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24

pinn_pond 2015. 10. 26. 00:43


24

미유키 카즈야/사와무라 에이준

 

 

 

 

오늘따라 손이 야구공 실밥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영 꺼림칙해서 사와무라는 글러브 안에서 다시 공을 단단히 고쳐 잡았다. 손가락 마디에 걸리는 실밥의 오돌톨톨한 부분들을 감싸 쥐고 사와무라는 와인드업을 하기 위해 몸을 살짝 틀었다. 미유키 선배의 글러브 안으로 던지자. 스트라이크 존안에서 자신의 공을 받으려고 자리 잡고 있는 글러브를 볼 때면, 사와무라 마음 안쪽 깊숙이 숨겨있던 독점욕이 튀어나왔다. 그가 나의 공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세이도에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투수들 그리고 에이스가 아닌 자신이기에 정포수인 그가 사와무라의 공을 받아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포수와 합을 맞추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친 피칭을 하는 사와무라에게는 감독의 지시로 네트에만 공을 던지고 있었기에 누군가 받아주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미트에 공을 던지는 것이 좋았다. 어느 것도 가다듬어지지 않는 자신의 공을 부드럽게 미트로 감싸 안는 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일렁거렸다. 여태까지 어떤 포수도 자신의 공을 받고 이런 소리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직 미유키 카즈야 만이 사와무라 에이준에게 들려줄 수 있는 환상적인 소리였다.

처음에는 미유키를 볼 때마다 무작정 자신의 공을 받아달라고 쫓아다녔다. 정포수인 미유키는 에이스의 공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어느새 사와무라의 꿈은 에이스가 되었다. 그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와 함께 배터리를 짜고 싶었으며 그와 늘 함께이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유키와 사와무라는 연인이 되었다.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놀려먹는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지만 전보다 부드럽고 소중하게어디까지나 미유키 본인의 기준이었다대했다. 물론 열혈 사와무라를 놀려먹는 것이 미유키의 일과 중 하나였으나, 단 둘만 있는 데이트를 할 때면 초콜릿처럼 달콤한 태도로 사람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매너가 미유키에게 있었다. 사와무라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곧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더 미유키에게 빠졌다.

부활동 시간 외에는 사와무라에게 미유키 독점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사와무라가 집착하는 야구에 관한 시간은 그에게 미유키를 허락하지 않았다. 분한 일이었으나 자신도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 저항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미유키가 자신의 공을 받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눈물이 차올라 스스로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다. 사와무라는 부원들 사이에서 멘탈이 강한 남자로 인식되어있지만 그는 사랑에 약한 남자였고, 미유키 앞에서는 더더욱 약해지는 남자였다. 사랑은 사람을 감정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독 미유키가 후루야의 공을 받을 때면 더 속이 상했다. 미유키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야구부원으로써 투수로써 그리고 미유키의 연인으로써 자존심이 상했다. 사와무라는 사와무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독점욕이 강한 편이라서 팀의 에이스가 되기 위해, 미유키가 자신의 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남들 보다 배로 연습했다. 야구부원 중 가장 늦게까지 연습하는 사람은 사와무라였다.

그 노력의 결실은 체인지업을 배우고 나서 비로소 나타났다. 선발로 기용되어 누구도 밟지 않은 마운드 위에 올라가 미유키의 미트에 첫 번째로 공을 던질 수 있었다. 완봉과 완투는 염연히 달랐지만 사와무라에게 있어서 완투는 그 누구보다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좋아해요, 미유키 선배. 공을 단단히 잡고 와인드업을 해 그의 미트로 던지면서 공에 담는 사와무라의 메시지. 그가 그렇게 공을 미트로 보내면 팡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그것은 미유키 카즈야의 대답. 사와무라가 보내준 사랑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공을 꽉 잡는 모습. 그들은 배터리 이상의 교감을 구장 안에서 느끼고 있었다.

나이스 피칭, 사와무라.”

미트로 등을 두드리면서 미유키가 사와무라에게 말을 건넸다. 완투로 시합을 끝낸 것도 짜릿했는데, 미유키의 말을 듣자 등으로 심장이 가 쿵쾅쿵쾅 거리는 덕에 시합 때도 떨리지 않았던 손마디마디가 저릿저릿 했다. 칭찬받았어! 어떡해!!! 볼이 빨개진 거 같기도 했다. 처음 사랑을 느끼는 수줍은 소녀처럼 사와무라는 온몸이 베베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미유키 좋아함다!!!! 이 구장에 외치고 싶었다.

 



제 공을 받아주세여 미유키!!!”

오늘도 우렁찬 사와무라의 외침으로 세이도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저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연습 시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최근 세이도 야구부 부원들은 느끼고 있었다. 미유키는 그런 사와무라를 한 번 바라보고는 한 숨을 내쉬고 포구 자세를 취했다. 사와무라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와인드업을 하려했지만 곧이어 미유키가 하는 말에 동작을 멈췄다.

너 말고, 후루야.”

?”

후루야가 던져야지. 사와무라는 저기.”

미트를 끼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덩그러니 남겨진 네트를 가리켰다. 또다시 후루야에게 미유키를 빼앗겼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저 미트에 공을 꽂을 사람은 난데. 아까까지만 해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식어갔다. 미유키는 감독이 시키는 매뉴얼대로 말할 뿐이었는데, 사와무라는 마치 미유키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잡고 있는 공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사와무라는 그대로 피칭존을 뛰쳐나갔다.

 



평소라면 상처를 받지 않았을 텐데, 어제의 시합에서 그와의 호흡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것에 힘입어 공을 받아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한 구라도 좋았다. 미유키가 자신의 공을 받아주기를 바랐다. 더 이상의 상처는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금이 가서 피가 새어나왔다.

사와무라!!”

언제 쫓아왔는지 등 뒤에서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꾹 참고 있던 눈물이 눈가에 차올라 떨어지려고 했다. 그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지만 생리적인 현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너무 하심다..”

?”

미유키 바보바보!!! 제 맘도 모르고!!!!!”

사와무라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여태까지 쌓여왔던 모든 감정이 오늘 단단히 날을 잡은 듯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미유키는 당황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좋던 사와무라가 갑자기 딴사람이 된 마냥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투수들은 저마다의 까다로운 성격이나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웠지만 사와무라는 편한 축에 속했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미유키의 계산에는 없는 성격이었고, 처음 마주치는 사와무라의 상태에 평정심이 좋기로 유명한 미유키도 꽤나 당황했다.

대체 왜 그래.. ? 말 좀 해봐

됐슴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도 사와무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제 연인이 왜 우는지도 모르는 미유키는 그저 답답함에 발만 동동말이 그렇다는 거다.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굴렀다.

어째서 우는지 알아야..”

“..제 공은 왜 받아주지 않슴까?”

위로 예쁘게 솟아오른 큰 눈이 제법 무섭게 미유키를 흘겨보면서 말한다. 결국 그거였냐. 정말로 한숨이 크게 나왔다.

그 이야기는 끝났잖아.”

“...”

내가 싫어서 안 받아 주는 것도 아니고, 감독님의 지시로 그런 건데 대체 왜 그래.”

어제 완투도 하고...”

완투랑은 상관없는 거야. 어제는 잘했어. 그런데 오늘의 연습은 오늘의 연습이야.”

그렇지만..!!”

대체 왜 어린애처럼 구는 거야. 진짜....”

지겨워. 작게 중얼거린 미유키의 목소리가 여태껏 들어왔던 많은 소리들보다 크게 사와무라의 귀에 꽂혔다. 줄줄 흐르던 눈물은 충격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사와무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유키를 바라봤다. 미유키는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었고 답답한 듯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

그만 좀 해.”

“...진짜 싫어!!!!!! 미유키 같은 거 진짜 싫어!!!! 꺼져버려!!!!!!”

바보. 멍청이. 똥깨. 미유키의 면전에 대고 욕을 한 사발 퍼부은 사와무라는 그대로 몸을 돌려 기숙사로 뛰어갔다. 뒤에서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마음의 상처가 컸기 때문에 그 어떠한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더 이상 네 공을 받지 않을 거야.”

?”

미유키가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워 사와무라에게 주면서 말했다. 스포츠 선글라스로 가진 미유키의 얼굴에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죠? 사와무라는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야구 모자를 뒤집어 쓴 미유키는 제자리에서 다시 한 번 그가 말했던 것을 사와무라에게 상기시켰다.

니 공 지겨워.”

제가 질리셨슴까?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유키의 입에서 응 이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두렵고 무서워서 사와무라는 묻지 못했다. 자신과 미유키 사이에 큰 펜스 하나가 놓인 느낌이었다.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왼손에 공을 쥐어주더니 그대로 저만치 멀리 사라졌다.

그저 미유키가 제 공을 받으면 행복해서 그랬슴다..”

더 이상 들을 사람이 없었지만 사와무라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아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내뱉었다. 목구멍이 까끌까끌 했지만, 마음에서 무엇인가 턱턱 막혔지만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애써 나오는 눈물을 삼키면서 말했다.

절 지겨워하지 마십쇼.. 미유키가 좋아서 그런검다.. 저한테서 등을 보이지 마세요.. 무섭슴다. 미유키가 절두고 떠날 거 같아서..”

후회. 때 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등번호 2를 가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깜깜했고 홀로 남겨진 느낌에 사와무라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미유키의 이름을 불렀다. 미안함다. 들을 리 만무한 말들을 하면서.

 



번쩍하고 눈이 떠졌다. 어두운 주변과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에 사와무라는 빛도 없었지만 눈을 찡그렸다. 뭐지. 손마디가 얼얼했고 볼은 축축했다. 현재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얼얼한 손을 얼굴로 가져가 얼굴을 한번 쓸었다. 눈물이 많이 맺혔는지 눈을 손으로 쓸자마자 맺혀있던 눈물방울들이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온 몸은 가위라도 눌렸다는 듯이 저렸다. 어라, 진짜 뭐지? 나 아까까지.

꿈이었구나. 이제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꿈이라고 하기 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침 연습이 시작하기도 전에 사와무라는 아침밥을 먹으러가는 미유키의 손목을 세게 잡고 기숙사 뒤편으로 데리고 갔다. 어안이 벙벙한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이름을 연신 외치면서 질질 끌려갔다.

그래서.. 뭐야

일단 끌고 오기에 끌려 왔더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사와무라는 아무 말도 안하고 땅 아래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간다?”

뭔가 말하려고 쭈뼛대기는 한 것 같은데 계속 뜸을 들이니 미유키는 약간 심술을 부렸다. 이렇게 까지 멍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오늘 내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미유키가 정말 갈 듯 한 태세를 취하니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잡아 사와무라는 본인 쪽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함다

?”

죄송함다 미유키!!!!!!!!!!”

갑자기 사와무라가 소리를 빽 질러서 미유키는 적잖게 놀랬다. 쓸데없는 곳에 박력이 넘친단 말이야.

?”

죄송함다 죄송함다..”

몇 번이고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대로 미유키에게 돌진해 꽉 끌어안았다. 투수답게 팔 힘이 세서 끌어안긴 갈비뼈 부분이 아려왔다.

아 아퍼!! 사와무라 이거 좀 놓고!!”

죄송함다 미유키 미워하지 말아주세여..”

사와무라가 얼굴을 박고 있는 미유키의 셔츠 부근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어라. 미유키는 처음 보는 사와무라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비상한 머리 덕인지 이내 왜 사와무라가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 대충 이해가 갔다. 으이구, 멍청아.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

제발 지겹다고 하지 말아주세여..”

. 미유키는 짧은 탄식을 했다.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사와무라에게는 큰 상처가 된 것이었다. 사와무라가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것쯤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미유키는 살짝 웃으면서 자신도 팔을 들어 사와무라를 껴안았다. 자신을 두른 팔이 약간 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낀 미유키는 몸을 약간 숙여 사와무라의 귀에 속삭였다.

지겨울 리 없잖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들어 사와무라의 코를 꼬집었다. 졸지에 코를 잡힌 사와무라는 숨이 막히는지 버둥거렸지만 미유키는 놔주지 않고 큭큭 대면서 사와무라를 골렸다. 어쩜 너는 이렇게 멍청한데 사랑스럽냐. 사랑스러운 제 연인에게 미유키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눈물이 입술에 고였는지 짭짤한 맛이 났지만 그건 그거대로 만족스러웠다.

지겹지 않으신검니까? 저 버리지 않는거심니까?”

제 연인이 물기어린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니 미유키는 정신이 아찔했다. 강아지 같기도 하면서 묘하게 올라간 눈꼬리가 물기를 머금으니 색기가 감돌아 주인의 마음도 모르는 미유키의 하반신이 꿈틀 거렸다. 대체 이 꼴통은 머릿속에 뭘 넣어 다니는 거야. 그래도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을 보면 많이 발전했다는 이야기겠지. 미유키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못나디 못나고 멍청한 연인이었지만, 볼 때마다 색다른 면이 있었고 그의 눈에는 한없이 귀여워 보이고 섹시해보였다.

바보냐?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거기에 의심가지지 마.”

미유키는 마치 마운드 위에서 사인을 보낼 때처럼 거침없었다. 언제나 불안한 사와무라를 잡아주는 것은 미유키였다. 마운드 위에서나 심지어 연애문제에서도. 이런 남자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붙잡힌 코가 얼얼했지만 사와무라는 마음속에 있던 근심이 비구름 걷히듯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미유키!!! 좋아함다!!!”

사와무라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미유키 품에 한가득 안겼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사와무라를 보면서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생각하면서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머리카락 위에 입을 맞췄다. 자신의 품속을 파고드는 부드러운 머리칼에 입을 맞추니 마음도 어느새 간질간질 해졌다. 아 에이준 이건 반칙이야.

아 미유키!!”

?”

제 공을 받아주세여!!!!!!”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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