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야쿠] 33

pinn_pond 2015. 12. 22. 01:43


33

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상, 저 좋아해요?”

제 앞에 있는 키가 큰 남자는 뻔뻔하게도 이런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 덕에 야쿠는 부끄러움에 죽을 맛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것 같으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받을 때마다 드는 긴장감에 절로 침이 넘어갔다. 짙은 녹색의 큰 눈에는 부담스러우리만큼 야쿠 한사람만 담겨있었다. 이 질문을 받은 것이 대체 몇 번째인가. 대체 리에프는 언제까지 이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려는 거지. 무럭무럭 피어나는 생각에 더는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야쿠는 눈을 감아버렸다.

눈 떠.”

단호한 음성과 함께 자신의 턱을 그러쥐는 차가운 손가락에 야쿠는 슬며시 눈을 떴다. 녹색의 눈이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다가와 삼켜버릴 것만 같았고 그 불안한 느낌에 야쿠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앞에 있는 사람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턱을 쥐던 손을 야쿠의 목 뒤로 옮겨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야쿠를 끌어당기려 했다. 긴장감으로 인해 야쿠의 몸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리에프의 악력은 그것을 넘어섰기에 야쿠는 간단히 리에프의 앞으로 끌려왔다. 리에프에게 잡힌 목 뒷부분은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쿵쿵거리는 심장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마냥 뛰어댔고 눈을 뜨라고 말했던 사람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쿠는 이 불편한 정적이 싫었다.

...리에프...”

나 좋아해? 야쿠상?”

뭐 뭐 너는 자꾸 그런 소리를...”

당황할 때마다 떨리는 제 목소리에 야쿠는 간신히 떴던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아직은 제대로 그를 마주할 자신이 야쿠에게 있지 않았던 터라 눈을 감아 버렸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목덜미를 잡은 손과 어느새 가슴께를 꾹 누르는 느낌이 잔상에 상상을 더해 야쿠는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부끄러움을 주체할 수 없어 리에프의 손을 밀어냈다. 뒷걸음질 치는 제 꼴이 우스웠지만, 지금 이대로 그에게 잡힌다면 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느낌이 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야쿠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당겨지는 힘 때문에 야쿠는 리에프에게 안기다시피 이끌려갔고 갑자기 느껴지는 체향에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들어와 그의 품을 벗어나려했다. 그러나 두 번은 안 놓친다는 듯이 야쿠의 팔을 잡은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퍼, 리에프.”

놓으면 또 도망갈 거잖아요.”

안 갈 테니깐 이거 좀 놓고...”

왜 사귀는데 피하는 거예요?”

말꼬리를 잡아채서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에 야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느새 가까워진 거리에서 리에프가 내뱉은 말은 다시금 야쿠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단어의 배열이었다. 더욱 야쿠를 옥죈 것은 리에프의 어조였다. 차라리 토라진 음색이거나 화가 난 음성이었다면 그의 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으나 리에프는 아침 인사를 하듯 평범한 말투였다. 우물쭈물. 평소 야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의 모습이었으나 야쿠는 리에프의 질문에 이렇다 할 답변을 못 내린 채 시선을 떨어뜨리고 주춤거렸다. 그 주춤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에프는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야쿠의 뺨을 쥐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마주한 리에프의 입술이 얼음장 같아 밀려오는 오한에 야쿠는 소름 돋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의 잇새를 파고드는 그의 혀는 입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뜨거워서 야쿠는 본능적으로 리에프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야쿠가 편하도록 최대한 허리를 숙여서 하는 리에프의 키스는 배려심이 넘쳤고 그와 상반되게 삼켜버릴 듯 깊게 들어오는 혀는 상당히 외설적여서 야쿠는 겹쳐진 입술을 떼려했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뒤통수를 감싼 리에프의 손에 힘이 들어가 도망가려는 야쿠의 머리를 눌러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놔주지 않던 차가운 그러나 뜨거웠던 입술이 떨어지고 야쿠는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용기를 내 고개를 들어 리에프를 바라봤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진득한 시선. 결국 자신을 소유하려는 눈앞의 남자에게 야쿠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우리 사귀는 거 맞죠.”

“...

야쿠상, 나 좋아하는 거 맞지.”

그래요. 됐어요.”

 

 


사실 야쿠가 매번 긴장하고 싶어서 긴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남자였고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한 사내답고 호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배구부에서도 엄격한 선배로 통하고 있었고 처음 리에프와의 관계에서도 무서운 선배가 야쿠의 역할이었다. 언제부턴가 리에프의 페이스에 휘말리게 되었지만 이렇게까지 리에프 앞에서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하거나 수줍음을 타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리에프의 눈에서 알 수 없지만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무엇인가를 읽은 뒤부터 그렇게 되었으리라 야쿠는 짐작했다. 그것이 싫다는 게 아니었지만 야쿠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리에프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리에프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만 해도 복잡해지는 느낌에 야쿠는 고개를 한번 좌우로 흔들더니 앞에 있는 배구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연습시간에는 오롯하게 배구에 집중할 수 있어서 주변의 잡생각을 없애는데 용이했다. 물론 리에프의 리시브 담당이었기 때문에 그와 연결되어있긴 했지만 이 연습시간에는 연인의 갑을관계가 아닌 배구부의 선배와 후배로만 존재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리에프는 타고난 운동 센스에 비해 리시브 실력이 잘 늘지 않는 편이었는데, 여름동안 야쿠가 집중적으로 가르친 터라 이제는 제법 자세가 깔끔했다. 초반에는 거의 붙어있다시피 리에프를 가르쳤지만 최근에는 다른 부원의 연습을 돕거나 야쿠 본인의 개인 연습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끈덕지게 달라붙던 리에프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서 한결 편했지만은 가끔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항상 초록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리에프의 리시브 연습을 잠깐 봐주고 조만간 자신이 은퇴하면 주전이 될 시바야마의 리시브 자세를 요목조목 봐주고 있었다. 시바야마는 제 또래에 비해 리시브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지만 야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공을 하나하나 던져줄 때마다 진지하게 임하는 시바야마가 귀여워서 지적할 타이밍에 말하지 못하고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누오카가 자신도 봐달라며 공을 들고 왔을 때, 자신보다 키만 컸지 아직 어리다는 것이 눈에 보여서 본인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한참을 혼자 큭큭거리면서 웃다가 갑자기 무안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슬며시 돌아보니 모두들 개인 연습에 집중하고 있어서 야쿠는 재빨리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리에프 쪽을 바라보니 켄마가 올려주는 토스를 열심히 때리고 있었다. 리에프가 좋아하는 스파이크 연습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진중한 모습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 그를 보니 야쿠는 옛날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스파이크 치고 싶습니다. 저는 네코마의 에이스가 될겁니다.’

자랑스레 말하고 다니던 리에프를 보면서 저마다 놀리듯 한마디씩 했지만, 어느새 제법 어엿한 에이스의 모습을 띄고 있었기에 야쿠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져 연습이 끝나고 같이 돌아가는 길에 리에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로 했다. 한 쪽에서 들리는 시바야마와 이누오카의 만담을 보고 있자니 끝도 없이 터지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결국 야쿠는 소리를 내 시원스레 웃었다. 야쿠의 웃음에 어리둥절하던 두 1학년 콤비도 사태를 파악했는지 함께 웃었다.

―쾅. 갑자기 무엇인가 크게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자 야쿠는 제 앞에 떨어지는 배구공도 받지 못한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네트 앞, 원래 있어야할 위치보다 한참 밑에 있는 은발의 남자를 보자 야쿠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쪽으로 뛰어갔다.

리에프!!!”

네트 앞에 주저앉은 리에프는 평소라면 괜찮다고 일어나려 했지만 이번에는 꽤나 아픈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야쿠는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마음에 이도저도 못하고 있자 어느새 코치가 와서는 리에프의 상태를 살펴봤다.

괜찮아? 일어 설 수 있겠어?”

잘 모르겠슴다...”

내 팔 잡고 일어나봐.”

코치가 오른쪽 팔을 내어주자 리에프는 바닥을 짚던 손을 들어 코치의 오른팔을 단단히 붙잡고 겨우겨우 일어났다. 힘겹게 일어선 몸은 최대한 옆 사람에게 밀착해 있었고 약간 들린 왼쪽 발은 살짝 경련이 일어난 것 같이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프겠다. 옆에서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말한 시바야마가 야쿠의 속상한 마음에 불을 지폈다. 잘못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되는 마음이 야쿠를 야금야금 갉아먹어서 평소 초조할 때 나오는 입술을 물어뜯는 습관이 나와 버렸다. 피가 날 때까지 깨무는 야쿠의 입술을 하얀 손이 펴주던 감촉이 생각이나 야쿠는 순간 울컥했다.

, 많이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병원 가보도록 하자.”

... 알겠슴다...”

혼자는 무리일 텐데, 누가...”

제가 가겠습니다.”

리에프와 코치에게로 향해있던 시선들이 야쿠에게 쏠렸다. 멋쩍은 느낌에 뒷목을 한번 쓸었지만 앞에 부상자가 있는데 이까짓게 무슨 상관인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야쿠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그래. 택시비 줄 테니 택시타고 갔다 와.”

.”

야쿠는 코치에게 리에프를 건네받고 리에프의 긴 팔을 자신의 몸에 둘러 어깨동무를 하고 부축했다. 신장차이가 제법 나는 터라 여러모로 불편해 보였으나 부축이 없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라 야쿠는 리에프를 떠받친 몸에 좀 더 힘을 실었다. 한발 짝 내딛을 때마다 아픈지 얼굴을 찌푸리면서 약간씩 신음소리를 흘리는 리에프를 올려보다가 갑자기 허공에서 마주 닿는 시선에 부끄러움이 느껴져 시선을 거뒀다. 물론 잘생긴 얼굴에 만연한 웃음은 덤이었다.

잘 부탁해요, 야쿠상.”

 



가벼운 염좌에요. 한 이틀 정도 연습은 쉬시고 발목에 아이싱 하는 거 잊지 마세요.”

, 감사합니다. 가자.”

침대 위에 긴 다리를 뻗고 진찰을 받던 리에프에게 가벼운 염좌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엑스레이에서는 크게 금가거나 하는 부분이 없어서 야쿠는 안도했지만 부상이라는 것은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거라 걱정이 앞섰다.

저번에도 염좌 때문에 진찰받은 거 같은데 이거 습관성 되면 무섭습니다. 꼭 관리해주세요.”

의사는 진료실 문을 나서려는 둘에게 마지막으로 조언을 하더니 다음 환자를 받으려 차트를 뒤적였다. 물리치료를 받고나니 조금 나아보이는 리에프는 아까처럼 온 몸을 기대지는 않았으나 야쿠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약국에서 파스와 소염제를 받고 둘은 택시를 타기 위해 대로로 향했다.

야쿠상 조금만 천천히 걸어주세요. 아픔다.”

? 미안.”

가벼운 부상이라 의사가 말한 것이 야쿠에게 안도감을 주었는지, 아까부터 있었던 긴장이 놓여 발걸음이 빨라졌던 모양이었다. 야쿠는 리에프가 잡은 팔을 다시 고쳐 잡고 걸음을 최대한 천천히 늦추었다. 한적한 오후 3시의 거리는 아무도 없어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만 크게 들렸고 야쿠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리에프에게 말을 했다.

앞으론 조심 좀 해. 에이스 된다고 말만하지 말고. 에이스는 부상관리도 철저해야 한다고.”

아아, 야쿠상은 부상자에게 너무 하심다!!!”

걱정되니깐 그런 거지.”

제가 걱정되심까?”

? 너는 말을...”

걱정되냐니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을 꺼내려고 야쿠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리에프를 돌아봤을 때,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다시 나온 눈빛. 둘만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바뀌는 리에프의 눈빛에 야쿠는 헉하니 숨을 들이 삼켰다. 결국 야쿠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리고 묵묵히 걸어갔다. 리에프 또한 더는 대답을 바라는 분위기가 아니라 야쿠는 불편함을 애써 스스로 삼키면서 리에프가 걷기 불편하지 않게 팔에 힘을 단단히 주었다. 순식간에 둘 사이를 덮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정적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리에프와의 정적이 불편해 야쿠는 뭔가 말이라도 붙여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까 의사가 말하던 이야기가 생각나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맞다. 너 지난번에도 토스 연습하다가 삐었잖아.”

, ...”

넌 리시브 연습할 때는 괜찮은데 다른 거 연습하면 부상이 잦아.”

...”

?”

왜 그럴까?”

앞을 향해 잘만 가던 리에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 들려있던 왼쪽 발을 지면에 확실하게 디디고 야쿠를 내려다 봤다.

내가 왜 그럴까, 야쿠상?”

순간 가까이 다가온 리에프의 얼굴과 뿜어지는 체향에 야쿠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자신을 한가득 담고 있는 초록색 눈은 마치 당장이라도 발가벗길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붙잡혔던 왼쪽 팔에는 곧고 굵은 하얀 손가락이 타고 올라왔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주변의 공기에 야쿠는 생경함을 느꼈고 사방에서 바늘로 찔러대는 느낌에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싫었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는.

내 앞에서 눈 감지 마.”

확 낮아진 음성이 마치 야쿠에게 주술을 걸 듯 눈을 뜨라고 재촉했다. 도리도리. 지금 눈을 뜨면 눈앞의 맹수에게 삼켜질 것만 같은 느낌에 야쿠는 고개를 저으면서 감은 눈에 힘을 주어 더 꾹 닫아버렸다. 그 때, 오른 쪽 뺨이 손가락으로 두들겨지는 느낌이 났다.

야쿠상, 그렇게 애태우면 재밌어요?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아까와는 다른 토라진 음성이 야쿠의 눈을 슬며시 뜨게 했다. 커다란 눈망울이 자신을 향해 불쌍한 듯 바라보고 있어서 야쿠는 눈만 끔뻑거렸고, 아무 말 없는 야쿠를 채근 하듯 리에프는 손가락으로 두들기던 뺨을 손바닥 전채로 감쌌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인 듯 다가오는 입술을 보자 길거리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앞서 고개를 뒤로 살짝 뺐다. 다시금 달아나는 야쿠 때문에 리에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야쿠의 뒷목을 잡아 고정시키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 낮게 읊조렸다.

언제까지 나한테서 도망갈 거야.”

...리에프

어떻게 해야 나만 봐줄 건데여기서 뭘 더해야하는데.

설마. 야쿠는 자신의 예감이 틀리길 빌고 있었다. 아무리 리에프가 자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야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슬금슬금 엄습해오는 불안은 야쿠의 상상에 그 부피를 더했다. 지금 느끼는 아니 전부터 느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던 리에프가 자신에게 보내는 무한한 애정과 집착은 야쿠를 소리 없이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점점 침식해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심지어 눈도 못 마주치는 자신이 답답했지만 곧이어 다가오는 리에프의 입술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 어떻게 해야 해요. 알려주세요.”

가까이 맞닿은 입술 사이로 리에프의 숨결이 들어왔다. 바람을 듬뿍 머금고 몰려오는 체향과 빤히 바라보는 녹색 눈동자는 집요하게 야쿠의 전신을 감쌌고, 점점 다가오는 리에프의 얼굴에 무심코 고개를 돌려버렸다.

피하지마.”

계속되는 거부에 리에프는 충동적으로 커다란 손을 들어 야쿠의 목 언저리를 감쌌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선이 섬뜩하리만큼 소유욕이 느껴져서 야쿠는 리에프의 빨간 져지를 손마디 끝이 하얘지도록 꼭 쥐었다.

야쿠상, 말 좀 해보세요.”

목을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매만지면서 야쿠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뭐를

가지고 싶어.”

“...?”

나만 바라보게 하고 나만 원하게 하고 나한테만 말하게 하고 싶어.”

그런 건 너무...”

너무한 건 야쿠상이야. 자꾸 애태우면 나 어떻게 될지 몰라.”

그렇게 말하고 리에프는 환하게 웃었다. 그의 눈은 차갑게 식었지만 입 꼬리는 올라가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가까워졌던 입술이 살짝 부딪히더니 이내 떨어지고 리에프가 자신의 뺨을 야쿠의 뺨에 대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누구하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얌전히 나만 봐요. 야쿠상.”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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