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야쿠] 26

pinn_pond 2015. 10. 30. 20:13


26

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 모리스케의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최악의 상황을 여러 개 생각한다는 것이다.그로인해 멘탈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야쿠 본인은 이런 성격을 싫어했다.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끔 우울한 마음이 겹치면 끝도 모르는 어두운 감정들이 야쿠를 삼키려고 덤벼들었다. 상처를 많이 받고 그것을 품고 가는 성격이었다. 체구가 작아 남들에게 무시받기 쉬어 야쿠는 목소리를 더 크게 그리고 소위 남자다운 행동을 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어두운 성격을 숨겼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부활동에서 야쿠는 리시브를 잘하고 잘 챙겨주는 멋있는 선배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는 무서운 선배였다.

악의 없지만 눈치도 없는 1학년은 처음 입부 했을 때부터 야쿠의 속을 박박 긁었다.참으로 한심한 후배가 아닐 수 없었다. 덩치만 컸지 철없는 초등학생 같은 성격에 연습시간에 제일 늦게 오는 것은 물론 배구의 기본적인 것도 알지 못한 남자였다. 눈치도 없이 야쿠의 키를 가지고 놀리는 건 물론이고, 후배라면 절대 선배에게 하지 못할 장난들을 서슴없이 했다. 야쿠가 응징을 가할 때마다 우는 소리를 냈지만 지칠 줄을 모르고 계속 들이댔다.

그런 후배가 야쿠의 마음속으로 들어 온 것은 한 순간이었다. 뒤에서 바라보는 리에프의 널찍한 등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존재가 되었다. 평소라면 리에프가 했을 장난에 화를 냈겠지만,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마치 놀림당하는 수줍은 아이처럼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마음을 고백하고자 생각했을 때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서너 개쯤 마련해 놓은 뒤였다. 좋은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세상 기준에서 어긋난 행동이었으므로 야쿠가 생각할 수 있는 상황들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숨길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야쿠는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었고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더 이상 리에프를 대할 수 없었기에 미움 받을 각오를 하고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야쿠는 본인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백을 받은 리에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터질 것 같은 사랑의 감정에 이끌려가는 야쿠는 그 이끌림에 그대로 몸을 맡겨버렸다.

..에프

연습일과가 모두 끝나고 부원들마저 없는 한적한 부실에서 야쿠는 떨리는 목소리를 짐짓 모르는 체 하면서 막 나서려는 리에프를 붙잡았다. 초록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자 야쿠는 온 몸에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너의 시선은 날 늘 긴장시켜. 빤히 바라보는 눈에 괜히 목덜미가 간지러워서 한번 손으로 쓰다듬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리에프의 검은 운동화만 바라봤다.

야쿠상, 무슨 일이 심니까?”

.. 저 그게..”

야쿠 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모습에 리에프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야쿠를 바라봤다. 저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오면 되게 충격 받겠지. 그 와중에도 안 좋은 생각만 하면서 야쿠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에 담아뒀던 중요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좋아해 리에프. 좋아하고 있어..”

속에서만 맴돌던 말이 바깥으로 나가니 자신을 계속 괴롭혔던 손바닥의 가시가 빠져나간 것처럼 후련했다. 하지만 마주본 상대편의 반응이 어떨지 너무 무서워서 야쿠는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서 대답해줘. 배구시합보다 긴장되는 이 상황에서 야쿠는 그저 리에프가 대답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쿠상, 저 좋아합니까?”

동요한 것도 싫은 목소리도 아닌 평상시와 같은 무덤덤한 리에프의 말투에 야쿠는 감았던 눈을 떠서 리에프를 올려다봤다. 표정도 목소리처럼 일상적이었다. 리에프의 말에 홀리듯이 고개를 끄덕인 야쿠는 리에프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이건 내가 예상한 상황이 아닌데. 초조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해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 어디가 좋으세요?”

그리고 정말 예상하지 않은 대답이 나왔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동요해서 정상적으로 사고가 돌아가지 않아 무슨 말을 했는지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야쿠는 알 수 없었다. 인생이 원하는 방향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건 너무했다. 집에 가는 길 내내 리에프는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야쿠에게 자신의 좋은 점에 대해 스무고개를 할 만큼 물어봤다. 처음에는 부끄러운 마음에 하나둘씩 더듬거리면서 대답했지만, 계속되는 질문에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결국 리에프는 야쿠에게 맞았다.

솔직히 야쿠는 리에프가 이정도의 반응을 보인 것에 안도했다. 대부분 남자가 고백을 하면 거절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리에프는 예상하지 않은 대답을 했어도 야쿠를 경멸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도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야쿠는 이것도 자신이 최악의 상황을 여러 개 생각한 탓인가 싶어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 뒀다.

야쿠상 좋은 아침임다!”

예선전이 얼마 남지 않아 주말에도 연습을 하러 체육관에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들어가는 야쿠를 보면서 부원들이 인사했고 웬일인지 일찍 나온 리에프가 체육관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온 몸에 털이 쭈뼛 섰다. 어제의 고백이 의식된 걸까. 야쿠는 긴장이 됐는지 침을 크게 한번 삼켰다. 저 머릿속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탱탱볼처럼 야쿠에게 리에프는 미지의 존재였다.

..안녕

살짝 손을 들어 우렁찬 인사에 대답해주었다. 스트레칭을 하려고 체육관 한쪽으로 걸어가는데 자꾸 리에프의 시선이 꽂히는 거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목덜미가 따끔해서 야쿠는 괜히 더 크게 몸을 흔들면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쭉쭉. 오늘따라 몸이 더 뻣뻣한 거 같아서 평소보다 스트레칭이 더뎌지는 기분에 자꾸 잡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한번 도리도리하고 마지막 스트레칭 동작을 하려 했을 때, 검은 그림자가 야쿠를 덮쳤다.

왤케 늦슴까!”

“..?”

리에프였다. 큰 몸집으로 앉아서 스트레칭 하는 야쿠를 굽어보면서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원래 야쿠가 스트레칭을 마치면 리에프의 리시브를 봐주는 것이 근 세 달간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이때쯤이면 올법했는데 아직도 오지 않는 야쿠가 궁금해 리에프가 온 것이었다.

리시브 봐주셔야죠!”

조금만 기다려.”

꼼꼼하게 마지막 스트레칭까지 끝내고 야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한번 해봐.야쿠가 멀리서 공을 던지자 리에프가 팔을 모으고 리시브 자세를 취했다. . 공이 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깨끗한 자세가 아니었는지 가운데가 아닌 옆으로 튕겨버렸다. 아마도 자세가 불안정했거나 양팔의 힘이 균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번 연습 할 때마다 생각하면서 동작을 하라고 했지만 리에프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지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타고난 센스로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이정도 실력으로는 봄고 문턱 조차 가지 못할 것이다.

리에프 똑바로 안 해? 몇 번이나 설명했잖아!!!!!”

결국 큰소리가 나왔다. 매일 아침 그에게 화를 내지 않기를 빌고 빌었지만, 그의 연습에 있어서는 야쿠는 칼과 같은 사람이었다. 야쿠 개인의 문제가 아닌 네코마 배구부의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 공이 제 위치에 맞지 않은 건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밀어내듯이! 힘으로만 무턱대고 하지 말라니깐 이 바보가!!!”

야쿠는 한숨을 쉬면서 리에프의 옆에 가서 리시브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하라고. 무릎을 약간 굽히고 팔을 쭉 피면서 공이 오면 앞으로 밀어내듯이. 발은 땅에 단단하게 붙이고. 군더더기 없는 리시브의 정석 자세를 보여주면서 리에프에게 말했다. 자세를 잡는 도중에 리에프와 팔이 닿았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그때 리에프가 야쿠에게 말했다.

야쿠상은 좋아하는 사람한테 넘 하심다!!”

순간적으로 야쿠는 리에프의 뺨을 한 대 칠 뻔했다.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다른 부원들이 들었으려니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다들 연습에 집중하는지 딱히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야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괘씸한 놈. 엉덩이를 차줬다.

!!!”

조용히 해. 대체 너는..”

좋아하는 사람을 막 때리고!!! 뭐라 하고!! 야쿠상 저 좋아하신다매여!!! 좀 더 상냥하게 대해주세여!!!!!!”

쩌렁쩌렁 울리는 리에프의 목소리에 체육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야쿠의 얼굴은 당혹감과 부끄러움으로 새빨개졌고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리에프는 그런 야쿠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조잘거렸다.

야쿠상 사실은 저 좋아서 괴롭힌 거 맞져 그쳐그쳐!!”

쏟아지는 시선. 폭력적이지 않지만 폭력적인 말. 모든 것이 야쿠를 노려보고 있었다.수치심과 당혹스러움에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어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야쿠는 홀로 광장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도망가고 싶다. 그리고 야쿠는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내내 야쿠가 부활동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도 며칠간은 나오지 않았다고 같은 반인 쿠로오가 부원들에게 말했다. 암묵적으로 그 일 때문에 야쿠가 안나온 것이라 나머지 부원들은 생각했지만 리에프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야쿠상은 멘탈이 강한 사람이니깐. 그렇게 생각하고 가벼이 넘겨버렸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리에프라도 야쿠가 부활동에 참여하지 않은지 이주가 넘어가자 슬슬 이상한 낌새를 조금씩 눈치 채고 있었다. 배구부 내에서도 야쿠 이야기는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유일한 야쿠와의 소통경로인 쿠로오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 누구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법이었다.

연습시합 때였다. 상대편이 도쿄에서 베스트 16안에 드는 강력한 팀이라 레귤러 멤버로 연습시합에 임했어야했다. 출전 멤버의 이름을 부를 때 야쿠의 이름이 빠지고 시바야마의 이름이 불렸을 때 리에프는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바야마도 꽤나 안정적이었지만 야쿠에 비하지는 못했다. 듀스가 지속되는 바람에 힘이 들대로 든 시합이 끝나고 리에프는 체육관을 정리하다 말고 쿠로오에게 물었다.

야쿠상은 왜 안 나오시는 겁미까?”

처음이었다. 야쿠가 그렇게 체육관을 나간 뒤로 야쿠의 이름이 체육관 안에 울려퍼진 것은 거의 이주 만이었다. 쿠로오는 리에프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안 나오시는..

어디선가 공이 날아와서 리에프의 얼굴을 강타했다. 꽤나 아픈지 리에프는 뻘겋게 부은 뺨을 문댔다. 공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켄마가 던진 모양이었다. 켄마는 꽤나 화가 났는지 평소보다 상기된 얼굴로 리에프를 한번 쏘아보더니 체육관을 나가버렸다. 쿠로오와 리에프 둘만 남은 체육관은 그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넌 모르겠냐?”

?”

의미를 알 수 없는 쿠로오의 질문에 리에프는 어리둥절했다. 야쿠가 보이지 않기에 왜 안나오냐고 물었을 뿐인데 켄마에게 공을 맞지를 않나 쿠로오의 눈빛은 싸늘하지 않나. 온통 리에프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너 때문에 안 나오는 거라고.”

 



가슴팍을 꾹꾹 누르면서 쿠로오가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던 말이 마음에 걸려서 리에프는 야쿠의 집 앞까지 왔다. 나 때문인가. 마음에 그다지 켕기는 구석이 없었지만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시간이 느릿하게 걸리는 기분이었다. 침을 한번 크게 삼키고 리에프는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조용한 골목에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이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누구세요. 스피커를 타고 약간 갈라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쿠상! 저에요!”

최대한 밝게 리에프는 대답했다. 야쿠상 야쿠상. 리에프는 대답 없는 스피커 너머의 남자를 자꾸 불렀다. 상대방의 침묵이 오늘따라 너무 거슬렸다. 대답해줘요.

..온거야..”

현관문이 열리면서 제 품보다 많이 큰 티셔츠를 입은 야쿠가 나왔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붉게 상기된 게 감기라도 걸린 건지 목소리는 갈라지고 아파보였다. 리에프는 야쿠의 상태를 보고 걱정이 되었나본지 괜찮나여 라고 물었지만 상대방의 대답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됐고. 대체 여긴 왜 왔어..”

야쿠는 지금 리에프를 절대 와서는 안 될 곳에 온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리에프는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야쿠는 자신을 나무라고 다소 거칠게 대하긴 했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싫었다.

그거야 당연히 야쿠상이 안 나오시니깐 그렇져.”

“..너 멍청한 거야 아니면 나 가지고 노는 거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야쿠가 했다. 리에프는 눈만 껌뻑껌뻑했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가지고 놀다니여매일 같이 연습하는 야쿠상이 안 나오니깐 걱정도 되구 그래서 와본거에여..”

그런....함부로 하지마..”

울먹거리는 소리가 나서 급하게 고개를 숙여 야쿠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니 그 큰 눈에 눈물이 망울망울 맺혀있었다. 리에프는 적잖게 당황했다. 언제나 활기차고 당찬 야쿠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생경했다. 맺힌 눈물은 야쿠의 빨간 뺨을 따라 한줄기씩 떨어졌다. 닦아주고 싶었다. 닦아주고 싶어서 손을 내밀어 야쿠에게 다가가자, 야쿠는 흠칫 놀라더니 몸을 뒤로 쭉 뺐다.

다가오지 마!!”

“..야쿠상?”

눈을 감고 소리치는 야쿠는 리에프가 알던 야쿠와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떨고 있는 가엾은 작은 사람은 고슴도치처럼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가시를 내세워 자신을 보호했다.

제발그만 내 속에 들어와..”

?”

투두둑 떨어지는 눈물은 이미 야쿠가 입고나온 티셔츠를 적셔 군데군데 눈물이 묻은 곳은 색이 진해져 있었다. 리에프가 마음만 먹으면 야쿠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나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온몸에서 그를 말리고 있었다.

진짜 싫어..”

.. 말입니까?”

상대방의 싫다는 말에 리에프는 심장 부근이 아파왔다. 생각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리에프를 아프게 했지만 그가 느꼈을 감정보다는 아니었다. 눈물기 어린 야쿠의 눈이 원망을 담아서 리에프를 바라봤다.

아무생각 없이 나를 상처 준 너를 아직도 좋아하는 내가 싫어.”

더 이상 야쿠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새빨개진 눈가는 그가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울지 않으려 바들바들 떨면서 서있는 야쿠는 리에프가 보기에 더없이 안쓰러워보였다. 충동적으로 안아주고 싶었지만 야쿠는 리에프가 한 발짝 다가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네가 나를 단 한번이라도 선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제발 가줘..”

야쿠는 애원했다. 제발 제발 더 이상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헤집어 놓지 마. 가슴이 갈라져 검붉은 액체가 울컥울컥 나왔다.

제발 가란말이야..”

. 야쿠의 주먹이 리에프의 가슴을 살짝 밀어 쳤다. 밀어내는 그 작은 손을 잡고 싶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리에프를 보더니 야쿠는 가라는 말을 작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리에프는 좀 전에 휘몰아치듯 지나간 상황들을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떨고 있는 야쿠의 작은 몸 만 리에프 앞에 선명히 보이는 느낌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뒷모습을 당장이라도 껴안아주고 싶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야쿠상. 리에프는 그의 이름을 불러봤다. 그냥 야쿠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기뻐서 평소 하던 대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죄송해요. 리에프는 고개를 떨궜다. 부끄러운 마음에 더 이상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걱정됐지만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릴 수도, 야쿠에게 전화할 수도 없었다.자신이 잘 못한 게 너무 많기에 리에프는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서있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저도 야쿠상이 좋아서 기뻐서 그런 것뿐인데. 리에프는 고개를 들어 눈을 감았다. 눈물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2015.10.30.

Happy Birthday L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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