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오이] 3

pinn_pond 2015. 10. 16. 02:34


3

카게야마 토비오/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 선배!!!”

듣기 싫은 목소리. 아니, 남아있던 자존심마저 나락까지 던져버리는 열등감을 자극하는 목소리. 1학년의 카게야마는 모든 면에서 오이카와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카게야마의 인사는 열등감을 가진 이후로 모두 무시했고, 이번에도 오이카와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이젠 억지로 이죽거리면서 장난스럽게 빈정대는 것도 그에게는 한계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이런 자신에게 경멸감까지 느꼈다. 재능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와 모든 면에서 비교하는 자신을 오이카와는 스스로 학대해왔다. 그 것 때문에 배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자, 더 이상 카게야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이카와는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배구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선배!”

어느새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코앞까지 와서 본인의 얼굴을 들이밀며 다시 한 번 불렀다. 처음 배구부에 들어왔을 때는 본인보다 훨씬 작았지만 어느새 정수리가 자신의 눈높이와 비슷하게 올라와있는 것을 보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정말 귀염성이라곤 없는 놈.

그래, 카게야마. 무슨 일이지?”

오늘 연습 끝나고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싫어. 오이카와는 순간 목까지 튀어나온 말을 억지로 눌렀다. 솔직히 오이카와가 더 짜증나는 부분은 카게야마의 이런 면이었다. 다른 부원들보다 더 놀려먹고 때로는 차갑게 대했지만, 카게야마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이카와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에 두르고 다니고 있었다.

더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는 것과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 처음에는 이 반짝반짝한 후배가 오이카와는 귀여웠다. 하지만 주요대회에서 자신 대신 카게야마가 기용되는 횟수가 점점 늘자, 어느 샌가 귀여웠던 감정은 질투와 증오로 변해갔다.

같은 포지션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터라는 매력적인 자리를 오이카와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고, 그에게 있는 배구에 적합한 키를 살려 열심히 노력해서 중학교 때 주전을 따냈다. 처음 2학년 때 주전 자리를 얻었을 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마음 속 깊이 다시 새겼다.

그러나 3학년이 되고 신입 부원들이 왔을 때, 그는 카게야마의 토스를 보고 늘 감사하던 신에게 처음으로 배신감을 느꼈다. 카게야마는 2학년 스파이커가 스윙하기 최적화된 자리를 단 두 번 만에 알아채서 토스를 했다. 섬세한 컨트롤과 뛰어난 감각. 자신에겐 오직 노력뿐이었는데 재능은 생각보다 그에게 아주 크게 다가왔다.

좋아. 연습 끝나고 남아있어.”

! 선배님!”

 



모두 퇴실하고 둘만 남은 체육관은 온통 정적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짝다리를 짚고 팔짱을 낀 채 카게야마의 가지런한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카게야마는 우물쭈물하기 바빴다.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온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한마디를 하려던 순간 카게야마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오이카와 선배, 존경합니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가. 오이카와는 예상치 못한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카게야마가 진심으로 오이카와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은 그와 배구 연습을 같이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겨우 그 말 하러 이 바쁘신 몸을 붙잡은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카게야마는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오이카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좋아...합니다, 선배.”

 



카게야마가 뜻하지 않은 고백을 한 뒤로 오이카와는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부원들에게 장난치지만 배려있는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항상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에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유일하게 그에게 말붙이는 상대는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뿐이었다.

실상은 대화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와이즈미 뿐이었고, 카게야마 쪽에서 말을 걸면 오이카와는 아예 카게야마가 없다는 듯 무시하는 것이 일반이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도 그에 굴하지 않고 인사는 물론 이것저것 오이카와에게 물어봤다. 물론 대답은 없었지만.

오이카와는 처음에 카게야마의 고백을 듣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게야마가 자신에게 고백한 의도는 무엇일까? 방어적인 오이카와의 마음은 카게야마의 고백을 자신에 대한 무시라고 외쳤다. 그래서 화가 났다. 대체 너는 어디까지 나를 끌어 내릴 꺼니.

애써 눌러왔던 카게야마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하나씩 터지더니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카게야마가 너무 싫었다. 아무리 자신이 싫다는 티를 내고 무시를 해도 굽히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던 그를 오이카와는 싫어했다. 그와 만나면서 자신이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일까.

너 요즘 너무 날 서 있어.”

오이카와와 함께 하교하던 이와이즈미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카게야마 때문이야?”

꼭 필요할 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다. 그는 언제나 오이카와의 상태를 먼저 알아챘고 정확히 문제점을 짚어냈다.

이와쨩, 1학년은...”

너 유독 카게야마한테 신경 쓰는 거 알아?”

내가? 엄청 무시하고 있는데?”

너는 겉으로는 웃고 다니면서 이사람 저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지만, 진짜 너의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누가 뭐라던 신경을 안 써. 근데, 카게야마의 행동이나 말에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거야?”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무언가 더 말하려했지만 이내 심각한 얼굴로 입을 닫은 오이카와를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오이카와는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자신은 카게야마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카게야마를 무시했다. 없는 사람 취급하면 그도 나가떨어지고 자신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 비교하지 않아도 되니깐. 그러나 카게야마는 끈질기게 오이카와에게 본인을 각인시켰다. 마치 잊지 말아달라는 것처럼.

일전에 고백도 무시하면 되는 일이었다. 굳이 본인을 무시한다는 열등감을 끌어다가 의미를 부여하고, 카게야마를 무작정 깎아내렸다. 그러면서도 카게야마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느 샌가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어떠한 감정의 형태로든 많은 영역을 차지했다. 이제는 인정해야했다.

나의 열등감은 카게야마 너라는 사람이 아닌, 내가 형상화한 너라는 다른 인물이 만들어낸거야.’

 



어제보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오이카와는 체육관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체욱관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은 오이카와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어제 청소 중에 발라놨던 왁스 냄새가 진동했고, 반질반질한 바닥과 운동화가 마찰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락커룸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오이카와는 다시 카게야마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제 자신이 가진 카게야마에 대한 열등감은 정리를 했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고백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좋아한다. 그것은 명확했다. 하지만 달라진 마음을 가진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이카와는 곰곰이 생각했다. 무시한다고 했지만 언제나 카게야마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오이카와도 마찬가지였다. 카게야마의 배구는 언제나 빛이 났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보고 나서는 그의 타고난 재능에 열등감을 느꼈지만, 불안정한 리시브와 서브를 안정된 자세로 다듬어 준 것은 오이카와였다.

처음이 어렵다고 했다. 카게야마에 대한 열등감을 정리하니 그가 한 고백에 대해서는 한결 쉽게 결론이 났다.

열등감이라는 감정도 이제 보니 너와 비슷한 감정이었나 보다, 카게야마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에 대한 열등감이나 증오심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오이카와는 이제야 깨달았다. 락커룸을 나가 코트로 향하는 오이카와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인정하도록 그가 만들었다. 카게야마는 자신에게 특별하다는 것을.

오이카와 선배!”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게야마가 보였다. 자신을 보며 반갑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카게야마를 보고 오이카와는 속으로 웃었다. 진짜 귀염성 없는 놈이야.

안녕하세요!”

카게야마는 힘차게 인사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바로 라커룸으로 달려갔지만,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붙들려 멈춰 섰다. 자신을 붙든 목소리의 방향으로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고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지만, 이내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걸렸다. 카게야마의 시선 끝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안녕, 카게야마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에게 인사했다.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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