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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야쿠] -9

-9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상!!! 데리러 왔어요!!!”평범한 아침이었다. 모처럼 받은 휴강으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막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초가을이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 덕에 야쿠는 얇은 코트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뒤 현관문을 닫고 있었다.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평소 좋아하던 플레이리스트를 터치하려던 순간 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덕에 깜짝 놀라 핸드폰을 놓칠 뻔했다. 조용한 주택가라서 여태까지 살면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무례한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져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뒤에 있는 남자는 키가 매우 컸다. 저렇게 키가 큰 사람은 처음 본 터라 야쿠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은발의 남자는 이국적인 초록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모..

2016.01.05

[다이스가] -8

-8사와무라 다이치/스가와라 코시 “다이치, 이거 받아.”한창 연습이 막바지에 닿았을 때, 다이치의 얼굴에 무엇인가 차가운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스가가 겉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 스포츠 음료를 내밀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이 회색머리 남자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이치에게 필요한 것들을 콕콕 집어냈다. 불과 그와 만난 지는 3년도 채 안되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소꿉친구처럼 스가는 다이치에게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아 고마워.”자신에게 건네주는 노란색 스포츠 음료수 통을 받으려 손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스가의 하얀 손가락이 전체적으로 음료수 통을 감싸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이 닿고 말았다. 흠칫. 긴장하는..

2016.01.05

[쿠로켄] -7

-7쿠로오 테츠로/코즈메 켄마 눈이 시렸다. 무엇인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더 이상 꿀 수 없었다. 눈꺼풀이 파르르하고 몇 번 흔들리더니 이내 황금색 눈동자가 천천히 모습을 보였다. 초점이 맞지 않아 뿌옇게 흐렸던 시야가 서서히 제 위치를 잡아가며 선명히 비춰졌다. 몇 시일까. 아직까지 몽롱한 상태인 켄마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제 옆에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검은 머리칼과 목덜미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반라의 모습이 켄마에겐 낯설지 않았다. 숨이 막히지 않는 지 오늘도 쿠로오는 베개를 양 옆으로 잡아 머리를 누르며 자고 있었다. 켄마는 꼼짝하기 싫었으나 창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과 조금 열린 테라스 문 틈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에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짹..

2016.01.04

[오이이와] 35

35오이카와 토오루/이와이즈미 하지메 오이카와 토오루는 인기가 많았다. 이맘때 쯤 나이의 여자아이들에게 키가 크고 준수한 외모에 운동을 잘하는 남자아이는 소녀들의 우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오이카와는 여자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가 대회에 나가는 날이면 그를 응원하는 여자아이들로 대회장이 가득 찼을 정도니 그 누구도 오이카와의 인기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유려한 화술 또한 그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여자들은 상냥해, 친절해, 멋있어 따위를 추임새로 삼아 오이카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그를 칭찬해도 오이카와는 스스로가 어디 한 석이 비어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비틀린 사람이었고 공허하다고 여겼다. 마..

2016.01.04

[마츠카와] -6

-6마츠카와 잇세이 마츠카와는 그를 사랑했다. 맹목적인 사랑을 느끼기는 처음이어서 기시감을 느꼈지만 이것이 참된 사랑임을 깨달은 마츠카와는 그 어느 때보다 그 사랑에 깊이 빠졌다. 때로는 숨이 답답할 정도로 그를 원했다. 그러나 잡을 수 없는 곳에 놓인 그는 마치 마츠카와를 비웃기라도 한 것 같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고 큰 소리로 외쳐 봐도 들리지 않았다.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마츠카와는 사랑이라는 버팀목을 만나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볼 때면 그는 새침한 얼굴을 하면서 마츠카와의 애를 태웠다. 유혹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밀어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이런 사람을 사랑한 것인가 하는 의문 따윈 애초에 가지지 않았다.마츠카와가 사랑하..

2016.01.03

[오이이와] -5

-5오이카와 토오루/이와이즈미 하지메 최근 오이카와의 상태가 달라진 것 같아서 이와이즈미는 신경이 쓰였다. 예전 같았다면 알아채지 못하고 넘겼을 일이었는데, 이번엔 무엇인가 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 그때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그 생각에 미치자 인상을 찌푸렸다. 오이카와에게 처음으로 암흑이 드리우던 날. 지금 오이카와는 그 상태와 매우 흡사해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다시금 변해버린 제 소꿉친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미치도록 사랑한 배구가 제 능력 범위 밖의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오이카와는 엇나갔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를 뻔 했다. 그가 사랑한 배구코트 위에서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할 뻔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그 자리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다행히 여겼..

2016.01.02

[보쿠아카] -4

-4보쿠토 코타로/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 이리로!”운동화와 왁스칠한 바닥이 마찰해 삐걱대는 소리와 청춘들의 땀 냄새로 가득한 후쿠로다니 학원의 체육관은 배구연습이 한창이었다. 한 쪽에서는 리시브를 연습하는 무리들이 있었고 코트 앞에는 토스와 스파이크를 연습하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회색 머리의 남자는 곧 제 차례가 오자 네트 앞에 서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에게 손을 들어 올리며 콜을 했다. 검은 머리의 남자는 콜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회색 머리의 남자를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공을 하늘 높이 띄웠다.—쾅. 체육관 바닥을 매섭게 강타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가 때리기 쉽도록 가장 좋아하는 코스를 보낸 검은 머리의 남자는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았으나 경쾌한 스파이크 소..

2016.01.02

[아카보쿠] -3

-3아카아시 케이지/보쿠토 코타로 찬란했던 빛이 꺼지게 된다면 당연한 수순인 듯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카아시는 이제는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알 수 있었다. 밀랍이 얼마 남지 않은 양초처럼 위태롭게 빛을 발하는 불은 안타까웠다. 아카아시는 자신의 눈앞에 꺼져가는 영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양초의 불은 도움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그런 영혼이 촛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촛불은 스스로 꺼지길 원하지 않았으나 그 영혼은 스스로를 방치하고 꺼져감을 받아들였다. 아카아시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코트를 누비던 그를 바라봤다. 보쿠토 코타로. 아카아시 케이지의 에이스이자 주장이자 연인이었다.모로 누어있는 몸을 바라..

2016.01.02

[리에야쿠] -2

-2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바라만 봐도 좋다. 리에프는 지금 자신의 침대 위에서 자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번 학교 축제에 쓰일 소도구 자제를 축제 위원들과 사니라 하교가 평소보다 늦었다. 리에프는 배구부여서 축제 도우미에서는 빠졌지만 미안한 마음에 남는 게 힘뿐이라는 주장으로 자제 옮기는 일을 도우기로 했었다. 그리고 하필 그 날이 야쿠와의 약속이 겹쳐버려 혼자 초조해 하는 리에프를 보며 야쿠는 괜찮다며 먼저 집에 가있겠다고 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말하던 리에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축제 위원들을 따라다니며 점차 우울해졌다. 괜찮냐고 친구들이 물어봤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며 묵묵히 자제들을 들고 걸어 다녔다. 한..

2016.01.02

[쿠라사와] -1

-1쿠라모치 요이치/사와무라 에이준 “못치 선배!!!”멀리서부터 기차화통 삶아 먹은 듯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쿠라모치의 귓전을 사납게 때렸다. 뒤를 돌아 바라보니 저기서부터 사와무라가 손을 흔들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체육시간을 끝내고 왔는지 체육복을 입고 달려오는 사와무라는 머리가 물에 젖어 있었다. 제 친구들과 등목이라도 하고 온 것인가 하는 생각에 미치니 갑자기 기분이 불쾌해졌다. 조심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띨띨한 사와무라를 보면서 쿠라모치는 한숨을 쉬었다.“천천히 걸어와, 어디 안 도망간다.”아무것도 걸릴 게 없음에도 자신에게 뛰어오기까지 두어 번은 더 넘어질 뻔한 사와무라를 타박했다. 제 코앞까지 다가와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볼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워 보여 쿠라모치는 억울한 마..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