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스가] 6

pinn_pond 2015. 10. 16. 02:54


6

카게야마 토비오/스가와라 코우시

 

 

 

 

카게야마는 그랬다. 어느 샌가부터 불린 코트 위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그는 싫어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인가 된 것 마냥 내심 기뻐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비아냥거리기 위해 만든 별명이라는 것을 알고는 싫어했다. 실력으로 누르지도 못하면서 뒤에서만 욕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카게야마는 무시했다.

일단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것은 비단 카게야마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중학교 때는 소원하던 부원들과의 관계도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좋아졌다. 선배들에게 인정도 받고 그는 카라스노의 중심이 되었으며, 다시 코트의 제왕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달랐다. 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부원들을 챙겨주는 선배 한 명은 카게야마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사람은 아니었다. 니시노야나 아사히 같은 경우는 본인의 실력들이 워낙 출중해서 부원들 사이에서도 튀었지만, 그를 처음 봤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아서 주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스가와라 코우시. 카게야마의 관심을 가져간 선배의 이름이었다. 같은 자리의 세터를 맡고 있다는 것부터 호기심이 동했다. 전에 중학교 때의 오이카와에게 알 수 없는 내침을 당한 뒤, 카게야마는 자신의 재능 때문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선배들에 대한 동경을 접었다. 처음에는 잘 대해주지만 그의 실력을 알고 나서는 다들 앞에서는 부러워하고 뒤에서는 질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카게야마에게 스가는 특별했다. 어찌 보면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임에도 먼저 카게야마에게 말을 걸어주고, 늘 환하게 웃었다. 고등학생의 마음가짐은 다른 것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제왕이라 놀리지도 않고 자신을 배려해주는 모습을 카게야마는 신기하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의 동등함.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만 받던 카게야마에게 가장 필요한건 동등함일지도 모른다.

 



그럼 먼저 들어간다.”

카게야마와 샤워를 마치고 나온 히나타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말했다. 내일은 예선전이 있기 때문에 합숙을 하게 되어 카게야마는 밤늦게 까지 연습을 하고 막 숙소로 들어와 씻었다. 음료수를 마시고 싶어서 히나타를 먼저 올려 보내고 카게야마는 자판기까지 혼자 걸어갔다.

오늘 연습도 좋았다. 자신과 히나타의 합은 언제나 좋았고, 리시브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빼고는 다들 실력과 기량이 늘었다. 두 손가락으로 자판기를 누르고 카게야마는 음료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덜컹- 소리가 들리면서 이온음료 하나가 나왔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면서 방으로 돌아가려던 카게야마는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니 코치와 스가가 이야기 하고 있었다. 뭔가 코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스가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스가와라, 정말로 괜찮겠어?”

말씀 드렸잖아요. 시합은 애들 장난이 아니에요.”

카게야마는 비밀대화를 엿듣는 기분이 들었다. 코치가 머리를 한번 긁적이면서 스가에게 말했다.

나도 너의 마음은 잘 알아. 어찌 보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실력으로나 모든 면에서 카게야마가 저보다 팀을 더 높은 단계로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주전이 아니더라도 교체돼서 시합에 나갈 수 있구요.”

자신의 이름이 대화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이번 시합의 주전 이야기인 것 같았다. 같은 세터의 포지션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지만, 스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아했다. 흔히 있을 법한 라이벌이라는 의식 또한 없어서 카게야마는 스가가 자신과의 실력 차 때문에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물론 세터 자리에 욕심이 안 난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는 카게야마가 낫죠. 코치님도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카게야마는 그만큼 연습도 많이 했어요. 다른 사람보다도 더. 그 노력을 제가 3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럼 코치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쉬어라.”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나고 복도에는 정적만 남아 있었다. 카게야마는 먹던 이온음료 캔을 손으로 세게 잡았다. 스가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주고 있었다. 재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카게야마는 자신의 재능만큼 아니 더 노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카게야마를 보지 않고 오로지 그의 재능 덕이라고만 했다.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알아준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질투로 멀어졌다. 카게야마는 늘 외로웠다. 주위에 사람이 있음에도 마음은 멀었다. 그러나 스가는 그런 카게야마에게 새로운 존재로 다가왔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주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 카게야마는 그런 스가를 더 알고 싶었다.

 



카라스노!!!”

다들 기합이 들어갔다. 다이치의 구호에 맞춰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어깨동무를 한 뒤 모두 한마음으로 소리를 쳤다. 결국 주전 멤버는 카게야마가 되었고, 스가는 벤치에서 다른 부원들과 함께 응원했다.

시합은 예상대로 팽팽하게 진행 되었다. 첫 세트에서는 운이 좋게 따냈지만, 두 번째 세트는 카라스노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마음이 급했다. 다른 시합보다도 집중이 안 되고 결국엔 히나타에게 토스를 제대로 올리지 못 해 실점을 거듭하다 결국 세트를 뺏기고 말았다. 머릿속이 녹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벤치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면서 코치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실수해서 세트를 뺏겼어..’

얼굴에서는 땀이 계속 흘렀다. 이온음료를 마셔도 카게야마의 갈증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나때문이야. 나때문이야. 머릿속에서는 하지 말아야할 생각이 둥둥 떠다녔다. 평소에 완벽하던 사람이 중요한 곳에서 실수를 하면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 다는 것을 카게야마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카게야마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카게야마

나긋나긋한 스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

누구의 탓도 아냐. 넌 잘하고 있어.”

평소에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할 수 있어.”

금이 갔던 카게야마의 마음을 스가는 다시 단단하게 붙잡아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였지만 그것을 스가가 했다는 게 크게 다가왔다.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정말로 이해를 받고 위로를 받았다. 휴식 시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리자 카게야마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는 스가에게 작게 목례를 하고 다시 코트 위로 뛰어갔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상태는 그리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다른 부원의 실수와 함께 연이어 5점을 뺏기고 카라스노의 분위기는 축 쳐져있었다. 니시노야가 들어와서 기합을 넣었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다시 휘슬이 울리고 장내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코트 아웃라인 밖에서 스가가 9번 팻말을 들고 서있었다. 교체였다. 카게야마는 멍하니 팻말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스가 쪽으로 뛰어갔다. 스가는 벤치로 들어가는 카게야마의 등을 한 번 두들겨 주고 코트 위로 걸어갔다.

부족해서 교체한 거 아냐.”

“...?”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카게야마에게 코치가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왜 자신을 교체했는가.

머리 좀 식히라고. 그리고 스가와라의 플레이를 봐. 아직 너에게 부족한 부분이 보일거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라니. 코치는 머리를 식히라고 했지만 카게야마는 더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였다. 갑자기 응원석에서 함성이 튀어나왔다.

니시노야의 백업. 스가의 토스. 아사히의 스파이크. 모든 게 짜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합을 이루었다. 물 흐르듯이 유연한 플레이에 모든 사람들은 환호했다. 쭉 변칙적이던 카라스노의 플레이가 갑자기 속공을 비롯한 오래된 팀의 숙련된 플레이로 바뀌자 상대팀은 적응하지 못하고 연이은 실점을 했다.

스가 한 사람으로 인해 카라스노에게는 안정감이 생겼다. 카게야마는 화려하지 않지만 팀원들을 아우르는 스가의 플레이에 감탄했다. . 카게야마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뛰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코트에 달려나가서 자신도 배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스가와 함께 배구하고 싶었다. 자신도 그와 함께 합을 맞추고 같은 코트 위에 뛰고 싶었다. 하지만 카게야마와 스가는 같은 세터 포지션이었다. 배구의 특성상 같이 뛸 수 없었다. 갑자기 원망스러운 마음이 불쑥 솟아났다.

스가 선배와 같은 코트에서 뛸 수 없는 게 싫다.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시합은 카라스노의 승리였다. 끝에 가서는 다시 카게야마로 교체되었지만 스가 또한 승리의 주요 공신 중 하나였다. 다음 시합을 위해 빠르게 자리를 비워주고 밖에서 코치의 오늘 시합에 대한 평을 들었다. 다들 진지한 자세로 평을 듣고 피드백을 한 뒤 각자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먼저 걸어가는 스가의 뒷모습을 보고 카게야마는 빠르게 스가에게 다가갔다.

스가 선배. 같이 가요

자신을 잡은 게 의외의 인물인지 스가는 눈이 커다래졌지만, 카게야마의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카게야마는 그 미소에 약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선배는 저 어떻게 생각해요?”

? 어떻게 라니?”

뭐... 성격이라던 지 플레이라던 지

카게야마는 긴장했다. 이상한 말이 나오면 어떡하지. 별로라는 말도 싫은데. 여러 감정이 교차했지만 스가의 침묵이 예상외로 길어져 카게야마는 목이 바짝바짝 탔다. 슬슬 괜한걸 물어봤나 하면서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스가가 말했다.

의외였다라고 해야 하나

?”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리둥절했다.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일까.

중학교 때 별명이 코트 위의 제왕이었다며.”

아...

그래서 엄청 거만하고 막 할 줄 알았는데 안 그러잖아. 카게야마는 늘 열심히 하잖아.”

그렇게 말하고는 스가는 다시 웃었다.

그래도 아시고 계셨네요.”

?”

제 별명이요, 코트 위의 제왕

카게야마는 멋쩍게 웃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은 어째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별명 싫어하잖아

. 무엇인가 카게야마의 마음으로 들어왔다.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자신과 그리 오래 만나지 않았고 말도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딱딱 해주었다.

카게야마는 이 사람이 욕심나기 시작했다. 자신을 똑바로 봐줄 사람. 몰랐을 때는 어떻게든 살았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그 맛을 알아버리니 자꾸만 빨려 들어갔다. 나에 대해서 더 알아주길 바란다. 카게야마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스가에게 했다.

선배.”

?”

조금 더 저를 욕심 내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만 바라봐주세요.”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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