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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츠키] 34

34쿠로오 테츠로/츠키시마 케이 “도쿄는 왜 이렇게 더운거에요.”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츠키시마가 말했다. 매미가 한창 울어대는 한여름이라 아스팔트 위로 지글지글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보면은 대체 이 살인적인 더위는 언제 물러가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츠키시마는 평소 그렇게 더위를 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도쿄는 더위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를 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짜증나는 더위에 그를 더욱 들들 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쿠로오의 얼굴이었다. 도쿄사람들은 다 적응된 건가. 땀에 자꾸 미끄러지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다시 고쳐 올리고 츠키시마는 쿠로오를 바라보면 눈길을 거뒀다. 더 보고 있었다가는 아까부터 이어지던 푸념이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아서 츠키시마는 다른 ..

2015.12.31

[빙흑] 冬

冬히무로 타츠야/쿠로코 테츠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리는 전 세계적인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겨울 이맘쯤 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하루를 전날의 일몰로부터 다음 날 일몰로까지 쳤기에 이 전야인 이브가 중요시 되었다고 크리스마스이브도 또 하나의 축제로 자리 잡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크리스트교 국가가 아닌 일본도 전 세계적인 열기와 상업주의에 따라 크리스마스가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초기의 의미가 비록 퇴색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도 자신의 생일이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이미 도쿄에는 한차례 눈이 내려서 거리거리마다 걸려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비롯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잘 어울려..

2015.12.26

[리에야쿠] 33

33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상, 저 좋아해요?”제 앞에 있는 키가 큰 남자는 뻔뻔하게도 이런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그 덕에 야쿠는 부끄러움에 죽을 맛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뜨거운 것 같으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받을 때마다 드는 긴장감에 절로 침이 넘어갔다. 짙은 녹색의 큰 눈에는 부담스러우리만큼 야쿠 한사람만 담겨있었다. 이 질문을 받은 것이 대체 몇 번째인가. 대체 리에프는 언제까지 이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려는 거지. 무럭무럭 피어나는 생각에 더는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야쿠는 눈을 감아버렸다.“눈 떠.”단호한 음성과 함께 자신의 턱을 그러쥐는 차가운 손가락에 야쿠는 슬며시 눈을 떴다. 녹색의 눈이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다가와 삼켜버릴 것만 같았고 그 불안한 느낌에 야쿠는..

2015.12.22

[마츠켄] 32

32마츠카와 잇세이/코즈메 켄마 마츠카와 잇세이. 그는 통칭 마성의 남자로 불리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은 두터운 눈썹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바라만 봐도 그가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느낌을 받는 다고 몇몇 여자는 증언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눈빛에 실려 간 사람도 꽤나 있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훤칠한 키와 꽉 닫힌 입매 또한 매력적인 요소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과묵한 성격조차 그의 신비로운 매력을 더해준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컴퓨터공학과인 마츠카와는 공대뿐만 아니라 다른 단과대에서도 유명했다. 남자들은 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고 여자들은 선망의 눈으로 바라봤고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마츠카와가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웠다. 성적 또한..

2015.12.14

[엔노후타] 31

31엔노시타 치카라/후타쿠치 켄지 오늘은 내 손으로 너, 엔노시타 치카라를 묻은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너는 갑작스레 나를 떠났다. 내가 너를 떠나보낼 마음에 준비를 가지게 하지도 못한 채 너는 평온한 미소 하나만 짓고는 나에게서 떠나갔다. 연고지 하나 없는 너를 내 손으로 차갑게 식은 땅에 묻을 때, 나는 너에 대한 내 마음도 같이 묻어버렸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너는 지옥에서 돌아온 것 마냥 나를 끈질기게 붙잡았다. 그 붙잡음에 돌연 크나큰 만족감을 얻어서 나는 아직도 너를 못 잊음이 그렇게도 좋았다.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이 뭐라도 된 것 같이 대단해보였고 사별했음에도 다른 이와 사랑하지 않고 너를 생각하는 나에 대해 우쭐한 감정을 느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으로 너..

2015.12.06

[리에야쿠] 30

30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리에프는 자존감이 낮은 편에 속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리에프는 겉으로만 당당하고 자존심이 높을 뿐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자신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길이 없었으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리에프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때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했으므로 어찌 보면 리에프에게 사랑은 당연한 일이었다.그가 마음에 담은 사람은 고등학교 배구부에 함께 있었던 자신 보다 두 살 많은 매니저였다. 처음에는 그저 이렇게 작은 사람이 존재하나 싶은 정도의 생각 밖에는 없었..

2015.12.03

[마츠쿠니] 29

29마츠카와 잇세이/쿠니미 아키라 마츠카와에게 회사 일이 끝나고 동네 놀이터에 나와 앉아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게 어느덧 일과가 되었다. 놀이터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자주 가는 이유도 있었지만 놀이터를 선호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흉흉한 소문 하나가 동네를 휩쓸었고,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아이들을 집으로 들이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그래서 느지막이 놀이터에 가면 담배를 피는 몇몇 고등학생들뿐이었고 거의 대부분은 마츠카와 혼자였다.끼익끼익 거리면서 혼자 움직이는 그네는 마츠카가와가 보기에 자신과 흡사해 보였다. 최근 마츠카와는 고독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미야기 현에 있었고 마츠카와는 얼떨결에 오사카 ..

2015.11.24

[쿠로츠키] 28

28쿠로오 테츠로/츠키시마 케이 츠키시마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는 풍경이었지만 츠키시마에게는 특별했다. 매일 같지만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 가끔씩 보이는 새로운 사람들과 사계절을 따라 바뀌는 사람들의 옷모양새도 츠키시마에겐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밖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가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창이라는 얇은 칸막이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그렇지만 츠키시마는 그 세상으로 나갈 수 없었다. 츠키시마에게는 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츠키시마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때부터 늘 함께였다. 그는 츠키시마를 소중하게 여겼고 돌보았고 예뻐 해줬다. “츠키, 내 달. 갔다 왔어.” 찬바람이 갑자기 들어와 몸..

2015.11.18

[히나우시] 27

27히나타 쇼요/우시지마 와카토시 히나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귄지 어언 3년째 되는 우시지마가 의외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현 내 라이벌 학교로 만난 둘이었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 사귀게 된 뒤로 부터는 아무래도 알콩달콩한 면이 더 많았다. 우시지마가 유럽으로 배구 유학을 2년간 떠났을 때도 간간히 그립다는 표현을 했지만, 이번처럼 감정표현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우시지마가 감정표현에 적극적이게 되었다는 것은 히나타에게 좋은 일이었으나,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러는 건지는 정말 자신의 속공에 맹세코 전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멀리서 리시브 연습을 하는 우시지마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면서 히나타는 생각했다. 뭘까. 뭘까.애당초 히나타는 머리가 좋은 편에 속하지..

2015.11.10

[리에야쿠] 26

26하이바 리에프/야쿠 모리스케 야쿠 모리스케의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최악의 상황을 여러 개 생각한다는 것이다.그로인해 멘탈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야쿠 본인은 이런 성격을 싫어했다.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끔 우울한 마음이 겹치면 끝도 모르는 어두운 감정들이 야쿠를 삼키려고 덤벼들었다. 상처를 많이 받고 그것을 품고 가는 성격이었다. 체구가 작아 남들에게 무시받기 쉬어 야쿠는 목소리를 더 크게 그리고 소위 남자다운 행동을 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어두운 성격을 숨겼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부활동에서 야쿠는 리시브를 잘하고 잘 챙겨주는 멋있는 선배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 한 사람에게는 무서운 선배였다. 악의 없지만 눈치도 없는 1학년은 처음 입부 했을 때부터 야쿠의 속을 박박 긁..

2015.10.30