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흑] 冬

pinn_pond 2015. 12. 26. 21:45


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리는 세계적인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겨울 이맘쯤 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하루를 전날의 일몰로부터 다음 일몰로까지 쳤기에 전야인 이브가 중요시 되었다고 크리스마스이브도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 되었다. 크리스트교 국가가 아닌 일본도 세계적인 열기와 상업주의에 따라 크리스마스가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초기의 의미가 비록 퇴색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되는 날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도 자신의 생일이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이미 도쿄에는 한차례 눈이 내려서 거리거리마다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비롯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어울려 사람들에게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 이었다. 제법 연애라는 것을 길게 쿠로코 또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연인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매년 기대를 했다. 연인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가장 이벤트인 크리스마스는 사랑을 키워나가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서로 교환하는 선물과 좋은 자리에서 속삭이는 사랑의 말들은 해의 사랑을 정리하는 의미와 다음 해에도 사랑하자는 의미를 크리스마스는 내포하고 있었다.

히무로는 그런 맥락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연인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미국에서 지낸 기간이 길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그가 생각하기에도 손에 꼽히는 중요한 기념일 하나였다. 서로 사귀고 나서부터 크리스마스에는 다른 지역으로 여행가는 것이 이벤트라면 이벤트였다. 디즈니랜드에도 갔었고 삿포로에 구경도 갔으며 작년에는 미국으로 떠나 쿠로코는 난생 처음으로 썸머 크리스마스를 체험했다. 가벼운 옷차림에 산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야자수에 걸린 꼬마전구들은 어울릴 듯하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나중에는 트리에 걸린 전구들이 어색할 정도였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히무로와 함께 보내는 더운 크리스마스는 쿠로코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가 기대되는 건지도 몰랐다. 사람의 기대감이라는 무엇인가 충족되면 더욱 올라가기 마련이었으니 쿠로코 역시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겨울의 세찬 추위가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었으나 제법 추워진 탓에 쿠로코는 입고 있는 더플코트를 다시 여미고 목도리를 고쳐 맸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캐롤이 흐르고 있었고 알고 있는 캐롤이라 쿠로코는 흥얼거리면서 따라 불렀다. 이제는 정말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히무로의 선물을 사기 위해 직접─물론 쿠로코는 바라지 않았지만─도와주겠다고 나선 모모이를 만나려고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매번 그녀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서 이번에는 사는 약속시간을 길게 잡았다. 오랜만에 쿠로코와 데이트라면서 즐거워하던 모모이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들리는 같아서 쿠로코는 조용히 웃었다.

“테츠군!!!

“아, 모모이상”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모모이는 춥다고 말하면서 서둘러 쿠로코에게 팔짱을 꼈다. 이미 생각하고 왔다는 듯이 모모이는 백화점에서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샀고 바로 쿠로코와 함께 다른 매장으로 히무로의 선물을 골랐다. 그녀가 추천해준 선물은 깔끔한 은색 시계로 그의 손목 위에 걸면 어울릴 같아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사버렸다. 직원이 포장해주는 것을 보면서 자꾸 히무로의 웃는 얼굴이 생각이 갑자기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쿠로코는 발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 이것도. 눈길이 닿은 워커 또한 히무로와 함께 커플 신발이었다. 모든 시선 끝마다 그가 생각나 쿠로코는 부끄러운 마음 반절 두근거리는 마음 반절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직원이 건네주는 시계를 제때 받지 못했다. 아까보다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백화점을 나선 , 간단히 점심을 먹고 무엇인가 아쉬운 지 모모이가 좋은 디저트 카페가 있다며 쿠로코를 끌고 갔다. 다양한 케이크를 주문하고 맛있게 먹는 모모이를 보면서 쿠로코는 자신의 앞에 놓은 바닐라 셰이크를 마셨다.

“이번에는 남자 친구가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했지 뭐야!

“아, 축하드려요.

“크리스마스에 눈도 내린다 하니깐 엄청엄청 기대돼!

브라우니를 한 스푼 떠먹고 눈을 반짝이면서 모모이가 말했다. 사랑에 빠져있는 모모이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느껴져 쿠로코는 부끄러운 마음에 음료수에 집중하려했다. 그러나 쿠로코의 작은 발버둥과는 달리 모모이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깐 히쨩이랑은 어떻게 되는 거야?

“…컥…네?

갑자기 나와 버린 질문 탓에 쿠로코는 바닐라 셰이크를 잘못 삼켜 사래에 들려버리고 말았다.

“테츠군, 괜찮아?

“아…네. 괜찮습니다.

모모이는 옆에 있는 티슈를 뽑아서 쿠로코에게 건넨 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코 쪽으로 잘못 들어갔는지 콧등 언저리가 매웠다. 입 주변을 티슈로 닦고 당황스러웠던 마음을 정리 할 때 쯤 모모이는 다시 대화의 흐름을 연결했다.

“응? 그래서?

“뭘 말입니까…”

“히무로쨩이랑 크리스마스 계획이 어떻게 되냐구!

“그게…”

쿠로코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이유인즉슨 늘 크리스마스 계획은 히무로가 도맡아서 했기 때문에 딱히 계획이랄지 일정이랄지 쿠로코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모이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무심한 사람같이 보여서 쿠로코는 애꿎은 티슈만 꾹꾹 눌러댔다.

“아이참! 계획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음…있다고 해야 할지 없다고 해야 할지…”

“그러면 안 돼, 테츠군! 미리미리 준비 안하면 그냥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먹게 된다고!

멍청한 다이쨩처럼 그런데서 데이트하면 안 되지. 모모이는 혼자 주먹을 꽉 쥐고는 아오미네를 욕하더니 저번에 그래서 키쨩이 울었잖아라며 갑자기 쿠로코에게 아오미네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쿠로코는 대화의 방향이 바뀐 것이 감사했는지 평소라면 짧게 단답형으로 대답했을 이야기에 최대한 관심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모모이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열변을 토하는 와중에도 앞에 있는 케이크를 놓치지 않는 모모이의 모습에 감탄하는 사이 어느새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모모이는 쿠로코에게 포크를 휘두르면서 이야기를 했다.

“히쨩은 다이쨩같은 남자가 아니니까 그래도 테츠군은 복 받은 거야. 그러니깐 내가 히쨩에게 테츠군을 양보해준 거기두 하구!

“하하…”

“그래도 히쨩이라면 준비해 놓았을 거야. 작년도 그렇고 재작년도 그렇구! 늘 실망시키지 않았잖아!

“감사해요.

멋쩍게 웃으면서 히무로를 칭찬하는 모모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모모이는 핸드폰을 한번 보더니 이 근처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쿠로코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선물을 살 때 큰 도움을 준 모모이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한 뒤 쿠로코는 그녀를 약속장소까지 배웅해준 뒤 집으로 가기위해 전철을 탔다. 아직 오후 3시라 한가한 전철 안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정점에 이르렀다가 서쪽을 향해 저물어가는 해는 겨울이 되어도 매우 따뜻하게 느껴져 쿠로코는 피곤함에 감기는 눈을 겨우겨우 참아 억지로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집에 도착한 쿠로코는 선물을 책상 서랍에 몰래 숨기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아까 모모이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솔직히 기대가 되지 않는 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사랑하는 이와 보내는 특별한 날인데 어느 누가 기대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모모이는 그런 쿠로코의 마음에 부채질을 한 격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번 크리스마스는쿠로코는 의미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사귄지 다섯 해가 되는 날이었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끝도 없어져 매번 히무로를 바라볼 때마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그의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집요하게 맞춰오는 히무로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함락되기는 했지만 대충 쿠로코의 요새 마음의 맥락은 이러했다. 으아, 부끄러워. 쿠로코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쿠로코는 자기 자신을 감추는데 능하다고 여태까지 생각해왔는데, 그것을 뒤집은 사람은 히무로였다. 나름 기척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도 쿠로코가 어디 있는지 단번에 찾아냈으며 무표정을 하고 있어도 안에 담고 있는 감정을 읽어냈다. 처음에는 의표를 찔린 것 같아서 아니라고 어깃장을 놓았지만 결국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 쿠로코는 자신을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히무로에게 마음을 내어 주었다.

쿠로코는 무릎을 두 손으로 모아 끌어당기고 위에 얼굴을 묻었다. 히무로가 없는 집은 쓸쓸했다. 오늘따라 더 커 보이는 집을 쿠로코는 가늘게 눈을 뜨며 바라보다가 거실 한 쪽 구석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저기에 트리를 놔야겠다. 그렇게 쿠로코는 생각했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감도 큰 법. 옛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고 쿠로코는 생각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무로는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평소라면 아무래도 여행을 가기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 크리스마스 계획을 말해주었고 쿠로코 또한 그 날짜에 맞추어 일정을 조정했다. 그러나 히무로는 어떠한 언질도 없었을 뿐더러 밤늦게 와서는 쿠로코의 뺨에 키스한 번 하고는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그렇게 하다가는 다이쨩처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먹게 된다니깐. 갑자기 카페에서 열변을 토했던 모모이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키쨩은 울었다구. 평소에는 아무생각이 없었던 키세에게 불현듯이 동질감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쿠로코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 이상이었으나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좀 더 좋은 곳, 조금 더 분위기 좋은 곳을 원하기 마련이었다. 자신이 직접 코스를 짜볼까 해서 이곳저곳에 전화했지만 이미 한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차있었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 어떠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해 기분 또한 축 쳐져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크리스마스이브라 모모이의 말대로 패스트푸드점 외에는 남은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속상한 마음 반, 자신에게 실망하는 마음 반. 쿠로코는 복잡한 마음에 구석에 밀어둔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가지고 트리 앞에 섰다. 무엇이라도 안하면 생각으로 머리와 마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빨간색 공 하나를 들어 트리 끝 부분에 살짝 걸었다. 예쁘게 달린 모양새를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어 본격적으로 캐롤을 틀어 놓고 트리를 장식했다.

“나왔어.

캐롤이 두 곡정도 흘렀을 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막 일을 마치고 들어온 히무로가 쿠로코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밖에는 눈이 내리는지 히무로의 까만 머리 위로 하얀 눈송이가 내려 앉아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트리 장식물을 내려놓고 현관에서 눈이 묻은 외투를 털려는 히무로에게 대신 외투를 건네받아 쿠로코가 꼼꼼하게 털어줬다.

“고마워, 쿠로코.

“피곤하실 텐데 어서 씻으세요.

“응. 그럼 씻고 나올게.

쿠로코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고 히무로는 욕실로 들어갔다. 옷장에 히무로의 외투를 걸고 쿠로코는 다시 거실로 와서 아까 내려놓았던 장식물을 들어 다시 트리를 꾸미기 시작했다. 신나게 따라 부르던 캐롤송이 끝나고 다음으로 어떤 캐롤송이 나오자 덩달아 쿠로코의 손도 느려졌다. Last Christmas. 밝은 분위기의 음악과는 다르게 가사는 슬픈 그러나 화자의 마음을 담담하게 전하는 곡. 자신과 히무로의 크리스마스가 마지막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고백을 히무로가 거절한 것도 아닌데 꼭 자신의 심정과도 닮아 보여 울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많고 많은 크리스마스 중 이번만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머리를 따라 가주지 못했다.

지팡이 캔디를 트리에 걸고 있었을 때, 갑자기 뒤에서 껴안는 느낌에 그대로 캔디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따끈한 온기가 자신을 감싸 안은 것을 보니 막 샤워를 마친 히무로가 뒤에서 안았으리라 생각한 쿠로코는 몸을 살짝 비틀어 얼굴을 마주 봤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안.

“네?

“크리스마스인데 챙겨주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계속 잘 챙겨주셨는데, 저도 챙겼어야 했구요.

예상보다 담담하게 나온 말투에 쿠로코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마음 같아서는 백번이라도 투정부리고 싶었는데 자신의 성격도 그렇고 투정부리는 못난 모습을 히무로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미안해하는 모습의 히무로를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쿠로코는 히무로의 손을 한번 꼭 잡고는 뺨에 키스하고 어서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너는?

“저는 트리 마저 꾸미고 들어갈게요.

침실로 들어가면서도 미안하다고 하는 히무로에게 살짝 웃어보여 주고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느린 캐롤송을 끄고 마지막으로 트리 끝에 큰 별을 달았다. 꼬마 전구를 트리 전체에 두르고 불을 켜니 형광등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쿠로코는 불을 끄고 트리 앞에 앉아서 반짝이는 꼬마전구들을 구경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와 서양호랑가시나무 열매, 형형색색의 작은 방울들과 리본들은 크리스마스에 걸맞게 참 예뻐 보였다. 쿠로코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무릎을 끌어 모아 고개를 살짝 데고 아까 들어서 머릿속에 맴돌던 캐롤을 불렀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This year to save me from tears.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지난 크리스마스에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었지만 그 다음날 당신은 나를 거절했어요. 올해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특별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줄 거예요.)

알 수 없는 기분에 목이 메는 기분이 들었지만 제일 상단에 있는 별을 바라보면서 다시 캐롤을 이어 불렀다.

Once bitten and twice shy. I keep my distance but you still catch my eye. Tell me baby, do you recognize me? (전에 받은 상처로 힘들어요. 당신을 멀리하려해도 여전히 내 눈길은 당신을 향해 있어요. 말해 주세요, 제가 누구인지 기억 하시나요?)

더 불렀다가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쿠로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애꿎은 황금색 작은 종을 손가락으로 건들이면서 딸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도 싫었고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미워지기 시작했다.

“쿠로코, 밖에 있지 말고 이리와.

침실에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이 들리자 들쭉날쭉했던 기분을 급하게 정리하고 쿠로코는 일어나서 그를 부르는 히무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히무로는 피곤한지 눈을 감은 채 방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쿠로코에게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쿠로코는 얇게 웃고는 아까 읽던 책을 들고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댔다.

찰스 디킨스의 < 크리스마스 캐롤>. 매년 쿠로코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읽는 책이었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의 유령이 보여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바로 잡을 시간이 있는 것을 깨닫고 크리스마스를 진심으로 기리는 그런 내용의 책이었다. 사람을 불신하고 관계를 가벼이 여기던 스크루지 영감을 깨닫게 해주는 줄거리는 쿠로코가 평소 지니던 생각과 일치해서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했다. 지금 쿠로코가 읽는 대목은 크리스마스 유령이 스크루지 영감의 미래에 있을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불평불만과 불신을 일삼던 스크루지 영감의 최후가 결국은 쓸쓸히 죽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장면이었다.

문득 아까의 원망이 부끄러워졌다. 평소 히무로가 자신에게 해줬던 고마운 것들을 모른 척하고 앞에 보이는 큰 것에만 집중했다. 히무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일이 어쩌다가 겹쳐서 피치 못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일 뿐, 자신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거나 소홀해진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지금 쿠로코 자신의 모습은 욕심쟁이 스크루지 영감의 모습과 하등 다를게 없었다. 착잡한 마음이 들어 읽던 책을 가슴 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고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욕심쟁이 테츠야. 쿠로코는 자신을 빈정거렸다.

“쿠로코.

“…네?

“이리 와서 누워.

히무로는 잠자는 게 아니었는지 쿠로코를 부르고는 마치 쿠로코에게 자신의 팔을 베라는 듯 팔을 쭉 뻗어 다른 손으로 툭툭 쳤다. 쿠로코는 우물쭈물하다가 에잇 하는 마음으로 히무로의 팔위로 머리를 가져다 댔다. 살짝 몸을 틀어 쿠로코를 내려다보는 히무로는 살짝 웃더니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Let your heart be light. From now on, our troubles will be out of sight.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마음의 불을 켜 봐요. 지금부터 우리의 근심은 눈앞에서 사라질 거예요.)

감미로운 목소리가 히무로의 입에서 흘러나와 쿠로코에게 전해졌다.

Here we are as in olden days. Happy golden days of yore. Faithful friends who are dear to us. Gather near to us once more. (친숙한 날을 맞은 듯 우리가 여기에 있어요. 즐거운 찬란한 옛 날들. 한결같이 아껴주던 친구들이 다시한번 우리 곁에 가까이 모였어요.)

, 어떡해. 쿠로코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자신을 따스하게 내려다보면서 캐롤을 불러주는 히무로는 너무나도 자상하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와 보였다.

Through the years. We all will be together. If the fates allow. Hang a shining star upon the highest bough. So,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만일 운명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해가 지나도 언제나 함께일 거예요. 저 높은 곳에 빛나는 별을 달아봐요. 그리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마지막 소절까지 마친 히무로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쿠로코를 보고 살짝 웃어주더니 그대로 쿠로코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짧은 입맞춤이 아쉽게 끝나고 서로의 얼굴이 멀어졌을 때, 히무로는 다시 쿠로코에게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쿠로코 테츠야. 사랑합니다.

뒤에 있는 조명등을 받은 히무로의 얼굴은 무척이나 화사해보여 쿠로코는 그를 그대로 껴안았다. 그 어느 것 하나 표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자신을 히무로는 언제나와 같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었다. 그의 마음이 고맙고 그에게 사랑받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져 쿠로코는 히무로의 목을 껴안은 자신의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그리고 히무로의 등 뒤로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눈 내려요.

“어? 진짜네.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기쁘다는 듯이 히무로는 쿠로코에게 말하고 다시한번 쿠로코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가 불러 줬던 노래처럼 작은 크리스마스일지라도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 의미는 그거로써 충분했다. 다시 그가 불러준 캐롤송의 가사를 곱씹으면서 쿠로코는 히무로에게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응.

“그리고… 사랑합니다, 타츠야.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쿠로코는 말했다. 히무로 역시 자신의 작고 귀여운 연인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 화답해주었다.

“나도 사랑해, 테츠야.

 






2015.12.26.

with wowhoo

Winter of four s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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