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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눈이 시렸다. 무엇인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더 이상 꿀 수 없었다. 눈꺼풀이 파르르하고 몇 번 흔들리더니 이내 황금색 눈동자가 천천히 모습을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아 뿌옇게 흐렸던 시야가 서서히 제 위치를 잡아가며 선명히 비춰졌다. 몇 시일까. 아직까지 몽롱한 상태인 켄마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제 옆에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검은 머리칼과 목덜미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반라의 모습이 켄마에겐 낯설지 않았다. 숨이 막히지 않는 지 오늘도 쿠로오는 베개를 양 옆으로 잡아 머리를 누르며 자고 있었다. 켄마는 꼼짝하기 싫었으나 창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과 조금 열린 테라스 문 틈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에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짹짹짹. 바깥에서 참새 소리가 들렸다. 켄마는 반쯤 일으킨 상체를 숙여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었다. 연한 남색 빛 이불 위로 켄마의 금색 머리칼이 수놓듯이 펼쳐졌다. 뻐근하기도 한 허리를 두어 번 툭툭 치고는 굽혔던 허리를 피고 다리 위에 놓인 이불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얇은 이불임에도 슬쩍 더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름이기에.
켄마는 침대에서 내려가기 위해 살짝살짝 움직였다. 행여 옆에 곤히 자고 있는 쿠로오가 깰까, 원래도 조용하게 행동하던 켄마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쿠로오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맨발바닥에 닿는 장판의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여름철의 습기를 흠뻑 먹은 장판은 마치 문어 빨판처럼 쩍 하니 달라붙었다. 켄마는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 테라스 앞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창은 마치 캔버스처럼 커다란 하늘을 멋지게 담아냈다. 테라스 문을 옆으로 밀어 여과되지 않는 전경을 바라보니 더욱 쨍해 보이는 색감에 순간 눈을 찌푸렸다.
테라스에 놓인 슬리퍼를 신고 문턱에 쪼그리고 앉은 켄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솜을 하나씩 떼어 놓은 듯 몽글몽글 뭉쳐있는 구름은 불고 있는 바람에 밀려가는 것인지 동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아, 저건 쿠로 머리 같아. 유독 모나게 삐죽거리는 구름을 보면서 켄마는 살짝 웃었다.
밑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제법 이 여름과 잘 어울려보였다.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나무 안에 숨어 우는 매미 소리. 가끔 잔잔히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그 자체로 여름을 만들어냈다.
켄마는 이렇게 테라스에 앉아서 하늘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과 정오의 미묘한 경계지점에서 그다지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를 피부로 느끼며 아무런 잡념 없이 앉아 있는 것이 좋았다. 뺨에 부대끼는 여름바람이 간지럽게 다가왔다.
하늘은 쿠로오와 닮았다고 켄마는 생각했다. 의식하지 않아도 제 옆에 있어 주고 넓은 품에 안아줬다. 우러러보면 눈이 부시도록 환했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묵묵히 감싸줬다.
모든 것에 혼자였던 켄마를 밝은 하늘 아래로 꺼내 준 것은 쿠로오였다. 그래서 하늘은 쿠로오를 생각나게 했다. 켄마는 다시 눈을 들어 하얀 구름이 콕콕 박힌 파란 캔버스를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테라스에 앉아 있었을 때, 켄마는 자신이 입고 있는 흰 티셔츠에 무엇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자신을 뒤에서부터 감싸 안아오는 팔을 보고는 설핏 웃음이 나왔다. 저 멀리 닿지 않을 곳에 떠 있던 하늘이 어느새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켄마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쿠로오가 말했다.
“일어났어?”
그의 물음에 켄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쿠로오는 켄마를 감싸던 팔을 푸르고 켄마의 옆으로 가 자신도 무릎을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제 검은 머리를 켄마의 어깨에 기대더니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것도, 켄마는 이것도 참 좋았다.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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