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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아...곧 가을인가"
여름은 끝을 달려가는데 아직도 시끄럽게 우는 매미들의 소리를 헤집고 언제나 장난 끼가 약간 서려있는 쿠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본인이 하고 있는 게임기에 집중했다. 쿠로오는 콜라 한 모금을 삼키고는 작게 웃었다. 역시, 이런 태도가 켄마답지.
"일단은 인터하이에 올라갔으니깐-“
”…아..쿠로"
노란색 머리가 약간 흔들리면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하고 쿠로오는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까지도 귀엽게만 느껴지는 소꿉친구였다. 켄마는 조금 짜증났다는 듯이 게임기를 종료시켰다. 가뜩이나 어려운 보스 몬스터를 만나 고전하고 있었는데 쿠로오가 자꾸 말을 붙여 집중력을 흩트렸다. 뭔가 말하려 오물오물 입술을 움직였지만 곧 한숨을 짧게 쉬고 켄마는 입을 다물었다.
"나 때문에 게임 끈 거야?“
”…딱히"
짧은 대답. 만사에 흥미 없고 무기력해 보이는 켄마가 즐겨 쓰는 대답은 ‘딱히'와 '별로'였다. 하지만 그 짧은 단어 안에 많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그의 오랜 친구인 쿠로오만 알고 있다. 쿠로오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느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소꿉친구. 오래보아서 습관이나 성격같은 것은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쿠로오는 켄마를 그 이상 그 이하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사교성 없는 켄마를 계속 친구로 두고 장난치거나 의욕 없는 그를 이끌고 배구코트로 가서 세터로서의 잠재력을 끌어낸 것도 쿠로오였다. 하지만 쿠로오가 그은 보이지 않는 우정이란 선이 켄마를 늘 힘들게 했다.
"그래서 지금 약간 삐졌구나."
그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켄마는 생각했다. 사실 켄마는 쿠로오 때문에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지 못해 삐진 것이 아니었다. 사실 삐지기보다는 토라졌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을 듯 했다.
"…뭐 말하려 했어"
얼굴은 정면을 향한 채 눈만 쿠로오 쪽으로 올려다 본채 켄마가 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쿠로오는 그의 눈을 반달처럼 접어 웃으며 켄마에게 대답했다.
"인터하이 말이야. 우린 특별한 사람이 없지만 8강까지 갔으니 이제 다시 도쿄의 강호가 아니겠어?“
그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냐. 켄마는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주변의 분위기나 다른 이의 감정변화에 민감한 켄마였지만 오늘 쿠로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별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쿠로오가 피식하고 웃으며 켄마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덩치차이가 확연히 나는 편이라 켄마는 쿠로오에게 안기다시피 끌려갔다.
"이제 내가 졸업하면 켄마, 네가 부장이야"
켄마는 순식간에 몸이 굳었다. 졸업. 쿠로오의 졸업. 쿠로오와 켄마는 소꿉친구라고 하나 쿠로오가 한살 많은 소꿉친구였다. 이미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쿠로오는 켄마보다 먼저 졸업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은 다르다.
"왜? 주장이라고 해서 쫄았어? 켄마?"
놀리듯이 쿠로오는 말했다. 하지만 켄마의 귀에는 다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동요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켄마가 말했다.
"아니."
"실망인걸―"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훌쩍거리더니 이내 남은 콜라를 마시고 쿠로오는 바지를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직도 앉아있는 켄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슬슬 집에 가자. 해가 저물고 있어."
켄마는 무의식적으로 쿠로오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쿠로오의 힘에 이끌려 일어난 켄마는 한쪽 손으로 엉덩이를 털고 다른 손으로 가방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쿠로오는 손을 놔주지 않았다.
"켄마의 손. 큭큭"
쿠로오는 사악하게 웃더니 이내 켄마의 손과 깍지를 껴버렸다. 힘에서 그와 상대가 안되는 켄마는 빠르게 포기를 하고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가방을 집었다.
이 장난기 많고 건방진 남자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다섯 시가 넘어가지만 아직도 아스발트에 남은 열기는 후끈해서 마주잡은 손에 땀이 찼다. 켄마는 땀이 찬 것이 불편한지 자꾸 손을 움직였지만 쿠로오는 요지부동이었다.
"...쿠로-"
"응?"
안면에 웃음이 가득담긴 채로 켄마를 바라보았다. 켄마는 그런 쿠로를 한번 바라보고 그의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그와 같이 쿠로오도 아래를 바라봤다.
"이게 왜에?"
뒷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역시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쿠로오를 보면서 켄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땀 차"
약간 신경질적인 대답이었다.
"어차피 이제 켄마 집 앞이야."
순간 손이 시원해졌다. 얼마 걷지 않은 기분이었는데 벌써 자신의 집 앞이였다. 빨리 들어가서 손 씻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안녕"
자신을 바라보는 쿠로오를 뒤로한채 짧게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켄마의 발목을 잡는 말은 아주 간단했다.
"나, 오사카에 갈 꺼야"
문고리를 잡으려는 손이 무안하게 켄마는 문 앞에 우뚝 섰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이제 말하는 구나.
"인터하이에서 경기를 본 오사카 대학 감독이 제의를 했어. 난 결정했고-"
쿠로오는 그 뒤로 무슨 말을 더 했지만 켄마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저 말을 듣는 것은 힘들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문 앞에서 우뚝 서있는 모습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우스웠지만 켄마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런 켄마가 이상했는지 쿠로오도 하던 말을 멈추고 노란색 뒤통수를 바라봤다. 짧은 침묵 뒤에 다시 쿠로오가 입을 열었다.
"켄마, 듣고 있어?"
"...어"
듣고는 있었다. 분명 자신은 듣고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이런 마음을 쿠로오가 알아채면 불편해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잘 됐네."
뒤돌아 쿠로오를 보면서 켄마가 대답했다. 그런 켄마를 보면서 쿠로오는 살짝 웃더니 이내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그런 쿠로오의 뒷모습을 보면서 켄마는 작게 한숨을 쉬고 집으로 들어갔다.
켄마는 정말 티를 안내려 열심히 노력했다. 원래부터 켄마가 잘하는 행동이긴 하지만 이것은 그런 켄마에게도 제법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눈치가 빠른 쿠로오는 켄마의 이상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평소 골칫덩어리로 여기던 리에프와 합을 맞추는 것에 연습시간의 대부분을 할당하고, 주장이기 때문에 다른 부원들보다 늦게 가는 것을 기다려주던 켄마가 한 번씩 먼저 집에 간다는 행동들이 그 예들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살짝 쿠로오의 눈치를 보더니 얼른 가방을 들고 도망가려는 켄마를 낚아챘다.
"어딜 먼저 가는 걸까?"
쿠로오는 웃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약간 열이 받고 있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켄마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이런 상황이 불편했다. 친했던 사이가 싸운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원해졌다. 쿠로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켄마에게 말했다.
"요즘 왜 나랑 마주치려고도 안하는 거야?"
"...아니"
"아니면 뭐 때문에-"
"뭐하세요?"
켄마를 뒤돌려 세워 추궁을 하려던 찰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하이바 리에프였다.
"호...혹시!! 주장이 켄마 선배를 괴롭히는 건가요?!"
"그런 거 아냐"
그러거나 말거나 켄마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켄마의 머리는 복잡했다. 티를 안낸다고 열심히 했는데 쿠로오에 관한 일은 자기도 서툰 면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가"
리에프가 쿠로오에게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고 있을 때, 켄마가 말했다.
"네?"
"...가라고, 하이바"
켄마의 단호한 말에 리에프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체육관을 나갔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단호한 켄마의 모습에 쿠로오도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아까 말하던 문제는 끝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하던 거-"
"응. 내가 너 피했어."
쿠로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느낌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 다더니, 정말이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갑자기 왜 자신을 피하는지. 언제부터였던 걸까, 켄마가 자신을 꺼려하는 모습이 보이는 때가. 한참 과거를 되짚어보고 있을 때 다시한번 쿠로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떠나는 사람한테..."
그 뒤로는 뭐라 말하는지 잘 안 들렸다. 켄마의 고양이 같은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로오는 켄마와 친구가 된 이래로 가장 당황했다. 켄마는 소심한 구석이 있어도 절대 우는 법이 없었다.
"케...켄마"
황급히 켄마의 얼굴을 살피려 상체를 숙여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켄마는 고집스레 쿠로오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울면서 본인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난...쿠로가 멀리 떠나는 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너무 당황했고, 아직 내 감정이 정리가 안돼서 피했어."
평소 짧게 짧게 말하는 켄마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놨다. 계속 켄마의 의외의 모습에 당황한 쿠로오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해가 안됐다. 그런 걸로 자신을 피한다는 것은 쿠로오의 입장에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에- 그런 걸로 피한거야? 왜?"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무슨 감정을 정리하며 오사카에 간다는 이유로 자신을 피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켄마, 오사카는 말이야.."
"좋아해."
아직도 눈물이 맺힌 눈으로 쿠로오를 바라보며 켄마가 이야기했다.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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