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38

pinn_pond 2016. 1. 26. 02:21


38

오이카와 토오루/스가와라 코우시

 

 

 

 

최근 오이카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낼 아오바죠사이의 배구부 부원은 없었다. 그 정도로 배구부 주장은 상태가 별로였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이와이즈미에게 혼나던 것이 이제는 삼십 분에 한 번씩 욕을 얻어먹었다. 오이카와가 연습 도중에 이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나 티를 내고 다녔다면 그 눈치 없는 킨다이치조차도 주장 조금 이상하지 않냐고 쿠니미에게 물어봤을 정도였다. 오늘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이카와가 부원들끼리 연습경기를 하는 도중 한눈을 팔아 얼굴에 정통으로 스파이크를 맞곤 뒤로 나가 떨어졌다.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멱살을 잡고는 체육관 한 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혀 놨다.

아직까지 얼얼한 이마를 손으로 감싸면서 오이카와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저 대신 토스를 올리고 있는 야하바를 보면서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자꾸 딴생각만 들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생각은 끝없는 망상의 구름을 만들어내 오이카와의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손으로 휘휘 저어봤지만 없어지기는커녕 둘로 나뉘어 증식하는 구름을 보니 이제는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정했던 생각을 인정하니 뒤는 간단했다. 구름이 형체를 갖추더니 오이카와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상쾌군스가와라 코우시였지

카라스노와 처음 붙었던 시합에서도 늦게나마 만났지만 그를 확실히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 시킨 것은 인터하이 예선전에서 맞붙었을 때였다. 그냥 주전에서 밀러난 세터로 여겼다. 카게야마에게 밀린 3학년에게 약간의 동정심과 동질감을 느꼈으나 그게 끝이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있었고 자신은 코트 위에 서있었다. 경기 내내 카게야마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다른 부가적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오이카와는 자신의 열등감과도 같은 카게야마라는 콤플렉스 덩어리와 코트 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주변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시합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이카와의 우세가 점쳐졌다. 비틀리고 이기적인 감정이 자신의 승리라고 오이카와를 독려했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강판 당하자 속으로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 참으로도 위선적인 마음이었다. 그 뒤 나온 세터는 카게야마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이카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잃어버린 점수를 한 점 한 점 만회했다. 사기가 꺾인 팀원들을 독려하는 모습과 침채 되었던 팀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꿔버린 이 세터는 오이카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종국에는 다시 카게야마로 교체되었고 오이카와가 속한 팀이 최종적으로 승리했으나 오이카와에게 그 세터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 후 쭉 이 상태였다. 뭐만하면 카라스노의 3학년 세터가 불쑥불쑥 나타나 오이카와를 방해했다. 토스를 올리려고 하면 그의 모습이 보인다던지 팀원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려고 하면 그가 했던 말이 떠올려진다던지 온통 뒤죽박죽 그와 자신이 섞였다. 뭘까.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오이카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쿠소카와, 너 요새 왜 그러냐.”

어느새 옆에 앉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음료수를 던지면서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이와쨩.”

정말 모르겠어서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신의 모든 순간에서 신출귀몰하게 튀어나오는 그 세터 때문에 오이카와는 애꿎은 음료수 캔을 꾸겼다.

뭔데. 누가 괴롭혀?”

괴롭힌다고 하기보단 자꾸 신경 쓰여

?”

생각 안하려고 하는데 나타나고 계속 생각나

멍청한 놈

아얏! 이와쨩 왜 때려!”

이와이즈미는 혀를 쯧하고 차고는 오이카와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별안간 눈앞에 스파크가 튄 오이카와는 제 이마를 부여잡고 억울하단 눈을 들어 이와이즈미를 올려봤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와이즈미는 기지개를 한 번 피더니 한심하다는 말투로 오이카와에게 말을 툭 던지고 쌩하니 제자리로 갔다.

너 그 사람 좋아하는 거잖아.’

무엇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이 들었다. 신경이 너무 곤두서있던 터라 해답은 가까이 있었는데 보질 못했다. 연애 경험이 풍부한 오이카와 토오루가 모태 솔로인 이와이즈미 하지메에게 연애 상담을 이렇게 할지 그 누가 알았으랴. 이상하리만큼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 진짜 상쾌군을 좋아하는 건가.

혼돈에 빠져있던 생각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자 신기하게도 오이카와가 그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여태까지 했던 고민들이 딱 맞아 떨어졌다. 깨우친 다음은 쉬웠다. 그냥 그를 좋아하면 됐다. 그러나 사람은 그 것에 만족하지 못했고 오이카와 역시 좋아하는 상대를 다시금 만나고 싶었다. 딱히 접점이 없는 그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건 두 달 정도 뒤에 있는 봄고 예선전 때일 것이다.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오이카와는 갑자기 우울해져 더는 연습을 할 수 없어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집으로 걸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교문 앞이었다. 하교시간이 한참 지나서 교문 근처와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까지 무의식적으로 찾아온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마음이 들어 오이카와는 애꿎은 흙바닥을 발로 툭툭 찼다. 신발 끝과 흙이 마찰해 주변부로 모래 알갱이들이 톡톡 튀었다. 한참을 하릴없이 교문을 서성거리다가 오이카와는 축 쳐진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혹시아오바죠사이 부장 맞아?”

누군가 오이카와는 제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과 들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자신이 쭉 생각하던 그 남자가 서있었다. 오이카와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그 남자 때문에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기둥처럼 서있었다.

맞네! 오이카와였지?”

대답 없는 자신을 면밀히 살피더니 이내 재잘거리며 해사하게 웃는 그의 얼굴 덕에 오이카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쉴 새 없이 그에 대해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백지장으로 바뀌어서 오이카와의 머리는 새하얗게 비워졌다. 오이카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어쩐 일이야?”

그 질문에는 고개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무 대답 없는 오이카와를 회색 머리 남자가 갸웃거리면서 바라보더니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다시 웃었다.

, 카게야마 때문이구나!”

?

딱히 변명을 찾지 못한 오이카와는 남자의 말에 재빨리 동의를 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회갈색의 눈이 너무나 청명해서 오이카와는 순간 그의 눈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까지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심장은 공룡이 걸어가듯 쿵쾅쿵쾅 뛰어댔다.

내가 데리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줘.”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스가와라는 그렇게 오이카와의 눈에서 멀어졌다. 으아, 어떡해. 오이카와는 얼굴로 몰리는 열이 느껴져 제 손을 뺨에 댔다. 가까이서 본 스가와라는 제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그를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 하나하나가 오이카와의 심장을 널뛰기에 태운 채 저 멀리 날려버리려 했다.

아니 근데 잠깐만. 오이카와는 번뜩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입이 떡 벌어졌다. 토비오쨩을 데리고 온다고? 속으로 기함을 질렀다. 아까는 스가와라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지만 이제 마주한 현실은 오이카와를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차는 듯 했다. 이대로 도망갈까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스가와라가 카게야마를 데리고 온다면 다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오이카와는 돌아가려는 마음을 접고 교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오이카와상?”

어깨가 두어 번 툭툭 쳐지는 느낌이 들더니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음성이 들렸다. 예전처럼 골려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행여나 같이 있을 스가와라 생각이 나 최대한 품위 있고 다정한 말씨를 꾸미며 뒤를 돌아봤다.

, 토비오쨩.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오이카와상

이제는 제 시선과 얼추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는 카게야마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언제 봐도 오이카와에게 참 정이 안가는 얼굴이었다. 카게야마를 더 보고 있다가는 원래 제 성격이 나와 빈정거릴 거 같아서 오이카와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스가와라를 보려고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없네

?”

아무것도 아냐.”

오이카와상, 저한테 볼일 있으시다 며요.”

스가와라상한테 들었어요. 카게야마는 뒷말을 덧붙이면서 오이카와가 대답하길 재촉했다. 딱히 카게야마에게 할 말도 없거니와 스가와라가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볼일이 없었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변명을 지어내려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냈다. 그렇지만 생각하지도 않았던 변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기적에도 가까운 일이었다. 까만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게야마를 보자니 안에서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솟았다. 점점 다가오는 카게야마의 모습에 긴장하고 있을 때, 뒤에서 구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오이카와. 여기서 대체 뭐하는 거야.”

, 이와쨩!!!”

까무잡잡한 남자는 오이카와에게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하나를 들어 그에게 던졌다. 자신이 가방도 잊고 나올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에 오이카와는 뒷목을 쓰다듬으면서 이와쨩 고마워라고 말했다.

이와이즈미상, 안녕하세요.”

오오, 카게야마 잘 지냈냐.”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가 서로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 오이카와는 운동장 저 편에 있는 체육관 쪽을 기웃거렸다.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마음에 자꾸만 시선이 그 쪽으로 빼앗겼다. 그렇게 한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저를 찌른 사람을 내려다봤다.

뭐하고 있었냐?”

상쾌군

?”

아니 그러게 하하하

이와이즈미의 물음에 속마음이 튀어나와버려 오이카와는 황급히 제 말을 주어 담았다. 가늘게 뜬 이와이즈미의 눈이 불신을 담고 있었지만 딴청피우는 오이카와를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결국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와 몇 마디 더 나누더니 둘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바쁜 후배 그만 괴롭히라는 말도 안 되는어디까지나 오이카와 입장이었다잔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없이 스가만을 생각하며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이카와는 집으로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부원들에게 메시지 답장을 하면서도 생각의 틈을 자꾸 메꾸려고 하는 옅은 회색의 남자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다지 감정이 없었다. 아니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는 카게야마 때문에 얼룩덜룩해진 마음이 아직까지도 남아있었기에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그 얼룩덜룩함을 지워내고 바늘구멍보다 좁은 자신의 마음을 가는 실이 들어오듯 가볍게 통과했다.

그를 생각하니 얼굴에 완연히 웃음꽃이 피었다. 상쾌군. 오이카와는 본인이 느끼기에도 참 별명을 잘 지었다고 여겼다. 그는 한여름의 분수대처럼 청량감 있는 남자였다. 오늘 만난 것도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어렴풋했던 그의 모습이 이제는 뚜렷해지자 오이카와는 마치 코타츠에 들어간 마냥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볼 수 있겠지.

 



비록 오이카와가 이런 형태를 원한 건 아니었으나 며칠 뒤 다시 볼 수는 있었다.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무방비하게 온 탓에 여자들에게 둘러 쌓여있었다. 그 때는 모두 하교하고 꽤 늦은 시간이어서 아무도 없었으나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일찍 카라스노에 와버렸다. 교문 앞에 서있는 그를 발견한 여학생들이 오이카와 주위를 에워싸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 나름 여자들의 관심을 즐겼을 테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 마음이 가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여학생들의 물음에 건성건성 대답해주던 오이카와는 제 귀를 잡아채는 음성에 시선을 돌렸다.

어라오이카와군?”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에 검은 교복을 입은 스가와라가 가방끈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오이카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살았다. 오이카와는 기쁜 마음에 손까지 흔들면서 여자들 사이를 비집고 스가와라에게로 걸어갔다. 볼 일이 생긴 것 같은 오이카와를 여학생들은 더는 붙잡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다.

살았다, 고마워.”

아냐. 오늘도 카게야마 보러 온 거야?”

턱하고 말문이 막혔다. 슬쩍 스가와라 눈치를 보다가 대화의 주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근데 스가와라군은 왜 일찍 하교해?”

아아, 염좌가 있어서.”

무릎 말이야. 긴 교복바지에 둘러싸인 다리를 공중에 두어 번 휘적거리더니 이내 땅바닥에 턱하니 붙였다.

치료받으러 다니는 거야?”

, 코치님이 봄고 전까지는 고쳐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져서.”

그렇구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이카와는 속으로 어떻게 해야 더 말을 붙여볼까 생각하다 자신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하마터면 광대가 승천할 뻔 했다. 재빠르게 돌아가는 머리가 오늘따라 기특했다.

어디 따로 지정해서 다니는 데 있어?”

딱히는 없어. 그냥 동네에 있는 작은 외과 가는 게 전부야.”

그럼 내가 다니는 데 가볼래? 염좌로는 유명한 곳인데.”

어딘데?”

여기서 버스타고 가면 금방이야. 나도 잊을 만하면 염좌가 도지는 편이라.”

그렇다면 신세 좀 질게.”

해냈다. 오이카와는 걸치고 있는 재킷을 벗고 흔들고 운동장을 돌면서 소리치고 싶었다. 입이 귀에 까지 걸리려는 걸 초인적인 힘으로 막아내고 자연스럽게 스가와라를 에스코트하면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곧 버스가 오고 둘은 버스에 타 같은 좌석에 앉았다. 1인용 좌석이 없었던 터라 따로 떨어져 앉는 것도 이상해서 함께 앉았다. 뻣뻣하게 굳은 오이카와를 아는지 모르는지 스가와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재잘거리면서 대화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해줬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두 사람을 필요한 곳에 내려주었다. 보도로 얼마 걷지 않아 오이카와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 나왔다. 접수를 하고 의사에게 가 이것저것 진찰 받은 스가와라는 제때 잡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상투적인 말을 듣고 물리치료실로 들어갔다. 물리치료실로 들어가는 스가와라의 마지막 모습까지 놓치지 않은 오이카와는 그가 사라진 것을 보고 긴장이 탁 풀려 병원 의자에 몸을 늘어지게 기댔다.

 



고마워.”

,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물리치료가 끝나고 병원에 나와 다시 거리를 걸으면서 스가와라가 하는 말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들었으면 어이없어 했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스가와라는 그런 오이카와의 말을 듣고 조그맣게 웃었다.

밥 한 끼 사고 싶은데

?”

감사의 의미로 밥 한 끼 사고 싶어.”

으에에

오이카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괴성이 쏟아져 나왔고 순간 느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홧홧하니 달아올랐다.

불편하면 거절해도 돼.”

아니 그게 아니라좋아.”

뒷말은 거의 속삭이다 시피 했다. 으아, 데이트인가. 멋대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 때문에 오이카와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분명 자신이 아는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비웃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한 가 싶은 오이카와는 갑자기 제 앞에 내밀어진 물체를 보고 갸우뚱했다. 스가와라의 하얀 손가락이 핸드폰을 잡은 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이거 왜?”

번호.”

?”

번호 알아야 다시 만나지.”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핸드폰을 그 위에 올려놨다. 액정에 불이 들어온 핸드폰은 전화번호부가 켜져 있은 채 오이카와의 입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떨떨해진 마음으로 번호를 꾹꾹 누른 오이카와는 제 이름 까지 입력하고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스가와라는 한 번 확인하더니 이내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웅웅

오이카와의 바지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몇 번 울리더니 꺼졌다.

내 번호 떴을 테니 저장해.”

, .”

어라 늦었다. 나 코치님한테 보고해야해서 먼저 가볼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던 스가와라는 먼저 가겠다면서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한 채 멀뚱하니 그의 뒷모습을 미련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정신을 차리고 제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제 바지춤에서 핸드폰을 꺼내 부재중 전화가 찍힌 번호를 눈에 새겼다.

菅原 孝支

오이카와는 한자 한자 정성껏 눌러가면서 그의 번호를 저장했고 별표까지 눌러 전화번호부 제일 상단에 위치시켰다. 무엇인가 뿌듯한 것이 오이카와의 속에서부터 울컥울컥 올라왔다.

해냈다!!!!!!!!!”

한손에 그의 이름이 저장된 핸드폰을 들고 다른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하늘 높이 치켜 올리며 오이카와는 소리 질렀다. 으하하하. 웃음이 끊이지 않고 나와 주변 사람들이 다 그를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이카와는 행복해를 외치며 거리를 뛰어갔다.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소중한 그 사람의 이름이 액정 위로 반짝거렸다.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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