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츠키] 34

pinn_pond 2015. 12. 31. 00:44


34

쿠로오 테츠로/츠키시마 케이

 

 

 

 

도쿄는 왜 이렇게 더운거에요.”

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츠키시마가 말했다. 매미가 한창 울어대는 한여름이라 아스팔트 위로 지글지글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보면은 대체 이 살인적인 더위는 언제 물러가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츠키시마는 평소 그렇게 더위를 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쿄는 더위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를 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짜증나는 더위에 그를 더욱 들들 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쿠로오의 얼굴이었다. 도쿄사람들은 다 적응된 건가. 땀에 자꾸 미끄러지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다시 고쳐 올리고 츠키시마는 쿠로오를 바라보면 눈길을 거뒀다. 더 보고 있었다가는 아까부터 이어지던 푸념이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아서 츠키시마는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사귀는 사이었지만 이렇게 만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쿠로오는 대학에 들어갔으며 츠키시마 또한 2학년에 올라갔기 때문에 어엿한 주전으로써 후배들과 선배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했다. 작년에 비록 인터하이 입성에 하지 못했으나 쓰린 패배를 발판 삼아 죽도록 노력하여 이번 여름에는 바라보기만 하던 그 곳에 들어갔다. 기쁜 마음도 잠시였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배구 명문들이 모였기에 그에 걸맞은 연습을 해야 했고,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츠키시마는 최선을 다해 연습을 하고 또 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는 법. 날이 갈수록 강도가 더해지는 연습과 찜통과도 같은 더위에 츠키시마는 체력적으로 뒤쳐졌다. 원체 살이 안 붙는 체질이어서 1학년 때도 선배들이 많이 먹으라며 이야기했지만 입이 짧은 터라 츠키시마는 근육만 조금 붙었을 뿐 몸무게에 많은 변화가 없었다. 운동하는 사람치고는 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츠키시마 본인도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더위를 먹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 도쿄니깐?”

재미없어요.”

아쉽군. 어디 카페라도 들어갈까?”

딱히 정해놓은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주변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자며 쿠로오가 말했다. 츠키시마 역시 더는 밖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이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열로 달아오른 머리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카페는 밖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시원했다. 다들 한 마음인지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자리를 찾을 수 없었으나 곧바로 나오는 일행 덕에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카페에 안착할 수 있었다. 둘은 시원한 음료를 시키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조금 살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턱 밑에서 떨어지던 땀은 어느새 식어있었다.

좀 낫지?”

.”

쿠로오는 제 앞에 놓인 음료를 마시더니 얼음을 씹으면서 츠키시마에게 물어봤다. 뭘 이런걸 다 물어보는지. 아직까지도 애 취급하는 쿠로오의 말투에 츠키시마는 마음이 상해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도록 짧게 대답을 했다. 물론 자신은 고등학생이고 쿠로오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면서 그때의 체육관에서 다뤘던 습관이 남아 있는지 동등하게 사귀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쿠로오는 자신을 아이 다루듯 대했다. 그리고 저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는 것도 싫었다.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으리라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어쩌자고 도쿄까지 온 걸까.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을 질문만 스스로에게 퍼부었다.

케이크 좀 먹어봐.”

하얀 생크림 위에 새빨간 딸기가 사이사이에 박힌 예쁜 모앙의 쇼트케이크를 츠키시마의 앞으로 밀어주면서 쿠로오가 말했다. 츠키시마 본인이 생각하기에 딸기 쇼트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참 여자애 같은 취향이라고 여겨 남들에게 말하기 꺼려했다. 쿠로오와 사귀게 된 후 어쩌다가 들켜버리고 말았는데 의외로 놀리거나 그러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소꿉친구인 코즈메 역시 애플파이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쿠로오는 그 부분에서는 익숙해져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츠키시마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겼기 때문에.

포크를 들어 케이크의 가장 좁은 부분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상큼한 딸기의 맛과 부드러운 생크림이 어울려져 입에서 행복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시원함과 달콤함, 두 가지의 기분 덕에 밖에서의 짜증이 눈 녹듯이 녹는 기분이었다. 약간 누그러진 츠키시마는 앞에서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쿠로오에게 선심 쓰듯이 말했다.

드세요.”

아냐, 난 괜찮아.”

네가 먹는 거만 봐도 좋아. 실없이 말하면서 웃는 쿠로오를 보면서 츠키시마는 다시 뾰로퉁 해졌다. 가끔 이런 식으로 부끄러운 말들을 뱉으면서 쿠로오는 가는 눈을 접어 웃었다.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이상야릇한 감정이 느껴져서 츠키시마는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는 쿠로오가 느껴져 애꿎은 케이크만 포크로 푹푹 찍어댔다. 귀 뒤가 화끈 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카페에서 영화가 상영할 시간까지 어찌어찌 버티다가 다시 밖으로 나오니 딱 죽을 맛이었다. 아스발트는 어찌 그리 열기를 뿜어내는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관이 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츠키시마에게 꽤나 위안이 되었다. 슬슬 땀이 흐르기 시작할 때, 다행히도 영화관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주말 낮 시간 때는 역시나 사람들이 북적였다. 영화관에서 틀어놓은 에어컨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바깥의 온도와 실내의 온도를 비슷하게 만들었다. 츠키시마는 습한 열기에 불쾌감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츠키시마와 살짝 부딪혔다. 끈적이는 팔이 스치자 여태까지 눌러왔던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입장하자.”

만약 쿠로오가 여기서 입장하자고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면 부딪혔던 사람에게 들으라는 듯이 비웃음 섞인 건방진 말을 꺼냈을 것이다. 그러면 싸움이 일어났을 테고, 복잡한 생각이 밀려드는 바람에 츠키시마는 더 짜증만 났다. 이렇게 짜증내는 자신도 짜증났다. 그냥 다.

영화는 여름철답게 공포영화였다. 딱히 선호한다기보다는 전날 급하게 예매하는 바람에 남아있는 좌석은 이 영화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예매를 했다. 그리고 츠키시마는 영화를 보면서 왜 좌석이 남아있는지 톡톡히 깨달을 수 있었다. 대체 왜 공포영화에 코믹요소를 끼워 넣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좋다면서 웃고 있는 특히 옆에 있는사람들은 정말 츠키시마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어땠어

별로였어요.”

영화관을 나오면서 쿠로오가 묻자 츠키시마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역대 본 영화 중 최악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파급력이었다. 그래도 해가 절정으로 떠오르는 시간대를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후텁지근한 기분은 약간 누그러졌지만 전날의 연습량과 신칸센을 타고 오면서 누적된 피로는 츠키시마를 괴롭혔다. 블로킹하던 팔뚝 부분은 어제 야치가 파스를 붙여줬지만 쿠로오를 만나러 올때 거추장스러워서 떼버렸기에 아직까지 얼얼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영화관 좌석에 앉았을 때도 팔걸이 댈 때마다 아려 와서 이쪽저쪽으로 팔의 위치를 바꾸면서 아픔을 달래봤다.

이래저래 츠키시마에게는 피로가 몰리는 날이었다. 봄에는 쿠로오가 대학 신입생으로 바빠져서 못 만났었고 초여름에는 츠키시마가 예선전을 치르느라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인터하이 직전에 시간이 비어서 도쿄까지 왔다. 연애 기간에 비해 서로 만난 횟수는 적었기에 사랑을 나눌 시간이 적었다. 메시지와 전화로는 한계가 있었다. 만나지 못해 애가 타던 쿠로오는 몇 번 미야기로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한 츠키시마가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도쿄로 가겠다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좋은 마음과 좋은 취지를 가지고 온 도쿄였지만 더위와 피로가 몰려오는 바람에 여태껏 한 거라고는 짜증낸 것뿐이었다. 쿠로오도 그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교 일 때문에 피곤했을 것이고 더위 또한 똑같이 느낄 텐데 일방적으로 자신만 투정을 부린 느낌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츠키시마는 앞을 보면서 걸어가는 쿠로오의 손을 살짝 잡았다

우리 츠키시마군이 왜 또 이럴까?”

능글맞은 목소리로 츠키시마에게 장난을 걸려는 쿠로오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뭐가 좋다고 웃는 거야. 스머프에 나오는 투덜이 스머프처럼 츠키시마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도 겹쳐진 손이 싫지 않아서 내빼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땀이 배어나와 찝찝하면서 미끈거렸지만 놓지 않았다.

웬일이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놓을까요?”

그건 안 되지. 츠키시마 군이 직접 잡아준 손인데

쿠로오는 직접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사실 이렇게 츠키시마가 짜증내는 것이 좋았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쿠로오는 츠키시마가 자신을 이제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제 앞에서 여러 감정을 보인다고 여겼다. 짜증을 내면서 투정을 부릴 때면 어엿한 연인의 모습과도 같아 보여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츠키시마의 투정을 꺼내보기로 쿠로오는 마음먹었다.

배구 연습 많이 힘들어?”

왜요.”

궁금해서 인터하이 들어가면 연습량이 어떤가.”

나는 못 들어가 봤잖아. 쿠로오는 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츠키시마는 생략된 말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멋쩍은 느낌을 안고 쿠로오의 질문에 대답했다.

배는 더 뛰었어요. 근력도 하고 블로킹도 하고.”

열심히 하는데?”

고작

고작 부활동인데 말이지?”

진짜 성격 나쁘다.”

고마워.”

처음 만났던 도쿄의 체육관에서 나눴던 대화였다. 그때는 지금만큼의 열정이 배구에 없었고 형인 아키테루로 인해 모든 시선이 부정적이고 회의적일 때였다. 자신이 그 시절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쿠로오를 츠키시마는 노려봤다.

고작 이만큼 하는데 힘들다고 말하려 했어요.”

아 그랬어요?”

기분 나뻐. 말 안할래.”

미안미안

쿠로오는 입을 다문 츠키시마를 달랬다. 어떤 때는 받아들이고 어떤 때는 밀어내서 쿠로오는 아직까지도 츠키시마가 어려웠다. , 그래서 공략하는 맛이 있지. 쿠로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장이 너무 굴려요.”

그 사와무라랑 비슷하게 생긴 누구더라

엔노시타 선배요.”

아 맞아. 보기보다 엄한가봐?”

엄한 것도 있고, 아 뭐 어쨌든 연습량이 많아서 힘들어.”

인터하이니깐.”

그래도 힘든 건 힘든거라구요.”

한 마디도 안지면서 끝까지 중얼거리는 츠키시마를 보면서 귀엽다고 느끼는 자신이 이제 중증에 걸려 보였다. 전화로 이야기해도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파악할 수 없었고 그것이 때로는 쿠로오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옛말이 이토록 거슬리기는 연애를 하고나서 느꼈다. 그래서 지금 제 눈앞에서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불평을 늘어놓는 츠키시마를 다 받아주고 있었다.

열차 시간 오기 전에 밥이라도 먹을까?”

4시가 좀 넘는 시간이라 저녁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신칸센을 타고가면 저녁시간을 넘겨 도착할 것 같아서 쿠로오는 뭐라도 먹여 보내고 싶었다. 츠키시마는 제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한번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 결제가 났으니 가볼까. 쿠로오는 잡고 있는 츠키시마의 손을 이끌어 거리 속으로 들어갔다.

 



헤어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참 어려웠다. 메시지를 끝내거나 통화를 종료할 때도 헤어짐과 비슷한 감정을 느껴서 쿠로오는 홀로 씁쓸한 마무리를 지었다. 하물며 직접 만나서 헤어지는 것은 누가 먼저 뭐라고 입을 떼기 뭐한 그런 것이 존재했다. 게이트 앞은 그런 사람들로 붐볐다. 도쿄에 있는 자식을 만나러 왔다가 돌아가는 부모님, 바이어를 돌려보내는 회사원, 주말에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연인들.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도쿄에 왔다가 돌아가는 인파로 넘실댔다. 쿠로오와 츠키시마 역시 그 부류에 속했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것이 있었다면 남자와 남자가 연애하는 그들은 대놓고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아직 신칸센이 오려면 이십 여분 정도가 남아서 둘은 게이트 한편에 놓인 벤치 위에 앉았다. 오가는 사람으로 시끄러웠지만 둘은 그 소음에 어떤 보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운동화 끝부분만 바라보고 있었고 쿠로오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츠키시마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맨질맨질 해 보이는 머리를 쓰다듬어보려고 손을 들었을 때, 갑자기 츠키시마가 고개를 들어 쿠로오를 바라봤다.

?”

찔리는 게 있어서 쿠로오는 당황한 나머지 약간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눈치 못 챘는지 입을 열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해요.”

?”

죄송해요

쿠로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참을 꼼지락거리다가 뱉은 말이 죄송하다라니. 츠키시마를 안지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그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그럴까. 지금 물어봐도 분명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다년간 배구를 하면서 쌓아왔던 책략 기술을 꺼내 쿠로오는 최대한 생각을 해 이유를 찾아봤다.

내가 잘생겨서? 아냐. 츳키가 너무 예뻐서? 아냐. 아까 영화보고 투덜거려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솔직히 앞의 생각들은 쓰잘데기가 없었다쿠로오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아무래도 이 생각 많고 빈정거리는 연하의 애인은 오늘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거 밖에는 딱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예전에도 투정부리기는 했으나 이 번 만큼은 아니었다. 츠키시마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오늘은 하루 종일 대화가 자신의 짜증과 투정으로 이어진다는 걸 느끼고 쿠로오에게 사과를 건넨 것이었다. 쿠로오는 다시금 바닥을 바라보는 츠키시마의 얼굴을 손으로 제 앞에 이끌어 가만히 입을 맞췄다.

공공장소에서 하는 바람에 엄청 놀란 츠키시마가 쿠로오를 급하게 밀어내고 오랜만에 하나가 되었던 입술은 다시 제 자리를 찾아 갔다. 뭐하냐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츠키시마에게 쿠로오는 손을 잡으면서 이야기했다.

더 투정 부려도 돼.”

뭐라구요?”

투정 부려도 된다고.”

아니에요. 이제 안 할 거예요.”

어째서?”

꼴사납잖아요.”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츠키시마가 잡힌 손을 빼려하자 쿠로오는 제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난 좋은데.”

이제야 연인다워 보이는 걸.”

딱히

날 좀 더 의지해줘, 츳키.”

네 애인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면서 팔을 양 옆으로 쫙 벌려 어서 안기라고 말하는 쿠로오 덕에 감동이 반감되었지만 츠키시마는 마음 한 구석부터 퍼지는 간질거림에 발끝을 오므렸다. 머리카락을 따라 자신의 귓가를 만지는 쿠로오의 손길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나쁘지는 않았다. 그에게 의지하는 것과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꽤 괜찮을 것 같다고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이래서 연애를 하나봐

뭐라고? 잘 안 들렸어

아니에요.”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야.”

그건 아마 신칸센 출발 시간 아닐까요?”

에엑?!”

츠키시마의 영혼 없이 중얼거린 중요한 말에 쿠로오는 급하게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출발 시간까지는 겨우 5분 남짓 남았다. 게이트까지는 뛰면 3분정도니깐. 쿠로오는 손으로 제 머리를 한번 헤집더니 앉아있는 츠키시마를 일으켜 플랫폼으로 뛰었다. 곧 열차가 떠난다는 음성 안내가 나오면서 쿠로오는 간신히 츠키시마를 신칸센 출입구에 넣을 수 있었다. 둘 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웃었다. 오늘 땀만 계속 흘린 기분이었다.

잘가, 도착하면 전화하고.”

.”

필요할 때 전화하고 아니 필요 없을 때도 전화해.”

귀찮아

하라면 해.”

츠키시마의 철벽을 여유롭게 넘기면서 쿠로오는 아직까지 놓지 않은 손에 자신의 입술을 댔다. 입술을 가볍게 맞추고는 얼굴을 들어 츠키시마를 바라보고 그의 손을 놔주었다. 이제는 정말 그를 보내야 했다.

보고 싶을 거야.”

좋아해.”

사랑해.”

저도요.”

그 말을 끝으로 출입문이 닫히면서 서서히 신칸센이 움직였다. 점점 멀어져가는 신칸센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다가 쿠로오는 아쉬움에 입맛을 한번 다시고는 플랫폼을 나왔다. 그때, 갑자기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굴까 하는 의아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본 쿠로오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빛보다 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月島 蛍'

그였다.


 

 

 

 

  

2015.12.31.

for n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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