는 일반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과는 다른 묘한 거리감을 두었다.

웃는 낯으로 돌직구를 날리는 사람. 후타쿠치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평가할 때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은 후타쿠치도 딱히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었기에.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운 것은 없었다. 깔끔하고 호감 가는 외모, 화려한 언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인생을 살기에 편리한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그만큼 남보다 편안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다루기 힘든 사람은 없다는 것이 후타쿠치의 생각이기도 했다.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에 뛰어들게 되어 방송국 관계자들과 크랭크인에 들어가면서 후타쿠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버라이어티에 관련된 프로그램이었는데 생각 외로 팀원들끼리 호흡이 잘 맞으면서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첫 방송이 시작하기까지 두 달 정도 여유가 있어서 다들 쉬엄쉬엄 하자는 분위기가 되었고, 남은 제작비로는 회식이 주를 이루었다.

큰 프로젝트이다 보니 여기저기 팀 단위가 많아서 회식은 후타쿠치가 생각한 것 보다 자주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후타쿠치는 외주 제작 팀의 총관리자 비슷한 위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불려나갔다.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노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으나 최근 그를 껄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생겼다. 방송국 쪽 총괄 PD인 엔노시타 치카라라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아니 좀 더 다른 이에게 사근사근한 엔노시타는 누가 보기에도 여러 방면에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엔노시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으나 껄끄럽다 여기게 된 것은, 어느 회식 도중 서로 이야기 주고받다가 마음이 맞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3차쯤에 엔노시타와 후타쿠치만 따로 빠져나와 4차를 둘이서만 했을 때였다. 일에 대한 이야기, 상관들에 대한 뒷담화 등을 이야기 하다가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술이 많이 들어간 터라 후타쿠치는 평소라면 절대 이야기 하지 않았을 비교적 최근에 헤어진 연인에 대해 엔노시타에게 이야기했다. 후타쿠치 입장에서는 자기 딴에는 많이 생각해주고 챙겨주었지만 여자들의 마음은 그것이 아닌지 불평불만을 쏟아 내다가 결국에는 헤어짐으로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그런 후타쿠치의 이야기를 엔노시타는 흘려듣는 것 하나 없이 맞장구를 쳐주면서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할이야기가 있다면서 엔노시타가 입을 열었을 때 후타쿠치는 술이 확 깨는 느낌을 받았다.

나 사실 게이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술이 깨는 느낌이 들면서 제일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따듯하게 덥혀진 사케를 마시려던 손이 멈춰졌다. 콧잔등이 사케에서 올라오는 김으로 약간 뜨거웠지만 후타쿠치는 그대로 멈춰있었다.

“...역시 좀 그런가?”

그런 후타쿠치의 모습을 보고 엔노시타가 약간 머뭇거리며 이야기했다. 자신의 연애담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동조해주던 엔노시타의 모습은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아까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 같았다.

아니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결국 사케를 마시지 못하고 잔을 그대로 내려놓으면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투를 꾸미며 엔노시타에게 말했다.

미안. 나 딴에는 친해졌다 생각해서 말한 건데

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면서 엔노시타가 말하지 후타쿠치 안에서 무엇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엔노시타는 팔방미인이고 그가 일하는 업계에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위치인 남자인데, 커밍아웃을 한 뒤 자신의 시답잖은 반응에 이렇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자 하니 후타쿠치도 영 껄끄러웠다.

요새 그런 취향 있는 사람이라고 피하는 게 더 이상해요. 우리가 종사하는 업계도 다른 곳 보다는 그쪽 방면에는 유한 편이고. 저도 그런 거 별로 신경안써요.”

거짓말. 놀라울 정도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듣고 눈에 띄게 안도하는 엔노시타의 얼굴을 보자 후타쿠치는 자신이 쓴 가면을 끝까지 쓰기로 했다.




후타쿠치, 좋아해.’

후타쿠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어 기분이 찝찝했지만, 방금 꾼 꿈 때문에 그는 씻으러 갈 수도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꾼 꿈이었다. 더 이상 그날의 그 남자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체육관 뒤의 풍경과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남자의 음성이 또렷하게 꿈에서 재생되었다. 잊은 줄로만 알았다.

고등학교 때 배구부를 잠깐 했었을 때 존경하던 선배가 있었다. 같은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후배들을 아우르는 모습과 시합에서 보이는 승부욕과 실력. 지금보다 더 시니컬하고 제멋대로였던 후타쿠치는 유독 그 선배만은 따랐었다. 그러나 인터하이 예선전에서 떨어져서 짐을 챙겨 학교로 돌아가려던 때에 갑자기 존경하던 선배에게 고백을 받았다.

거부감. 거절. 배신감. 그 순간 후타쿠치는 선배가 눈앞에서 깨져버린 유리조각 같아보였다. 존경했던 것만큼 배신감이 들었다. 자신보다 약간 키가 작은 선배를 내려다보면서 감정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선배에 대한 마음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바뀌어졌다. 후타쿠치는 지금 생각해도 자신이 내뱉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날이 서게 선배에게 말했다.

더러워.’

솔직히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후타쿠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에 대해 생각 안하려고 했지만, 생각을 안 하려고 할수록 그 때에 대한 죄책감 그러나 배신감이 동시에 맞부딪혀서 그를 괴롭혔다. 최근에 와서 그 일에 대한 흔적을 많이 지웠다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손마디가 저릿할 정도로 그는 꿈을 꾸면서 긴장을 했고, 마른세수를 하면서 이 꿈에 대한 원인을 생각했다.

엔노시타 치카라. 지금 생각나는 원인은 하나뿐이었다.




그 때부터 후타쿠치는 의식적으로 엔노시타를 피했다. 총책임자들끼리의 회의가 아닌 이상 그는 절대 엔노시타와 만나지 않았고, 빠지지 않았던 회식자리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끌어당겨 되도록 가지 않았다. 후타쿠치도 이렇게 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없었으나, 엔노시타만 보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한 달 정도 그런 상태가 지속 되자 팀원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림이 나오기 시작해 결국 참지 못한 엔노시타가 후타쿠치를 복도에서 마주치자 말을 꺼냈다.

후타쿠치, 오늘 저녁에 시간 되지?”

아뇨. 저녁에 패널들이랑 식사 약속이 잡혀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MC를 포함한 프로그램 전체 패널들과의 마지막 회식이 있었다.

? 후타쿠치씨는 오늘 안 가셔도 되요.”

막 복도를 지나가는 막내 작가인 야치가 임시로 인쇄된 1회차 대본을 들고 가면서 이야기했다.

무슨 소리야?”

메인 MC분이 오늘 시간이 안 된다고 연락 주셔가지고 주말로 미뤄졌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말 그대로 총총거리면서 사라졌다. 엔노시타 앞에서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알려졌으니 더 이상 그를 밀어낼 명분이 없어졌다.

그럼 오늘 저녁이야. 후타쿠치.”

 



그 때의 사케집.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편했다. 앞에는 어묵탕이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지만 후타쿠치는 마른 침만 삼키고 있었다.

“...내가 불편해?”

어색한 침묵이 계속 흐르자 결국엔 엔노시타가 첫 운을 뗐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생각하는 것은 엔노시타가 불편했기에 엔노시타의 물음에 즉각적으로 답해줄 수가 없었다. 불편하다고 말하게 되면 그가 상처받을 것임이 틀림없어서였다. 후타쿠치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지친 엔노시타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 이런 말을 지금 하면 더 이상할거 같긴 한데, 나는 스트레이트는 안 좋아해.”

그러니깐 후타쿠치를 좋아할 일은 없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타쿠치가 엔노시타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하는 엔노시타의 눈빛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불편해해도 괜찮아. 어찌보면 충격적인 이야긴데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런데 내가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는 것은 그만큼 후타쿠치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 이성적으로는 아니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렇게 말하고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후타쿠치는 따듯한 사케를 마신 것처럼 마음이 화해졌다. 몽글몽글하고도 따끈따끈한 무엇인가가 자신의 중심을 기점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구원. 그날의 악몽에서 구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후타쿠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전에 피해 다녔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후타쿠치는 엔노시타를 따랐다. 엔노시타가 게이인 것을 빼고 거의 모든 면에서 후타쿠치와 엔노시타는 취향이나 생각들이 비슷했다. 일할 때에도 거의 붙어있었고 생각하는 바가 비슷했기에 과정이나 결과물에 대해 트러블이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다.

그래서 둘은 만난 기간은 짧았지만 거의 서로에게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엔노시타는 PD로서도 멋진 사람이었지만, 친구일 때는 더욱 빛나는 사람이었다. 엔노시타는 후타쿠치가 곤란한일에 직면했을 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후타쿠치가 혼자 해결하게끔 실마리를 던져주고 해결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기쁘게 칭찬해주었다.

어느 샌가 후타쿠치는 엔노시타에게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다. 평소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면 놀랐을 것이지만, 후타쿠치는 자신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그래서 제가 프로젝트를 엎어버렸어요.”

하하하. 난 가끔씩 화끈한 켄지의 매력이 좋다니깐?”

후타쿠치가 처음 총책임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계획서는 좋았으나 외부의 압박 때문에 이것저것 뜯어 고쳐져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프로젝트를 엎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부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남은 세 달 동안 새롭게 짜서 첫 방송을 내보내겠다고 큰소리 쳐서 그야말로 뼈를 갈아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물론 반응은 좋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어떻게 그런 배짱이 있었나 싶었다.

지금은 하라도 못해요.”

손 사레를 치면서 엔노시타에게 말했다. 그런 후타쿠치의 모습을 보고 엔노시타는 귀엽다면서 푸흐흐 웃고는 들고 있던 사케를 쭉 들이켰다.

그렇게 한 발 빼는 것도 매력이지.”

뭐만하면 다 좋데. 치카라씨는.”

그야 켄지니깐 다 좋아!”

엔노시타는 술이 많이 들어갔는지 다른 사람이 듣던 말 던 남자끼리 좋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고, 후타쿠치 또한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엔노시타는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을 들어 후타쿠치에게 사과했다.

미안. 게이한테 이런 말 들으면 좀 그렇지?”

“...아니에요. 이제 진짜 괜찮아요.”

후타쿠치는 울컥했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도 엔노시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처음에 그렇게 반응한 것이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런 마음을 엔노시타에게 전할 길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는 웃어넘기기만 할테니깐.

알잖아. 난 스트레이트한테는 손대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깐.”

네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죠. 울컥하는 마음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섞여서 나왔다. 후타쿠치는 아차 싶었지만 술기운이 오르자 어쩌라는 식으로 굴었다.

아 맞아. 최근에 바에 갔었는데 관심 가는 얘가 생겼어.”

엔노시타가 눈을 반짝이면서 후타쿠치에게 말했다. 그가 가는 바라면 분명히 게이바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엔노시타였다면 후타쿠치가 관심 가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면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떻게 하라 조언해줬을 것인데, 후타쿠치는 영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야기 해봤는데 걔도 이쪽 계열에서 일한데.”

제가 먼저 이쪽 계열에서 당신을 만났어요.

취향이 비슷한 것이 많았어.”

저랑 비슷한 게 더 많으시잖아요.

연락처도 주고받았어. 그렇다면 나 싫지 않다는 거겠지?”

그 사람보다 제가 치카라씨를 더 먼저 알고, 더 친하고, 더 좋아해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무렵 후타쿠치는 스스로의 마음에 놀랐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밑바닥에 깔려있던 감정이 엔노시타의 말을 계기로 수면 위에 올라오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처음에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인정하고 난 뒤는 쉬웠다. 그저 흐름을 타면 됐다.

켄지. 듣고 있어?”

“..., . 싫지... 않다는 거겠죠?”

거봐, 그렇게 생각하지? 기분 좋네-”

정말 기분이 좋은지 사근사근 눈을 접어서 웃는다. 저 웃음이 좋았다. 후타쿠치는 갑갑한 마음에 연신 사케를 마셨다. 엔노시타가 무엇인가 열심히 자기에게 말을 걸었지만, 적당한 추임새와 간단한 대답만 할 뿐 어떤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후타쿠치는 엔노시타를 좋아한다는 단어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사케를 혼자 두병 정도 더 비웠을 때 후타쿠치는 눈이 풀렸다. 같이 취하기는 했어도 후타쿠치보다 덜 취한 엔노시타는 후타쿠치의 상태를 보더니 직원을 불러서 계산을 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인형처럼 흔들리는 후타쿠치는 엔노시타가 딱 잡아주자 약간 발을 끌긴 했어도 어느 정도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사케집은 골목 깊숙한 곳에 있어서 택시를 타기위해 대로변까지 나가려면 꽤나 걸어야 했다. 두 번 째 블록을 지났을 때 엔노시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안녕. . 오늘 아는 직원이랑 술약속이 있어서 바에 못나갔어.”

엔노시타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관심이 없었지만 바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후타쿠치의 온 신경은 엔노시타의 통화 내용에 집중되었다. 자신의 직감이 맞는다면 상대는 바에서 만난 그 얘 일 것이다.

많이 마셨냐고? 아니 그렇게 까지는. 하하하하. 알았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엔노시타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울컥했다. 다른 이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엔노시타를 보기 싫었다.

내일은 바에 꼭

후타쿠치는 그대로 엔노시타의 핸드폰을 뺏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생각지도 않은 후타쿠치의 행동에 엔노시타는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술 취해서 풀린 것 같지만 상대방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후타쿠치는 엔노시타를 바라봤다.

켄지, 뭐하는 거야.”

책망하는 말투도 화내는 말투도 아닌 그저 궁금하다는 투로 엔노시타가 물었다. 다른 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엔노시타가 흡족하다는 듯 후타쿠치의 기분이 약간 풀렸다.

지마요.”

?”

통화하지마요. 걔랑.”

후타쿠치의 이성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말리는데, 입은 되는대로 지껄였다. 엔노시타는 스트레이트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스트레이트였다. 자신은 엔노시타에게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알리고 싶었다. 자신의 감정을.

켄지, 무슨 말이야.”

눈을 꾹 감았다 떠서 엔노시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 반 궁금함 반. 엔노시타는 그런 눈빛을 하고 후타쿠치를 바라봤다. 이제는 안 된다고 해도 말하고 싶었다. 술기운이 여기서 더 풀리기 전에 후타쿠치는 자신의 감정을 엔노시타에게 말하기로 했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아해요.”

?”

엔노시타 치카라씨. 좋아해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엔노시타를 보면서 후타쿠치는 울고 싶어졌다. 비참했고 처참했다. 그러나 후련하기도 했다. 선배도 이런 감정이었으려나.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다. 엔노시타가 무엇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자 후타쿠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생각했다.

, 이제 끝이다.’

 

 

 



 

2015.09.05.

for yilii

pinn_pond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켄] 18  (0) 2015.10.16
[리에야쿠] 17  (0) 2015.10.16
[카게스가] 15  (0) 2015.10.16
[쿠로아카] 14  (0) 2015.10.16
[리에야쿠] 13  (0) 201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