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흑] 夏

pinn_pond 2016. 2. 3. 05:18


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장마 전선이 물러난 땅 위는 더위가 보란 듯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아스팔트를 바라보자면 누구든 밖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어느 무렵, 으레 그렇듯이 매주 여름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공원을 주변으로 형성된 길과 골목들에는 밤이 되면 상점들이 즐비했고 노점상 또한 여름축제의 분위기를 거들었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를 엮듯이 수놓은 전등들은 밤거리를 비추기에 적합했다. 은은한 전등은 여름축제의 멋을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해가 강렬하게 내리 쬐는 낮에도 사람들은 밤에 하는 축제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그만큼 여름축제라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자연스러운 일상과도 같았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놀던 것도 관두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여름축제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해, 해질 무렵에는 그 어디에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마다 땅거미가 깔리고 전등이 하나 둘 씩 켜지면 각자대로 시원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얇은 민소매를 입은 사람이 있는 가하면 일상복을 입기도 했고 가벼운 유카타 차림으로 분위기를 양껏 내기도 했다.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과 상인들의 호객행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합쳐지면 여름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 신호가 되었다.

끈덕진 여름의 습기가 피부에 찰싹 달라붙을 때면 집에서 에어컨을 쐬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 한 입을 베어 무는 게 로망이 된다. 왁자지껄한 여름축제보다는 집 안에 있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그랬다. 쿠로코 테츠야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여름축제 분위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축제 거리를 거닐 다보면 불가피하게도 사람들과 접촉할 때가 있기 마련이었다. 땀으로 끈적이는 다른 이의 팔이 닿을 때면 불쾌지수가 급격히 상승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기에 피차 기분 나빠지는 것 보단 차라리 피하는 게 나을 성 싶어 쿠로코는 여름축제 기간에는 집에 있는 것을 선호했다.

땀으로 범벅된 몸을 씻고 탈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앉아 바닐라 셰이크를 먹을 때, 쿠로코는 그 무엇보다도 행복했다. 까슬까슬한 피부에 닿는 바람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아아미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쿠로코는 입을 벌려 소리를 내보았다. 바람과 소리가 만나 듣기만 해도 우스꽝스러운 음성을 만들어 냈다. 목에 두른 수건을 풀어 머리카락을 한 번 더 털고 선풍기 앞에 고개를 숙여 머리를 말렸다. 머리칼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꽤나 시원했다.

아직 물이 떨어지잖아.”

별안간 쿠로코의 몸이 홱 돌려지더니 손에 쥐고 있던 수건이 말을 건넨 사람에게 빼앗겼다. 하얀 수건이 하늘색 머리카락과 뒤엉켜 남아있는 물기를 탈탈 털어냈다. 금방 축축해진 수건은 제 임무를 마치고 빨래바구니로 들어갔다. 쿠로코를 사이에 두고 선풍기와 마주본 남자는 자신의 손을 들어 쿠로코의 머리칼을 살살 매만졌다. 수건으로 털었다 해도 아직 남아있는 물기가 샴푸 향기를 입고 그의 손가락을 타고 코언저리까지 올라왔다. 같은 샴푸를 쓴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쓸 때와 쿠로코가 쓸 때 느껴지는 향기에는 차이가 있었다.

제대로 안 말리면 감기 걸려.”

여름에도 감기 걸리나요?”

“No comment.”

눈을 접어 웃으며 히무로가 대화를 마무리했다. 베란다 문을 열어둔 터라 딱히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밤바람으로도 충분히 집 안이 시원했다. 둘 다 샤워한지 얼마 되지 않기에 몸을 맞대고 있어도 뜨거운 열기 때문에 멀어지는 일은 없었다. 집 안에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베란다 너머에서부터 들리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이내 히무로와 쿠로코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아이쨩! 같이 가!”

빨리 와, 빨리! 좋은 자리 맡아야 불꽃놀이가 잘 보인단 말이야.”

유카타 입으면 보폭이 줄어든 단 말이야, 조금만 천천히 가자.”

어쩔 수 없지……. 손잡아, 마유쨩

그리고는 게다가 딱딱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말소리와 함께 줄어들면서 사라졌다. 히무로와 쿠로코가 사는 집 근처에 여름축제가 들어서기에 이런 작은 소동들은 늘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손을 잡고 지나가며 나누는 이야기라던지 연인끼리 축제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담소를 통해 여름축제는 그들에게 어서 참가하라며 독촉했다.

사실 축제에 가고는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이 시간을 맞춰보려 해도 짬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름만 되면 바빠졌다. 한창 축제가 성행하고 마무리인 불꽃놀이가 시작될 때쯤이 퇴근하고 그제야 집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이런 가벼운 스킨십이나 그날 있었던 일을 서로 주고받고는 바로 잠자리에 드는 형태였다. 여름축제는 언감생심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머나먼 별과도 같아보였다.

테츠야.”

?”

여름축제 갈래?”

쿠로코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건가 싶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이는 쿠로코 덕에 히무로는 재차 물어봤다.

우리 여름축제 갈래?”

……, 시간이 되려나요?”

이번 주말 오프잖아.”

저야 그렇긴 한데……, 히무로상은 아니지 않나요.”

오래 전부터 받은 주말 휴일이었다. 이 날에 히무로와 여행 가려고 일정을 잡아놨으나 히무로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취소가 되어버렸었다. 바캉스는 고사하고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못한 여름이 흘러가려던 찰나에 히무로가 여름축제에 가자고 먼저 운을 띄웠다. 그건 좋았는데, 히무로는 그 날에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약속 취소 됐어.”

……?”

그 쪽 바이어가 바쁘다고 다음 주로 미룰 순 없냐고 해서 알았다고 했어.”

다음 주라면…….”

, 미안. 오사카 놀러가자는 거…….”

못 간다는 거군요.”

미안해, 테츠야.”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주말에 벌충하게 해줘.”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걸 다 포기하고 오로지 오사카 여행을 위해 참아왔던 출근들이 무의미해진 기분이었다. 히무로 딴에는 여행약속을 취소하는 게 미안해 쿠로코가 쉬는 이번 주말에 여름축제에 가자고 한 것 일 테다. 그의 마음은 잘 알았지만 오사카 여행과 여름축제를 저울 위에 놓고 본다면 오사카 여행 쪽으로 기우는 건 당연지사였다. 아직까지도 앞에서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소리가 갑자기 축 처지게 들렸다.

 



, 이게 뭔가요.”

옷장 앞에 걸려있는 크림색 옷을 보면서 쿠로코가 물었다. 아니 어렴풋이 무엇인지 알겠는데 이게 대체 왜 집에 그리고 자신의 옷장 앞에 걸려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카타잖아.”

……

여름축제니깐 당연히 유카타 아니겠어?”

예의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하던 히무로는 어서 입어보라며 쿠로코 손에 유카타를 쥐어주고 자신은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쿠로코는 크림색 유카타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폭 쉬곤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끼익하고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열렸다. 한껏 가벼워진 옷차림이었지만 쿠로코는 어느 때보다도 몸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속옷 위에 달랑 천 쪼가리 하나만 둘러 싸맨 게 영 어색했다. 목 주변이 휑한 것도 이상했고 나풀거리는 소매가 신경 쓰였다. 이래저래 성가신 옷차림이라 쿠로코는 유카타 입는 걸 꺼려했다.

잘 어울리는데?”

순간 쿠로코는 더 잘 어울리시네요라는 말이 나올 뻔 했다. 진한 먹색인 유카타를 입고 있는 히무로는 정말 잡지 화보에 실리는 모델처럼 멋져보였다. 오비에 하얀 부채를 꽂은 것까지 완벽했다. 그는 쿠로코 옆에 다가와 약간 삐뚤어진 오비를 만져주고 어서 나가자며 쿠로코의 손을 끌었다. 맨발에 게다까지 신으니 완벽하게 여름축제를 즐기려는 전형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가자, 이제부터 둘러보려면 불꽃놀이 늦을 수도 있어.”

.”

내밀어진 손을 당연하다는 듯이 잡았다. 살짝 추웠던 몸이 히무로의 손길이 닿자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과사탕까지 완벽했다. 물론 뜰채로 금붕어를 낚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긴 했지만 노점에서 파는 바닐라셰이크도 마셨고 여름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과사탕까지 갖추었다. 히무로는 오비에 꽂아뒀던 부채를 꺼내 살짝살짝 부치면서 여기저기 두 눈을 빛내며 관찰하는 쿠로코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쿠로코가 사과사탕을 반절쯤 먹었을 때, 그들의 시선은 어떤 노점에 꽂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러 종류의 가면을 파는 노점이었다. 고양이 가면도 있었고 한냐 가면도 있었다. 독특한 가면도 많긴 했는데 히무로와 쿠로코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흔하디흔한 여우가면이었다. 하얀 바탕에 여우 귀가 있고 빨간 색으로 군데군데 칠해져 있었다. 거리에서 아이들이 흔히 차고 다니는 종류 중 하나였다. 그래도 여우가면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쿠로코는 두 개의 값을 지불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나를 히무로에게 건넸다.

쓰세요.”

……, 아쉽네.”

뭐가요?”

“테츠야 얼굴 못 보잖아.”

순간적으로 얼굴에 열이 쏠렸다. 남사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턱턱 내놓을 때마다 쿠로코는 요동치는 심장이 얄미웠다.

어서 쓰기나 하세요.”

네네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가면을 쓰는 히무로도 얄미웠다. 뭔가 선수 칠 게 없을 까 생각하던 쿠로코는 스치는 생각에 눈을 번뜩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란 듯이 히무로를 당황시켜보겠다는 것이 지금 쿠로코가 가지는 최대의 목표였다. 하얀 가면 위로 내려앉은 그의 검은 머리칼은 가면과 상당히 조화로웠다. 애니메이션에서만 보던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여우 요괴의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뚫린 구멍에서부터 보이는 먹색 눈동자는 여우 요괴가 아닌 히무로 타츠야라는 걸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쿠로코는 그 눈을 마주하다가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그대로 히무로의 여우 가면 위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이 느껴졌으나 해냈다는 성취감이 먼저 들어 쿠로코는 내심 뿌듯했다.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쿠로코의 시선에서였다히무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만족한 쿠로코는 또다시 여우 가면의 입술 위에 살짝 키스했다.

그렇지만 계속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히무로 덕에 오히려 쿠로코가 부끄러워져 버렸다. 가면 위에 입을 맞춘다는 대담한 행동이 이제는 뿌듯하지 않았고 수줍었다. 어쩌자고 남부끄러운 행동을 거리에서 저질러버린 건지. 쿠로코는 1분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홧홧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재빨리 자신도 가면을 썼고 시야가 한 꺼풀 가려지니 부끄러운 마음에도 조금은 찬물이 끼얹어졌다.

숨죽이며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쿠로코는 불꽃놀이가 제일 잘 보인다는 명당자리로 걸어갔다. 그보다 반 보 천천히 히무로가 그를 따라갔다.

으으, 어지러운 것 같아요.”

괜찮아?”

돌연 쿠로코가 걸음을 멈추더니 가면의 뚫린 구멍 사이로 고르지 않은 호흡을 내뱉었다. 듣기 거슬리는 쇳소리가 가면을 통해 거칠게 나왔다. 히무로의 팔을 붙잡은 쿠로코의 손은 이상하리만큼 차가웠고 상반되게 내쉬는 숨은 덥고 습했다.

가뜩이나 쿠로코가 가면 사이로 숨을 쉬는 게 너무 빠듯해 보여 히무로는 여우가면을 벗겨주었다. 얼굴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가면이 벗겨지자 트이는 숨에 쿠로코는 호흡을 새로이 했다. 거리에 파는 음식 냄새와 여름밤의 향기가 매운 콧등 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얼굴이 식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식기는커녕 콧등부터 이마 위로 화끈거리는 통에 쿠로코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무엇보다도 추웠다. 코를 타고 들어온 밤바람이 몸을 금방 춥게 만들어버렸다.

히무로가 가면을 벗은 쿠로코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얼굴은 상당히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쿠로코의 상태를 지켜보던 히무로는 뭔가 짚이는 게 있다는 표정을 짓고 손을 들어 쿠로코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뜨끈했던 이마에 차가운 손이 닿으니 기분이 좋아져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이마에서 손이 떨어지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앞을 바라보니 히무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감기 같아. 이마 엄청 뜨거워.”

히무로의 말에 쿠로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그 뒤 쭉 잡아당겨진 볼 때문에 억울한 표정으로 바뀌어졌다. 그는 볼 아프다고 따지려 했지만 단호한 히무로의 표정이 그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그러니깐 제대로 말리고 자라고 했잖아.”

걱정이 섞인 핀잔이 히무로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코 밑에 손가락을 데어보니 숨도 더웠고 무엇보다도 오한이 온 건지 쿠로코의 팔에는 닭살이 돋았다가 가라앉았다. 꽤나 독하게 감기가 걸린 것이 분명했다. 시무룩해 보이는 쿠로코를 잠시 바라보다가 약간 벌어진 유카타 상의 부분을 제대로 여며주었다. 감기 걸린 그에게는 지나치게 가벼운 옷차림이라 걱정부터 들었다.

어서 집에 가자.”

아직 축제가…….”

더 있다가는 앓아 누워.”

…….”

히무로의 단호한 말투 탓일까, 쿠로코의 대답이 평소보다 작았다. 어느 샌가 잡힌 손은 쿠로코를 집이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갔다. 그래도 해보고 싶었던 거와 먹고 싶었던 먹거리를 다 먹었던 터라 이쯤 돌아가도 나쁘진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축제의 백미인 불꽃놀이를 보지 못한 거였다. 이곳에서 열리는 여름축제의 불꽃놀이는 규모가 크기로 유명해 다른 지역에서 보려고 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쿠로코도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베란다에서 종종 멀리 보이는 불꽃을 보며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기대를 했는데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쿠로코를 풀이 죽게 만들었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었다. 히무로가 머리카락을 잘 말리라 말한 걸 제대로 듣지 않고 가벼이 넘긴 제 잘못이었다. 여름감기는 누가 걸리냐고 물었던 것이 무안할 정도로 쿠로코는 부끄러웠다. 그 탓일까, 돌연 추워진 쿠로코는 히무로에게 붙잡히지 않은 여우가면을 쥔 오른 손에 약간 힘을 주며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진정해보려 했다. 얼굴은 열 때문에 화끈거렸으나 몸은 상반되게 여름 밤 공기에 속수무책이었다. 오사카 여행도 못가, 여름축제도 제대로 즐기지 못해, 하물며 화룡점정인 불꽃놀이도 못 봐. 쿠로코는 원치 않았지만 점점 땅을 파고 깊이 들어갔다.

퍼엉

그 때, 등 뒤에서 뭐가 쏘아 올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곧이어 또 쏘아 올리는 소리가 나고 타다다닥하는 소리까지 났다.

테츠야, 저거 봐!”

어느 틈에 돌려진 몸은 아까와 정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쿠로코는 제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막 시작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한 줄기 빛이 어두운 하늘을 가르고 날아오르더니 한 지점에 멈추었다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형형색색의 빛으로 터졌다. 신기하고도 매력적인 광경에 쿠로코는 아픈 것도 우울했던 기분도 사라져 온전하게 불꽃놀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축제 장소에서 멀리까지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불꽃놀이는 장소를 개의치 않는 듯 그들 눈에도 화려하고 크게 보였다.

우와

엄청 예쁘다.”

……. 좋네요.”

미안.”

뜬금없이 사과를 하는 히무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마도 이 상냥한 사람은 이것마저도 제 탓으로 돌리는 게 분명했다. 자신 때문에 오사카 여행을 못 갔다 생각하고 자기 때문에 여름축제를 끝까지 즐기지 못해 이런 곳에서 불꽃놀이를 보게 되었고 본인 때문에 쿠로코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쿠로코는 애써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 단 한 번의 행동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법이었다. 그가 잡고 있는 오른 손에 살짝 힘을 더하고 오른 팔을 그의 왼 팔에 붙였다. 서로에게 살이 마주 닿았고 쿠로코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약간 긴장한 그의 몸이 느껴져 살포시 웃음이 나왔다. 다시 큰 불꽃이 밤하늘 위로 쏘아 올려졌다. 쿠로코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히무로에게 말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2016.02.03.

with wowhoo

Summer of four s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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