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츠] -22

pinn_pond 2016. 6. 9. 00:55


-22

하나마키 타카히로/마츠카와 잇세이




 그 날은 어떻게 보면 마츠카와에게는 공포와도 같았다. 최대한 그의 선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은연중에 나오는 의식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반에서는 평소와 같이 행동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과같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는 일상을 유지하며 마츠카와는 틈틈이 엄습해오는 불안과 대치했다. 가만히 있다 보면 누군가의 시선이 틀어박히는 느낌도 들었고 제 목 뒤를 손톱으로 살짝 긁는 느낌에 소름이 쫙 끼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엔 목 뒤 그리고 강가에 한 방울 떨어트린 물감처럼 이질적인 느낌의 그 것은 몸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피부가 일어나고 긴장감에 침 삼킬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마츠카와는 정신적으로 힘에 부쳤다.

 여러모로 보나 마츠카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런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알았다 하더라도 믿지 않을게 분명했다. 패닉. 지금 마츠카와가 겪고 있는 혼란에 가까운 감정을 대변할 단어는 패닉이 전부였다. 마츠카와는 제 몸을 갉아 먹고 있는 느낌에 몸을 작게 떨고 책상 위에 그대로 엎드렸다. 몸은 책상에 딱 달라붙어 있었고 양 팔로 감싼 얼굴은 시야를 어두컴컴하게 차단시켜주었다. 주변에서 들리던 소음들이 서서히 멀어져가고 마츠카와는 만족스러움에 눈을 감았다.

 ‘마츠―’

 갑자기 이명처럼 들려오는 음성에 화들짝 놀라 몸부림을 쳤다. 어찌나 세게 발버둥을 친 건지 책상이 앞에 있는 다른 책상을 밀며 저만치 밀어져 있었다. 그 덕택에 반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마츠카와에게 꽂혔다. 불쾌했다. 남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게 이토록 불쾌하다는 걸 마츠카와는 지금 몸소 생생히 체험하고 있었다. 그저 마츠카와가 이상행동을 했기에 그들이 자신을 쳐다본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꽂히는 시선들은 마치 하나씩 감겨오는 덩굴처럼 마츠카와를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멋쩍은 웃음과 뒷목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몸짓을 보였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무심히도 박혀있던 시선들이 걷히고 다시 교실은 웅성거림과 발걸음 소리로 도배되었다. 삼켜지지 않는 침과 침묵을 억지로 목구멍 뒤로 밀어 넣고 침착함을 최대한 발휘해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여 책상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다시금 의자에 앉았다. 책상에 몸을 바싹 붙이려 의자를 끌어오는 손끝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다시 아까처럼 책상 위에 엎드릴 수 없었다. 몸이 거부했다. 아까 들린 음성의 탓일까. 마츠카와는 시야가 차단되는 게 두려워졌다. 주변이 캄캄해지는 게 두려웠고 소름끼치도록 집요하게 느껴지는 목덜미의 기시감도 섬뜩했고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다시 찾아올 음성이 무서웠다. 일상과도 같았던 음성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 건 한 순간이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교묘히 베일에 싸인 막연한 불안함이 마츠카와의 등에 찐득하니 달라붙어 있었다.

 약 일곱 시간 정도 되는 정규 수업시간 동안 마츠카와는 몹시 불안정했었다.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빼서 책상 위에 올린다거나 교과서 귀퉁이에서 찢어낸 종이를 다시 조각조각 나눈 다는 둥 손을 가만히 납두지 못했다. 다리는 가만히 있다가도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 새 떨고 있어 수업 중에 교사들에게 지적받기 일쑤였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가장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 말하고 책상에 앉아 하는 행동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 못된 버릇이었다. 이 모든 행동들은 마츠카와가 얼마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루하게 판서만 하던 고전문학 수업이 수업종으로 인해 끝이나고 학생들은 당번만 남은 채 하나 둘씩 가방을 들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마츠카와 역시 구깃구깃 뭉쳐진 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을 들어 필통을 아무렇게나 처박고는 어깨에 들춰 멨다. 발걸음을 내밀어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갈 때마다 몸은 바닥에 접착제라도 마른 마냥 쩍쩍 엉겨 붙었다. 어찌어찌 신발장에 다다른 마츠카와는 몸을 굽혀 실내화를 집었다. 하얗던 실내화의 앞코는 너덜너덜 헤지고 꺼멓게 때가 타있었다. 실내화 못지않게 구겨져있는 운동화를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미쳐 지면과 마찰하지 못한 왼쪽 운동화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턱.

 운동화를 눈으로만 좇고 있던 마츠카와는 어느 지점에 다다라 멈춘 운동화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뒤축이 꺾인 검정색 운동화는 새것같이 깨끗한 하얀색 운동화 앞에서 우두커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하얀 운동화는 이젠 마츠카와에게 익숙함보다는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인물처럼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마츠카와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러나 시선은 야속하게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소금기둥이 된 그 여인처럼 마츠카와도 스스로가 보내는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하얀 운동화의 주인을 바라봤다.

 “잇세이, 여기서 뭐해. 배구 연습 가야지.”

 이름마저 꽃이 들어간 그는 봄날의 벚꽃 나무처럼 서있었다. 몸을 숙여 앞에 있는 검은색 운동화를 들어 한걸음 한걸음 마츠카와 쪽으로 다가왔다. 움찔하며 전신이 떨렸다. 자신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망가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제 앞에 있는 그는 태연했다. 아려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애써 외면해 느껴지지 않던 하반신의 불쾌한 이질적인 느낌이 아릿하게 터져 나왔다. 이를 꽉 깨물고 있었는지 턱이 쎄하게 아려왔다. 

 짝 없이 바닥에 혼자 있던 오른쪽 운동화 옆에 왼쪽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였다. 밑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정수리는 방금 빗질이라도 한 것 마냥 가지런했다. 어제와는 다른.

 그가 일어남과 동시에 마츠카와는 살짝 몸을 뒤로 뺐다. 아무도 없는 학교 현관의 신발장에는 마츠카와와 그, 단 둘뿐이었다. 엄마 앞에서 혼나는 아이처럼 마츠카와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떨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츠카와의 손과 팔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날 봐.”

   ‘눈 가리지마.’

 뒤죽박죽 섞인 음성이 마츠카와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얀 운동화 끄트머리만 바라보던 시선을 차례차례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바라봤다. 담담한 눈빛은 여느 때와 같게 느껴졌다.

 “하도 안 오기에 내가 왔잖아.”

   ‘봐, 잇세이. 내가 네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툭하고 터져 나오는 끔찍한 기억에 마츠카와는 차라리 기억 상실증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시감이 느껴지던 하반신은 이제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지져지는 것처럼 뜨겁고 쓰라렸다. 목뒤에서 따끔거리며 긁고 있는 손톱의 느낌은 척추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하반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나눠진 둔부 사이로 매끄럽게 내려간 손톱은 매서우리만큼 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나와야만 하는 부분에 손톱과 쇠꼬챙이가 번갈아가면서 괴롭혔다. 어제의 저주스러운 감각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마츠카와의 심신을 두루 공격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심장은 100m 달리기를 전력질주 한 사람같이 두방망이질 쳤다. 이질적인 하반신의 감각 덕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제 모든 일이 끝나고 일어섰을 때처럼 찐득한 액체가 다리 사이를 타고 흐르는 찝찝한 감각에 마츠카와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도 좋지 않았다.

 “왜 그래?”

   ‘하, 잇세이는 그런 표정 지을 줄도 아는구나. 그럼 더 네 안에 뿌려줄게.’

 “혹시―”

 순간 매미 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 마츠카와는 내팽개쳐졌다. 마츠카와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바짝 댄 그는 낮게 목소리를 깔고 속삭였다.

 “어제 생각이 난 거야?”

   ‘네 여기가 내 거를 꽉 물고 안 놔주잖아. 음란하네, 잇세이는.’

 미세하게 떨고 있던 마츠카와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가 짚고 있는 어깨부터 시작된 뜨거움은 전신을 불태우리만큼 뜨겁게 감쌌다. 외면하고 지우려고 애썼던 어제의 사고가 이젠 마츠카와를 재빠르게 침식했다. 눈이 가려진채 괴롭혀진 하반신은 그에게 미지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눈물로 적셔진 천조가리를 풀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하나마키 타카히로였다. 평소보다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두 손을 위로 잡아 결박한 채 다른 한손으로는 집요하게 마츠카와의 하반신을 괴롭혔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쑤셔 넣은 그는 혼자만의 만족감으로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뜨거움과 쓰라림이 반복적으로 마츠카와의 육체를 괴롭혔다면 수치심과 공포감은 정신적으로 마츠카와를 짓이겼다. 싫다는 말은 틀어 막힌지 오래인 이상한 관계는 몇 번의 추삽질이 더해지고 나서야 막을 내렸다. 버클만 푼 채 삽입했던 하나마키는 지저분한 매트리스 위에 버려진 인형처럼 널브러져 있는 마츠카와를 쭉 훑어보고는 비품실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마츠카와는 다리 사이에 흐르는 그의 흔적이 너무나도 소름끼쳐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는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맞네.”

 쿡쿡거리며 입을 가리고 웃는 하나마키는 즐거워 보였다. 마츠카와는 그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저주했다. 여러모로 봐도 자신이 하나마키보다 힘이 세다 생각했다. 신장도 더 크고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갔으며 장난삼아 했던 팔씨름조차도 마츠카와가 늘 이겼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트라우마와도 같은 어제의 일이 하나마키 앞에서 마츠카와를 미물만도 못한 존재로 추락시켰다. 탁. 왼쪽 팔이 강한 힘으로 붙잡혔다. 마츠카와는 제 왼팔을 바라보다 앞에 서있는 하나마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가자, 잇세이”

   ‘가자, 잇세이’

 어제의 하나마키와 오늘의 하나마키가 겹쳐보였다. 차분한 분홍색 머리칼과 웃고 있는 입매, 자신의 왼쪽 팔을 잡는 단단한 손 그리고 삼킬 것처럼 바라보는 짙은 눈동자. 하나마키 뒤로는 쭉 뻗어있는 운동장을 넘어 노을이 흔들리며 익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자는 말이 없었다. 어제처럼, 어제와 같이 하나마키는 마츠카와를 데려가려 했다. 지금 그를 따라가면 어떻게 될지 알거 같기도 했고 모를 거 같기도 했다. 다시금 꽉 잡는 악력에 마츠카와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검은색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넓은 학교 현관에는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디론가 가는 두 개의 발걸음은 이상하리 만큼 보조가 맞춰졌다. 깨끗한 새하얀 운동화와 뒤축이 꺾인 너덜거리는 까만 운동화. 그리고 두 사람.







201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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